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에 대해 알기9: 지금도 성령의 불세례를 기다려야 하는가
박영돈 목사
오순절 전과 후의 성령 사역의 근본적 차이는 오순절에임하신 성령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시라는 점이다. 오순절 전까지는 아직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완료하고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성령이 임하시지 못하였다. 제자들은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완료되기까지는 부활하여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의 선물은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중생 후 성령을 받은 것은 그들이 처한특수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들은 성령의 옛 시대에서부터 새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에 서 있었다.제자들의 성령 체험은 그들을 새 시대, 즉 교회시대로 진입시킨 ‘시대 전이적 사건’이었다. 이런 점에서 제자들의 경험은오순절 후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성령 체험의 정상적인 규범이 되지 못한다.
우리 중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태어난 이들은 해방 전후에 걸쳐산 이들이기에 두 시대를 경험했고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날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더 이상 해방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일제의 식민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미 성령이 와 계신 새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오순절전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 갈 수 없다. 더 이상 성령의 오심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오히려 성령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새 시대의 성령,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며 구약에 약속하신 새 언약의 모든 은총과 선물을 안고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이 지금 우리 가운데계신다. 오랫동안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의 문제는 오순절전의 제자들처럼 아직 새 시대의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워서 이미 와 계신 성령의 영광과 그 은혜의 풍성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갈망하지 않으며 또 우리의 삶 전체가 성령께 주관되는 삶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성령께 온전히 사로잡힌 삶을 살기 원한다면우리도 제자들처럼 삶과 사역을 놀랍게 변화시키는 성령의 역동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목마른 자는 다 내게 나아와 마시라”고 말씀하셨다. 진정으로목마르면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는 성령의 생수가 공급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8)라는 주님의말씀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이 다시 우리에게 오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성령께 돌이켜야 한다. 세상과 육신이 정욕을 따라 삶으로 오랫동안 성령을 근심시킨 삶에서 돌이켜야한다. 물세례 말고 불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물세례의 참된의 미를 회복해서 삶 속에 구현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라고 하셨을 때 주님이말씀하신 요한의 물세례는 지금 우리가 받는 물세례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요한의 물세례는 임박한 메시야의 왕국과구원을 예비한 회개의 세례였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완성된 바탕 위에서 주어지는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에근거한 세례가 아니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어진 세례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 물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인침을 받는 것을 외적으로상징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일어난 성령 세례라는 내적인 실체와 외적인 상징인 물세례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후 신자들의 경험에서 믿음(회개)과 세례와 성령받음은 하나로 엮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서로 별개의 체험으로 볼수 없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을 받고 그 내적인 실체를 물세례를 통해 외적으로 인 치는 것이 성경이제시한 규범적인 패턴이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는 세례의 참된 의미가 퇴색되어 실제 상황에서 물로 세례를받는 것과 성령을 체험하는 것 사이에 심각한 괴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참된 믿음과 회개 없이 형식적으로세례를 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많은 교인들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세례의 근본 의미를 삶 속에서전혀 실천하며 살지 않기에 성령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영적으로 무력하고 피폐한 삶을 살아간다.
우리에게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신앙의 정도로 돌이키는것이다. 우리 교회에 세례의 의미를 회복하여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살려고 할 때 우리는 성령의 생수의 강에 잠기는 성령 세례의 실체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pp. 197-199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