주일 설교문
소교리 29, 30 : 성령님과 구원사역 Ⅱ(요1:12-17, 고후1:21-22, 엡1:13-14, 2017년 9월 10일)

소교리 29,30 : 성령님과 구원사역 Ⅱ(1:12-17, 고후1:21-22, 1:13-14, 20179 10)

    지난 주 설교를 요약합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일을 하십니다. 그 적용을 효과적으로하시기 위해서 행하시는 것이 고후1:21-22에서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1. 내주하심, 2. 기름 부으심, 3. 인치심,4. 보증. 내주하심은 성령님께서 한 개인이 거듭날 때 그 속에 들어가셔서 영원히떠나지 않는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교회의 신자들은 율법을 지켜 행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 및 여러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십니다. 그것은 새 영을 신자의 마음 가운데 두시겠다는 약속입니다(36:26).그 약속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의 현현으로 성취됩니다. 그때 신약교회가탄생하고, 그 이후 모든 신약교회의 신자들 속에는 성령님이 들어오시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기름 부으심은 그리스도 자신이 주체가 되어 행하십니다.그리고 성령님은 그것을 적용하십니다. 기름 부으심은 그리스도의 삼중직분을 이해해야합니다. , 제사장, 선지자가기름부음 받은 직분으로서 구약에서 실패했습니다. 왕은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하는 데 실패했고,제사장은 중보자의 직을 실패했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해지고 시행되는데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직접 그 삼중직, 즉 왕,제사장, 선지자의 직을 홀로 한꺼번에 시행하러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십니다. 이제 모든 신자들에게 자신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 직을모든 신자들에게 동일하게 기름부음을 통해서 나눠주십니다. 벧전2:9, “…너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말씀한 이유가 뭘까요? 어떻게 우리가 왕이며 제사장이 됩니까? 그것은 기름부음을 받는 직분인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예수님께서 삼중직으로 십자가에서 성취하시고, 또한 우리에게도 성령으로 기름 부으셔서 그의 직분을 나눠주시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그 분 안에서 그 분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일궈가는 중요한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실제로 물리적인 기름(oil)을 붓는 것이 아닙니다.또한 어떤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는성령님의 적용을 통하여 신자에게 기름 부으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공고히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일원으로서 신실하게살아가도록 하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역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요1 2:20에서 진리를 알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요16:13에서도 그렇게 설명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신비한 현상이나 초자연적인 체험이 아니라, 성령께서 진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며,또한 말씀되신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 위해서 성경 말씀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특별한 사역입니다.

    오늘은 인치심과 보증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사실 인치심과 보증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 두가지는 서로 인과관계에 있다고 해도 맞습니다. 이 사실에 기반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의 인치심. 본문 엡1:13에 보면 신자에게 구원이 일어날 때,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인치심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스프라기죠(σφραγζω)”입니다. 이것을한글개역성경과 개역개정성경에서 대략 55년 이상 인치심이라는 단어로 변함없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평소 쓰지 않는 단어이기에 낯설게 들릴지 몰라도, 성경원어의 여러 가지 뜻을 한국말의 한 단어로 압축시키기에는 이 만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스프라기죠’(인치심)에 가장 큰 뜻은 (mark)를 하다입니다. ‘중에서도 특히 공식적인 서류나 인준을 위해서 인장 도장을 찍는 것을 말합니다.그래서 NIV에서는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이라고 번역했습니다. seal처리를 했다는 뜻입니다.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두 가지 큰 느낌을 받습니다. 1. 안전, 2. 보호.

    첫째, 성령의 인치심이란안전을 보장받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안전입니까? 약속된 구원에 관한 안전입니다. 좀더구체적으로는 믿음에 대한 안전입니다. 본문 엡1:13을 유심히 보면,인치심을 받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는 것이 있습니다. ①구원의 복음을 듣고,②믿고, 그리고 ③인치심. 쉽게 표현하자면,“복음믿음구원의 도장 ””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치심은 복음을 듣고 믿음이생기면서 곧 바로 신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역사 또는 효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자가 더 이상 약속에 대해서 불안하지 않는 것입니다.어떤 약속입니까? 구약에 실패한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새 영을우리 마음속에 넣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성취되어서 초대교회에 성령님께서 현현하시고,신약교회가 탄생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모든 신약교회의 신자들은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고기름 부으시며 또한 인치심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시고, 또한 안전에 대한 약속을 이루십니다.

    존 오웬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치는 것은 약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인격 속에도장을 치는 것이다.” 모든 거듭난 신자들은 이 인격의도장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약속한 구원에 확실히 이르게되는 안전보장을 받았습니다.

