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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 섭리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 섭리5

김태길목사

5. 가장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때때로 그 자신의 자녀들을 각종 유혹과 그들 자신의 마음의 타락에 잠시 동안 내버려 두신다. 이는 그들이 전에 지은 죄로 인해 징계하시거나 그들 마음의 부패와 기만의 숨겨진 힘을 깨닫게 하심으로 그들을 겸비하게 하기 위함이요또한 그들을 깨우쳐 생존을 위해 더욱 친밀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장래의 모든 죄지을 기회들에 더욱 경계하고 여러 다른 의롭고 거룩한 목적들을 위해 주의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다루시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때로 하나님은 마치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66:13) 위로하신다반대로 하나님은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3:12) 징계하신다. 아비처럼 훈계하시고또한 어미처럼 다독이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신자가 세상적인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을 가면서도 당분간 돌이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 신자는 하나님이 벌할 것 같다는 불안감을 안고 산다. 그런데도 생각했던 만큼의 벌이 주어지지 않는다.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직장을 잃는다거나, 병이 든다거나, 가정에 우환질고가 끊이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면 정신이라도 차릴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그런데도 나의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징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신자는 더 불안해 진다. “혹시 나는 버려진 자식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그러면서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12:8) 같은, 평소에는 일부러 암송하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던 구절이 선명하게 떠오르기까지 하면, 마음이 이루말할 수 없이 더 쿡쿡 쑤셔온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다면 몰라도, 살아계신다면 이토록 나의 잘 못에 대해서 침묵하실 수 있을까하고 스스로 묻게 된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심지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45:15). 하나님의 침묵을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다. 여기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택한 백성이 어려움과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 당신께서는 도대체 뭣하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자는 끝까지 인내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신의범죄 때문에 참회의 고백을 하는 다윗의 심정을 들어보자: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143:7). 다윗은 하나님의 침묵을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라고 표현하면서, 하나님께 뭐든 하실 일을 행해 달라는 탄원을 드린다.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한 비참함 때문에 힘이 들어 한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다.

 

    왜 신자는 하나님의 침묵에 불편해 하는 걸까?하나님은 악인을 내버려 두심으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 단어를 3번씩이나 사용하면서 악인들의 유죄를 확정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1:24).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1:26).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1:28). 고대의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 또한 악인이 받는 징벌 중에 버려둠이 있다고 믿었다. 욥이 고난 중에 있을 때,그의 친구 빌닷의 충고를 들어보자: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그 죄에 버려두셨나니”(8:4). 빌닷의 말이 욥의 콘텍스트에서는 틀린 말임에도 불구하고,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었다.신자의 불안감이 뭔가? 스스로에게 나는 버려둠을 당한 악인일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들 자신의 마음의 타락에 잠시 동안 내버려 두신다.”“잠시 동안이라는 단어가 보이는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원문에는 “for a season”이라는 표현을 썼다.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버려 두심이 잠시 동안 만이라는 것이다. 이 단어가왜 중요할까? 성경은 악인의 결말을 영원한 멸망의 형벌(살후1:9)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악인에게는 잠시 동안만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버려 두심으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신자와 불신자가 동시에 똑 같은 범죄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은 그 이유와 목적이 각각 다르다. 불신자는 영원한 멸망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만신자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잠시 동안만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이 잠시 동안이라고 번역된 구절이 여섯군데(개역개정)에서 나타난다. 그 중에 두 곳이 헬라어 브락쿠스”(βραχς)라는 단어로 쓰여졌다. 이 단어가 간단히라는 뜻도 있긴 하지만, “잠시 동안이라는 단어로 쓰여질 때는 유일하게 예수님의 상태에 관하여 설명할 때에만 나타난다.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2:7)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예수를…”( 2:9)에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비참의 상태에 머무시는 기간을 두고 잠시 동안이라고 표현했다만약 예수님이 잠시가 아닌 영원히 불완전한 육신을 입고 계셨다면 그분의 영광은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그러나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것은 잠시 동안만 이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종의 형체가 아닌, 영광스런 몸을 입으셨다. 육신을 버리지 않으시면서 동시에 자신의 영광을 되 찾은 것이다그리고 지금 예수님은 육신을 입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신 것이 아니라, 신령한몸을 입으시는 것으로 옛 영광을 되찾으시고, 또한 그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신다.

 

    신자가 잠시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 듯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영원히 비참함에 빠지게 함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 누리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은 신자가 죄악에 한동안 빠져 있음으로 해서, 자신의 비참함을 스스로 깨닫고 더 하나님을 붙들게 하신다. 신자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려 둠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에는 이 말씀을 기억하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8).“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

1/21/2017 11:51: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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