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시대에 받은 말씀과 계시, 전인류와 연결되다
박종칠 목사
노아부터 요셉에 이르기까지 고대 인간의 문명이 발달했다고 전제한다면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기록된 자료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고대 시대 자료들을 보면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에이런 자료들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노아 홍수 후 고대세계의 발달은 시날 평지에서 시작됩니다(창11장). 노아에게서 나온 인간 세대는 홍수 이전 세대의 상황을 알려주는 유산들을 보여 주는데이는 바로 구석기 시대의 증거들입니다.
지질학에서는 지상에서 발견된 유물들의 증거에 따라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누고 있습니다. 구석기 시대는 현존하는 인류의 발전에서 가장 오래된 과거 역사입니다. 그것이 대홍수로 인해지상에서 사라졌거나 흙에 묻혔습니다. 그 시대의 유물들은 지금도 현존하는 짐승의 뼈들이거나 지상의 홍수로인해 멸절된 맘모스 같은 짐승의 유물입니다. 이 짐승의 우물과 함께 인간이 사용한 도구나 돌을 깨서 만든타제석기의 흔적들이 홍수로 멸절된 짐승과 함께 발견됩니다. 그 시대에는 기호나 기록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원래는 하나였습니다. 방주에 노아가 표시해 두었던 기록이 발견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역사적 자료들이 창세기 첫 몇 장에 노아와 그 후손의 것으로완전하게 그리고 상세히 보전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아비 라멕과 함께 아담, 셋, 에노스,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고대 조상이 같이 살았습니다.라멕이 56세 때에 아담이 먼저 죽었고, 그후 57년 후에는 에녹이 승천했으며, 다시 55년 후인 노아 출생 전 14년에는 셋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고대 조상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노아 선조의 가문에 익히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출생한 후 에노스는84년, 게난은 179년, 마할랄렐은 234년, 야렛은 366년, 라멕은 595년 더 살았고, 므두셀라는 홍수 해까지 살았습니다.
이 조상들이 각각 자기 선조들과 얼마나 함께 살았는지를 본다면, 창세기 첫5장에 나와 가문의 내력이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창세기1-4장은 가인과 그의 후손에 대한 족보로서 많은 역사적 의미를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고대 조상의 거룩한 보화들의 기록입니다.
가인 계의 라멕과 셋 계열의 라멕은 고대 인류를 대표하는 두 분파로서 하나는 잔인하고 교만한 역사요, 다른 하나는 겸손과 신앙의 역사를 보여 줍니다(창4:23-24, 5:29). 이런 고대 전승들과 기록으로 전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노아가 믿음을 가졌고, 첫 인류의남은 자로 방주에서 구원받은 큰 역사적 의미를 둘째 인류 역사에 남겨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고 봅니다.
홍수 후에 문명의 발달은 함의 세대에서 나왔는데, 특별히 바벨탑 건설과 언어 혼돈 이후에 나타났습니다.함족은 남쪽 곧 애굽이나 더 깊은 아프리카로 나아가기도 하고 가나안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니므롯 통치로 나타난 구스인들이었습니다. (창10:6-8). 바벨론에서 애굽의 문명이 발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발굴된 비문들을 통해 함족의 바벨론 문화와 기록술을 해명할 수 있게 된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함족의 영향력이 커지자 셈족 가운데서 이들 문화가 급속히 확장되어가는 것을 견제하여셈족의 언어와 기록이 발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브라데에서 발굴된 고대 언어의 목록을 보면 고대 아카디어나 혹은 수메르의 함족 단어들이 셈족 단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Lettinga,p. 1-3). 우세한 셈족 세력권이 바벨론을 기점으로 앗수르,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시리아, 피니시아와 가나안으로 확장해갔습니다. 오랜 투쟁 후에 시날 왕 함무라비에서 전체 바벨론을 통치하는 셈족 왕국이 승리한 것입니다.
바벨론의 전통과 문화 발전은 셈족 형태로 계속되었고, 함족의 구스인적 아카디아 형태가 언어와기록에서 동방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함무라비 법전은 바벨론의 생활법인데 셈족의 기념비입니다.이 셈족의 권익을 말하는 조문들이 여러 면에서 족장의 생활법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들이 성경 역사와 얼마나 정확하게 일치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학자마다 연구결과가 다르고, 시대의 연도구별이 서로 다르기도 합니다. 시대적으로한 세기의 간격이 아니라 너무나 먼 과거 역사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성경의 배경과 고대 생활상을 이해하는좋은 단서에 고서체가 있습니다. 앗수르학 연구며 아라비아 비문들을 연구함으로써 발견된 것인데 앗수바니팔(Sardanapalus)토판 연구로 분명해졌습니다. 그 문자들은 당대만이 아니라 일부는 앗수르 왕들보다훨씬 먼 과거 시대인 고대 바벨론의 문자로서 보물입니다. 이 고대 바벨론 연구는 아시아와 서구 고전 문명의근간이 되었습니다.
바벨론 문화권에서는 셈과 그를 조상으로 하는 직계 후손인 아르박삿과 그의 아들 셀라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 살았습니다(창10:22-25, 11:11-31). 갈데아인들은고대 노아 후손의 셈족 주류 그룹인 아르박삿의후손, 바벨론에서 더욱 신흥하는 셈족들에 의해 제압당하고 동화되고 축출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르박삿의 노선은 갈데아 핵심에 근거하고 서쪽 유브라데로 넘어왔습니다.
한편 에벨의 한 족속인 욕단인들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동쪽인남서 아라비아에서 살았습니다. 에벨의 다른 지파인 벨렉 자손들은 유브라데 지역에 안착하여 데라와 아브라함에이르기까지 갈데아의 유명한 큰 도시에서 헤게모니를 잡고 살았습니다(창10:25;11:10-28). 그리고 우르 역시 오염되어 데라에 속한 거룩한 후손은 바벨론 우상으로 더럽혀졌고, 결국 엘람 통치 시대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데라와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조상의 땅과 친척과 아비 집을 버리고 떠나야만 했습니다(창12:1-3;11:31수24:2, 14, 15). 노아와 벨렉, 르우, 스룩, 나홀은 죽었고, 셈과 아르박삿, 셀라, 에벨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그리고 셈과 에벨은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창11: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