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문
소교리 29, 30 : 성령님과 구원사역 Ⅰ(요1:12-17, 고후1:21-22, 2017년9월3일)

소교리 29, 30 : 성령님과 구원사역 Ⅰ(1:12-17, 고후1:21-22, 201793)

 

    본문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에서는 영접하는 자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새번역성경에서는맞아들인 사람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많이 오해 받는 단어입니다. 마치 한 사람이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맞아 들이는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을 하기만 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진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아닙니다. 매번 말씀 드리지만, 성경 해석의 기본은 어떤 한 단어가어떤 전후 문맥에서 나왔는가?” 그리고 전후 문장에 어떤 전제가 깔려 있는가?”라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1:12은 그 다음 구절을 읽지 않고서는 절대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입니다.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난 자들이니라.” 여기에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라는 문장이 앞의 12절 문장을 확정 시킵니다. 여기서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델레마(θλημα)”인데요. 이 단어는 의지(will),’‘선택(choice),’ ‘갈망(desire)’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델레마(, 선택, 갈망)”으로 나지 아니하고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이어서 12절 말씀은 오직 하나님께로서난 자들이니라고 확정 짓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에서,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한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본문 요1:16“…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설명하길,1:17,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여기서 은혜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합니다.이 단어는 헬라어 카리스(χρις)”라는 단어인데요.이 단어는 인간이 임의적인 의지가 들어갈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신적인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주권적이고 절대적이며 임의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자에게주어질 때 어떤 과정과 적용을 통하여 일어날까요?? 간단히 답을 드리자면 성령님의 사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개인에게 주어집니다.”본문 고후1:21-22에서 성령님의 이 네 가지 사역을 이같이 밝힙니다: 1. 내주하심, 2. 기름부으심, 3. 인치심, 4. 보증. 오늘 설교는 이 네 가지 중 두 가지에 대해 말씀 드리고 나머지 두 개는 다음주에 이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성령님의내주하심입니다. “내주하심또는 내주하다라는 한글 단어는 성경이나 사전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쓰는 이유는 이 한 단어에 두 가지 뜻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어는 계속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내주(內住)(inside)”이라는 뜻의 자와 거주하다(live)”라는 뜻의 를 써서 안에 거주한다라는 뜻을 가집니다.이처럼 성령님이 안에 거주하신다라는 뜻으로이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에 대해 고린도교인들에게,“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정확히 성령의 내주하심을말씀하는 것입니다.

    왜 이 사실이 중요할까요?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이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성령님이 들어오셔서 사십니다.그러나 불신자에게는 성령님이 단 한번도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신자 가운데 한번들어오신 성령님은 다시는 떠나가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해 신자의 구원은 확실히보증되고, 끝까지 완성됩니다.

    그럼 성령의 내주하심, 즉 한번 신자에게 들어오신 성령님이 떠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중요할까요?구원의 확실성 때문입니다. 구원을 이루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그 구원은 절대 실패할 수 없고, 끝까지 그리고 완전히 이루신다는 확실성을 보여주는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알미니안주의에서는 하나님께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또는 사람 개인이 영접할 것을 미리 예지 하셨기 그런 은혜의 기회를 베푸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측면에서 이렇게 정리할 수있을 것입니다: 성부하나님이 구원역사의 설계자시라면, 성자예수님은 구원역사의시행자시고, 성령하나님은 효력있게 구원을 적용하시는 분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런 질문을 해 봅시다. “구약교회의 신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성령의 내주하심이, 왜 신약교회 신자들에게는 주어지는가?”간단히 말하면 구약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신자들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 언약은 골자는 만약 하나님의 율법을잘 지켜 행하면, 생명과 복을 받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멸망과 화를받는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구약 교회의 신자들은 그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율법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이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새언약입니다. 그 새언약의 핵심 중에 하나가바로,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께서구원역사의 주체가 되셔서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주도해 나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되죠. “그렇다면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가? 구약교회의 신자들이 그것을 지킬 수 없다면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는 신약교회의 일원으로서 이미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니,굳이 구약성경에 매달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그래서 목사는 종종 구약 본문 설교보다는 신약 본문 설교를 더 많이 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신자들로부터 듣게 됩니다. 이런 요청들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말씀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약교회 일원으로서 하나님께서 새언약을맺어 주셨다고 해도, 구약의 말씀이 폐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왜구약의 말씀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사도 바울은 롬7:7에서 밝힙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율법이 없었다면 인간 가운데 있는 죄의 비참함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은 여전히 신자가운데 남아 있는 죄성을 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한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초등교사)이 되어여기서 몽학선생은 안내자, 인도자 역할을 한다는것입니다. 율법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지는 못할지라도, 여전히그 율법이 구원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주는 안내자가 됩니다. 구약의 율법을 통해서 신자는 자신의비참함을 보면서, “아 내속에는 아무런 선도 아무런 거룩함도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려는 의도는,구약성경의 모든 믿음의 선진들도 아무도 율법을 잘 지킴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또한 그런 능력이 없기에 결국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이 율법의 비참함에 빠진 구약의 신자들에게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한 가지 약속을 주십니다. 36: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여기에서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라는표현이 정확히 성령님의 내주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 가운데 성령님을 내주시키기로 계획하신 이유는, 그 다음절 겔36:27,“…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는 표현에서 명확하게 밝힙니다.새언약의 제일 중요한 기둥은 새 영이신 성령님이 직접 신자들 가운데 들어오셔서,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주관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구약의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셨던 이 약속은 약600년이 흐른 후에 실제로 시행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신자들에게성령님이 본격적으로 임하시고, 신약교회가 탄생합니다. 그런 후 모든신약교회 신자들에게는 예외 없이, 성령님이 그 개인의 마음속에 들어가십니다.     

