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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 성경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4: 성경4

김태길 목사

 

17: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이그 자체로 동등하게 평이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명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 필수적으로알고 믿고 준수되어야 하는 것들은 성경 여러 곳에 아주 명백하게 제시되고 밝혀져 있어서 유식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식한 사람들도 평범한 방법들을적절히 사용하면 그것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이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후손들에게 유언을 편지로 써놓고 죽었다. 그런데, 그 편지를 읽는 사람마다 유언의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받아들이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을 소리로 표현하고, 또는 문자 표현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어려울때가 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 내에서도 의사소통의 문제는 일어난다.

 

    나는 근래에 지원이가 하도 맨발로 바깥에서 놀길래 염려가 되어, 하루는 집 문을 나서는 지원이에게한마디 했다. “아빠가 신발 신고 나가라고 했지?” 그래서 마지못해신을 신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한참 후에 집에 들어오는데, 또 맨발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 언짢게 쏘아붙였다. “너 아빠가 신발신고 나가라고 했을 텐데?” 아이에게 돌아온 대답은, “저 신발 신고나갔잖아요?”

 

    앞의 부녀 지간의 대화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까? 전달자와 해석자(수신자) 간의 간극(gap)이 생긴 것이다전달자의 의도는, “신을 안 신고 다니면 발이 다치기도 하고, 또 흙 묻은 발로 집에 들어오면 더러워지기도 하니, 신을 신고 다녀라.”이다. 그런데 수신자는 전달자의 말을, “집을 나설 때에는신을 신고 나가라….그러나 나간 후 친구들과 놀 때에는 마음대로 벗고 놀다가 집에 들어올 때에도 신을 벗은채 들어와도 된다.”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전달자와 해석자간의 간극이한 시대와 한 공간의 아주 친밀한 사이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면, 전달자의 콘텍스와 해석자의 콘텍스트가 너무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경우, 그 간극은 훨씬 더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이것이 텍스트(text)와 콘텍스트(context)간의 현실적 거리이다.

 

    그래서 설교자가 한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가장 씨름하는 부분이 해석학적 간격을 메우는 문제이다. 달리 말하면, 텍스트에 나타난 그 때 그 곳의 문제(then and there)’지금 여기(here and now)’의 각 개인의 삶의 콘텍스트로 불러오는 문제다설교자는 텍스트의 원래 의도를 찾지 못할 때 가장 심난해진다. 원래 의도를 찾지못하면, 오늘날의 청중의 상황에 맞는 적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설교자로서 매번 이런 일을 만난다. 예를 들어, 22: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이 명령을 어떻게 해석하여 오늘날 적용시켜야 할 지 난감하다내로라하는 학자들의 연구서를 뒤져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럴 때마다 나뿐 아니라, 이런 구절을 읽는 성경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과연 성경이 진리를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가?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7항은,“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이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명백한 것이 아니다(All things in Scripture are not…nor alike clear unto all).”이라고 말한다그렇다면 이 말의 저의가, 성경의 진리는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다는 말일까답부터 말하면 No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스스로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여(perfect, 19:7)”라고 밝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 구원에 관한 한 명백하지만, 삶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는 모든 성경의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가 문자 그대로 오늘날 적용되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이것이 오늘날 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힘겨워하는 이유이다. 글을 읽어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그때마다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나? 물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은 이 시대에 살아가야 할 모든 생활의 답을 일일이 나열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성경은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지혜서나 백과사전이 아니다. 다만 성경은 구원에 관한 한 분명한 길을 제시해 준다. 이런 측면에서 명백(clear)하다. 그래서 신앙고백서 17항 말미에 밝히길, “구원을 위해 필수적으로 알고 믿고 준수되어야 하는 것들을 성경 여러 곳에 아주 명백하게 제시되고(so clearly propounded)”라고 했다.

 

    그리고 결론을 맺길, “유식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식한 사람들도 평범한 방법들을 적절히 사용하면그것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이를 수 있다.”라고 했다. 성경은 신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지식의 수준에 의해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나진리가 왜곡 되어지지 않을 만큼의 힘을 발휘한다. 그 이유는 성경의 기록이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 아래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딤후3:16). 그리고 또한 이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역사하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지식이 부족하여 늘 막막해 하는 사람들은 이제 좀 자신감을 가져보라. 성경은 눈으로 읽는 것이아니라, 영으로 읽는 것이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9-10).

8/15/2015 7:46: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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