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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 섭리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 섭리3

김태길목사

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반적인섭리에서 수단을 사용하시지만 수단 없이, 수단을 초월하여 그리고 수단을 역행하여 자기의 기쁘신 대로 자유롭게역사하신다.

 

    페니실린이 발견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인류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플레밍이라는 사람이 발견하고 난 후, 인류의 평균수명은 수십 년이나 증가하게 되었다.페니실린은 푸른곰팡이로부터 왔다. 그리고 푸른곰팡이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미생물이다. 오늘날 누군가 큰 수술을 받는다면 반드시 항생제를 투여해야만 감염 없이 무사히 회복하게 된다.“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반적인 섭리에서 수단을 사용하신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다.하나님께서는 이미 인류에게 수많은 일반적인 섭리의 수단을 허락하셨다. 인류는 이수단들을 사용함으로써 살아간다. 아무도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의 수단 바깥에서 살아갈 수 없다.하나님께서는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가장 적합한 의사를 만나게도하시며, 다른 병원에서는 혜택을 볼 수 없는 시험중인 신약을 만나게 하시는 방법으로도 병을 고치신다.의사와 약은 하나님이 일반 은혜로 주신 수단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류에게 허락하신이 보편적인 수단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섭리를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도 질병과 관련하여 어떤 수단을 사용하셨다. 눈먼 사람을 낫게 하실 때,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연못에서 씻게 하는 방법으로 낫게 하셨다 (9:6). 또한 베데스다 연못을 사용하셔서 병자를 낫게 하시기도 하셨다 (5:2). 물론 이런 것들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의술의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만의능력을 보여주시는 독특한 수단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종종 아무런 수단 없이 그냥 행하시기도 하신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일어난 것은단지 예수님의 나사로야 나오라”(11:43)고 하신 소리 때문이었다. 의술이라는 일반적인 섭리의 수단을 전혀 사용하시지 않고도 사람이살아났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도 부활의 주가 되실 것을 미리 보여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절망가운데 있는 병자에게 섭리하실 때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취하신다. 첫째,불가능할 것 같은 치료를 특정 의술이 100퍼센트 발휘되도록 하심으로 가능케 하신다.이것은 수단을 사용하시는 섭리다. 둘째, 현재계발된 의술로는 도무지 치료가 불가능할 때, 의술이라는 수단을 초월하고역행하시는방법으로 그냥 낫게도 하신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부른다.

    야고보서 5 16절은 이렇게 가르친다.“…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우리가만약 누군가의 병이 낫기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크게 두 가지 방법 안에서 행하실 것이다.수단을 사용하시는 방법과 수단 없이 행하시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들으시고, 의술을 백분 발휘하도록 그 담당의사와 간호사와 약물에 관여하실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의술의 힘으로는 도무지 힘든 상황일 경우, 하나님은 미래에 혹100년 후에나 계발 될 의술의 능력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시행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미래에나 일반화 될 섭리의 수단을 미리 앞당겨서 사용하시는 경우다. 인간 측면에서는아직 생기지도 않은 수단이지만, 하나님은 시간 바깥에서 일하시므로 가능하다. 또 한가지는 앞으로 수천 수만 년이 흘러도 인간이 만들어낸 의술로는 도무지 치료가 불가능할 때, 하나님은 섭리의 수단 없이 그냥 낫게도 하신다.

    그런데 신자가 왜 실망하는가? 기도를 했는데도 하나님은 병이 낫는 방향으로 일하시지 않을 때도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도를 정말 지극정성으로 했는데도, 병이 낫지 않았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혹 어떤 이는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지극한 노력과 성의에 탄복하여 그의 계획을 돌리시거나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인간 편에서 가장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께도 항상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인간 편에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길이 하나님 편에서는 최선의 길이 될 때도 있다. 사람의 생각의 잣대는 항상 하나님의 것보다 짧다.30인치 짜리 자를 가지고는 우주의 넓이를 잴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작은 자(ruler)를 가진 인간의 눈에는, 무한대의 자를 가지신 분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이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차라리 감추어져 있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버지다우신 자비하심과 사랑 혹은 엄격한 정의가 섭리의 전 과정에서 밝히빛을 발하지만, 때때로 사건들의 원인들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그리하여 인간사가 운명의 맹목적인 충동에 의해서 이리저리 휘몰린다는 식의 생각이 슬그머니 끼어들며, 마치 공을 이리저리 던지듯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데리고 장난하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육신적인 반발심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그러나 아무리 그 원인들이 우리의 시각에서 감추어져 있고 오리무중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들이분명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강요, 크리스챤다이제스트,pp. 255-56]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인정하라. 엄마가 자식의 속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자식은아버지의 마음을 손톱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기에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한다. 칼빈은 이렇게 권면한다:

 

자기가 대하고 있는 분이 바로 자기의 창조주시요, 우주의 조성자시라는 것을 명심하여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두려움과 경외의 자세를 갖게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결코 하나님의 섭리를 올바로 가늠하고거기에서 유익을 얻을 수가 없는 법이다. [기독교강요, p257]

1/7/2017 1:58: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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