    둘째, 성령님의기름 부으심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나오해들을 오늘 설교에서 깨려고 합니다. 본문 고후2:21, “…우리에게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성경에서 기름 부으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더 정확하게 밝히는 구절이 요일2:20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거룩하신 자는 영어성경에서 “The Holy One”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구약에서 이것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거룩하신 자라는 표현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 명칭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고백했고(6:69), 가버나움 회당에 귀신 들린 사람의 입에서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불림을 받습니다 (1:24).이렇게 볼 때 신약의 기름부음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면 요일2:20을 이렇게 다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기름 부음을행하시는 주체는 성령님이 아니라,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청교도신학자 존 오웬도 이에 대해 말하길,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자(theHoly One)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개혁주의 성령론, 여수룬] p. 517. 결국 기름 부으심의 주체는 성령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어원에서도 증명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 단어,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라는 말인데, “기름 부음을 받은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기름부음을받은 분이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메시아기름 부음을 받은이라는 뜻입니다.결국 메시야와 그리스도는 같은 어원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요일2:20의 말씀을 근거로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기름부으신다.”이 사실을 알려면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의 삼중직분에 의해서 알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 세 직분이 있습니다. ,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세 직분에게 기름을 부어서 임명을했던 이유는,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가지 직분을 수행하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보여주는것입니다. 이를 두고 그리스도의 삼중 직분이라고 부릅니다. 말하자면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제사장으로오신 그리스도,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 왜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은 삼중직분으로 기름부으심을 받고 이 땅에 오셨을까요? 이것은 앞서 말씀 드린 신약 교회의신자들에게내주 하심이 필요한 이유와 동일합니다. 구약의 왕, 제사장, 선지자는 다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왕으로서기름 부으신 그리스도입니다. 왕은 통치권을 말합니다. 구약에 언제 왕정시대가도래합니까? 사사시대가 끝나갈 무렵에 이루어 집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왕정시대가 도래함으로 자연스럽게 사사시대가 끝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시대의 특징이 뭘까요?사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에서 나타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 사실 정치적 왕이 없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말씀하고 싶은 것은무엇일까요? “이스라엘에 언제 왕이 없었던 적이 있느냐? 나 여호와가너희들의 영원한 왕이며 항상 있어 왔다. 그런데 왜 자꾸만 왕이 필요하다고 하느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정제도를 주십니다. 그 첫 번째 왕이 바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사무엘을 통해실제로 기름을 붓게 하고, 초대왕을 세웁니다. 사람들이 기뻐했습니다.그들이 보기에도 사울은 정말 왕 같이보였기때문입니다. 그는 준수했고, 키가 다름 사람들보다 어깨 위나 더 클정도로(삼상10:23)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정말 왕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에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결국 초대왕 사울은실패합니다. 그리고 결국 얼마 가지 않아서 분열왕국이 옵니다. 북쪽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갈라져서, 북쪽은 19왕이 등극하고,남쪽은 20왕이 등극합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은약 200년 밖에 가지 못하고, 남유다 또한  350년 밖에 유지하지 못합니다. 인간 왕정제도는 실패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그 실패한 왕정의 후손으로 진정한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진정한 인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통치해 가실 것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마태복음 1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보면, 남 유다 왕의20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사실상 21번째 유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뭘 보여 주시려 하는 걸까요?인간 왕들은 다 실패했지만,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보여줍니다. 그리스도가 실체적인 왕이시며, 하나님 나라를 인도해 가실진정한 왕이시다 라는 선포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왕의 직분입니다.

    둘째, 제사장 직분은어떻습니까? 그것 또한 실패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중보자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의 후손들을 인간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책임지는 역할들을 하도록하셨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7장이 크게 두 가지로 밝힙니다.1. “저희 제사장 된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아니하나니”(7:23-24). 인간 대제사장들은 나이가 들고 결국죽습니다. 그러면 그 직분이 끝나고 다른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일시적이라는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하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영구적이다라는 것입니다.