    둘째, 성령의 인치심이란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의보호일까요? 우리의 믿음을 도둑질 하는 사단으로부터의 보호입니다. 예수님은요10:10에서, 사단을 도둑에 비유합니다. 또한 벧전5:8은 사단을 우는 사자에 비유합니다. 두 은유법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자녀는 늘 사단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들 개인에게 인치심이라는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 그 모든 사단의공격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성경은 왜 이처럼 성령의 인치심을 말씀할까요?그것은 성령의 인격성입니다. 성경은 복음에 대해서 단순도식화 하지 않습니다.“복음-믿음-천당이게 아닙니다. 굉장히 섬세하고 수많은 구원의 서정들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엡1:13에서도 복음-믿음-인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고후 1:21-22에서는 복음-믿음-내주하심, 기름부으심, 인치심, 보증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의 구원의 서정을 밝힙니다. 부르심, 중생, 회심, 연합, 칭의, 양자, 성화, 확신, 견인, 영화. 이런 여러 가지 구원에 이르는 단계들을 성경이 가르치는 이유는 뭘까요?그것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런 단계가 원인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기독교 신앙의 구원이 단순하게 예수님 잘 믿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옛날부터, “예수님 잘 믿으면 복 받고, 예수님 잘 믿으면 천당 간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굉장히 좋은 덕담이고, 맞는 말입니다.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것이 변질되어서, 믿음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을 일으키는 제1원인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그래서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신자들은 마치 여러 가지 실천 사항들을 잘지켜 행하면 구원의 복을 받는다는 식의 잘 못된 신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여러 가지 믿음의 복과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을받아 누립니다. 구원을 이미 선물로 받았고, 우리는 그것을 풍성하게우리의 삶에서 누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오직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에서 시작되고 귀결되는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치심의 실천적인 의미가 뭘까요?소유와 확신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날 때 우리에게는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마치 공식문서에 도장을 찍어 그것을 공적으로 유효하게 하듯이, 우리 위에(upon) 그리고 또한 우리 안에(in) 성령의 인치심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물리적으로느낄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성령님의 은혜로운 역사입니다.그렇게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의 소유가 된 것을 증거합니다. 벧전2:9, “…소유된 백성이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왕 같은 제사장이요…”라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결과 다음에 따라 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있을까요확신입니다. 이 확신은 하나님에 대하여, 복음에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흔들림 없는 상태의 지속을 의미합니다. 우리는기독교 신앙의 믿음의확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기독교 신앙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확신은 우리 자신으로부터출발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자기 확신으로부터 시작하는신앙은 항상 불안하고,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인치심으로주시는 확신은 때로 넘어지고 연약한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완전히 무너지거나 실패하지 않습니다.

        2. 성령님의 보증. 본문 엡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적용시킬 때 하시는 사역은 보증입니다. NIV에서는, “…a deposit guaranteering…”이라고 번역했고, NASB에서는, “…given as a pledge…”라고 번역했습니다. 각각 “guarantee”“pledge”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단어는 본래 성경 원어로 아라본(ρραβν)”이라는 단어입니다.뜻은 보증금을 입금하다라는 뜻입니다.

    왜 성경은 이런 상업적 단어를 써서 보증을 설명하려는 것일까요? 그것은 본문14절의 기업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입니다.여기서 말하는 기업의 구약적인 뜻은, “상속 받을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의 신자들에게기업은  이 땅과 저 하늘 나라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구원의 적용을 일으키실 때, “보증을 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와 앞으로 가게 될 하나님의 도성을 기업으로 물려 받는 상속자로 보증한다는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손색이 없고, 전혀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입성하여 그곳에서 사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적격자라는 것을 보증한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기업을 물려 받는 상속자로 보증한다는것은 우리의 지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을 롬8:17에서밝힙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는 말을 새번역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라고 번역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가실 때,우리에게 반드시 보증해 주시는 것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같은공동 상속자의 지위입니다. 왜 이것이 신자에게 중요할까요? “공동의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가 된다는 것은,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뿐더러, 또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이중적인 의미를포함합니다. 그래서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는 영광이라는 혜택만 있는 것이아니라, 고난이라는 책임도 같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신자에게는당연히 고난이 따릅니다. 왜요? 그것은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서 당연히함께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고난의 일들은, 성령님의 보증 가운데 일어나는 필연의 사건들입니다.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라면 우리가 그리스도의십자가의 혜택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2:20)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 또한 그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되는것입니다 (16:24).

    기독교 신자에게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 아닙니다혹독한 고난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자는 항상 육적인삶에 머물러서 그리스도를 바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죄성을 들여다 볼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공동 상속자로 보증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서의 자격 또한 갖추게 하십니다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는 것입니다

9/11/2017 2:03: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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