    2.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7:26-27). 인간 대제사장들은 자신도 죄인이기 때문에, 백성들을 중보하기 위해서 성소에 나아갈 때 자신 또한 정결의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로인해 반복해서 계속적인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예수님 자신을 위한 정결의식이 필요 없을 뿐더러, 여러 번 드릴 필요 없이 단번에영원히 효력있는 제사를 자신이 직접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이 직접 드리므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셨고,또한 동시에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 어린양의 보혈의 피를 통해 자신이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여러 번 드릴 필요가 없는 영 단번의 제사가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의 기름부으신 직분입니다.

    셋째, 선지자의직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드는 역할입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오심을 전파했습니다.그리고 그 예고된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심으로 그 모든 선지자들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마지막 선지자가 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말씀은 없으며,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 말씀의 성취자이시며, 곧 말씀이 되셨습니다.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이 마치 선지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나, 실제로 자신을선지자로 스스로 치켜세우는 사람들은 다 엉터리이며 이단입니다. 왜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선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곧 아버지의 뜻이 됩니다.그리고 그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완전히 이루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로서 기름부으신 그리스도입니다.

    이 삼중직분으로 기름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영접하는 모든 주의 자녀들에게 동일하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참 자녀에게 기름 부으실때는 더 이상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 oil을 붓는 것이 아니라,“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붓습니다. 사실성경에서 신약시대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거의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오늘 기독교 신자들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표현에 오해를 많이 합니다. 심지어 어떤 특정 교단이나 신자들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열의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가집니다. 그러나 단언코 말씀드립니다. “성령님은 경배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경외의 대상이 아닙니다.”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그러므로 경배 받으셔야 합니다. 칭송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것은 성령님의 신비한 사역 중에 하나입니다. 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마치 인간이 체험 할 수 있는 신비한 느낌이나 외형적인 사건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절대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기름 부으심의 본래 단어는 명사형으로는 크리스마(χρσμα)”라고 부르고, 동사형으로는 크리조(χρω)”라고 부릅니다. 이 크리스마는 은사를 뜻하는 카리스마(χρισμα)”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크리스마”(기름부으심)이라는 단어가 어떤 단어와 연관되어서 사용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이 말씀에 의하면 기름 부음을 받으면 곧이어 나타나는 사건은, “모든 것을 안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부분을 NIV에서는, “all of you know the truth.”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21절의 "the truth"를 정확시 가져와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안다는 말씀이 됩니다. 실제로 요12:21절에는 이 진리에 대해서 쭉 설명합니다.

   이것을 알고 요일2:20을 다시 재해석해 보면 이렇게 되겠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기름 부으신다.그리고 우리는 모든 진리를 안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것은어떤 현상이나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에 관한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존 오웬은 우리들이복음의 모든 근본과 본질적인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복음의 진리, 즉 성경의 지식을 알게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성경의 핵심 진리이신,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영원한 지식을 가지도록 우리 마음 가운데 혁신을 일으키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며,그 성령님의 사역을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고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도,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의 별명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붙이면서,그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택하신 사람 모두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성령님은 신자 모두를 기름 부으심을 통하여, 참 지식을 알게 하시고, 그 지식에 진정으로 가담하고 순종하도록 인도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오늘날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육체가운데 있는 자들이 성령님을 마치 추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시킵니다. 자신의 영적 이기심에배를 채우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가르치는 지에 대해서 똑바로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그래서 결국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에도 없는 이교적이며 이단적인 종교행사들을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감행합니다.그것은 죄악입니다.

    오늘날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체험하기 위해서,어떤 교회들은 그것이 마치 교회가 행해야 할 가장 큰 목표와 이유인 것처럼 떠듭니다. 그러고는 온갖 잘 못된 행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마치 성령님은 그런 행사에서나 나타나시는분으로 비성경적인 성령님의 역사를 가르칩니다. 또한 성령님은 마치 인간이 느끼기에 뜨겁거나, 신비한방법으로 역사한다고 가르칩니다.이 모두 다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사람이 기도하다가 어떤 뜨거움 때문에 배를 잡고 땅바닥을 뒹구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방언이라는이름으로 알 수 없는 마귀적인 소리들을 일삼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넘어지거나 신비한 환상가운데 이끌림을받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아닙니다. 전혀 그런 것과는 무관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참 지식, 참 진리에 관한 표현입니다.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오직 택하신 백성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특별한 사역입니다. 이것은 어떤 현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택함을 받은 진정한 참 신자가 가지는 하나님에 관한,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한 참 지식을 말씀하는것입니다

9/4/2017 11:44: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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