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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에 대해 알기 6: 치유 사역의 필요성

성령님에 대해알기 6: 치유 사역의 필요성

박영돈 목사

 

    요즘 치유 사역자들은 작은 치유의 성과도 부풀리고 과장하기일쑤다. 그에 반해 일반 목사들 중에는 이런 은사가 있음에도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말씀 사역에만 전념하는이들이 많다. 스펄전 목사는 병 고침에 대해 전혀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도를 통해 병이 나은사람의 수가 런던의 어떤 의사가 고친 병자들보다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들의 기도를통해 치유되는 실례는 실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치유 집회와는 달리 그런 교회에서는 이런 것들이크게 부각되고 선전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치유 집회의 부정적인 면을 보면서 또 다른 극단으로치우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건전한 치유 사역에까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그런 사역에 참여하기를꺼려서는 안된다. 치유 사역을 전부 사이비나 광신적인 집단에게 맡기고 방관하지만 말고 이제는 전통적인 교회가앞장서서 성경적인 토대 위에서 치유 신학을 정립하고 건전한 치유 사역의 모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지금까지우리 교회가 이 일을 소홀히 해 왔기에 치유 사역이 음성적으로 발전하여 온갖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하게 된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적으로 볼 때 치유는 하나님나라가 능력으로 임하는 표징이며 망가진 인생들을 고쳐 온전하게 하는 새 창조의 표징으로서 복음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므로 특별히 선교지에서 효과적인 복음 전도를 위해 필요한 사역이다. 치유의 기적은하나님 나라의 능력의 현시로서 복음 전파의 최전선에서 방해 세력을 제압하고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복음을 이성적으로만 제시하는 서구식 전도 방식만으로는죄의 세력에 사로잡혀 심령이 완악해진 사람들을 설복하기에 역부족일 때가 많다. 선교지에서 이런 식으로 전도해온 한 복음 전파자에게 현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당이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가끔은30분쯤 지난 후에 낫는다. 무당은 우리를 도와주는데, 하나님은 조금도 도움이 되시지 못했다.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 신인가?” 복음이 처음으로 침투하는 최전선에서는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왕국과의 충돌이 일어난다. 치유의 기적은 이런 영적인 전쟁에서 악의 세력을 궤멸하고 하나님 나라가 능력으로 임하는 것을 전시하는 효과가 있다.

 

    선교지만이 아니라 현대 문화 속에 존재하는 기존 교회에도치열한 영적인 싸움이 계속된다. 현대인들은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초월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된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다. 어릴 적부터 그런 세계관이 기초한 교육과 사상으로 세뇌되어 온 현대인들은 기적이나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성경적인 세계관과 그들을지배하고 있는 세계관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난다. 그들을 이성적으로만 설득하여 복음을 믿게 하는 데는한계가 있다. 그들에게 복음은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신화로 드릴 수밖에 없다. 그들을 주관하고 있는 폐쇄된 세계관이 와해되지 않는 한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치유의 기적은 이런 현대인의 완고한 사고의 틀을 깨뜨리고 지금도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심을 보여 줌으로써 복음이 믿을 만한메시지임을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치유의 표적은 그것이 십자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정확히가리키는 한, 현대인들을 향한 전도에 요긴한 성령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치유는 교회 안에 있는 기존 신자들에게도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새롭게 인식하고 체험하게 하는 유익한 기능을 한다. 교인들마저 세속적인세계관에 깊이 젖어 있기에 지금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잘 믿지 못한다. 그렇게 된 데에는기적은 원래 없었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나, 기적이 과거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보수주의 신학의 영향이 클 것이다. 기존 교회에 치유의 역사가 잘 나타나지 않는 데에는 이런 신학으로 인해야기된 불신앙도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목사가 치유에 대해 어떤 신학적인 확신을 가지고 목회를하느냐에 따라 치유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대체로, 지금은 더 이상기적적인 치유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교회에는 그런 역사가 희소하게 나타난다.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왔기에교인들이 치유의 기적을 믿지 못하고 그런 은혜를 기대하거나 구하지 않는다. 반면,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치유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그것은 교인들이 그만큼 치유에 대해 믿고 간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 치유의 역사가회복되기를 소망한다면 올바르고 균형 잡힌 치유에 대한 가르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치유는 선교지만이 아니라 기존 교회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나야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은 교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임재하시고 일하시는 현장이라는것을 의미한다. 2천 년 전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신 그 주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에게말씀하시고 우리를 치유하신다. 주님이 안식일을 택하여 병자들을 고치셨듯이, 오늘날에도 주님은 안식을 기념하는 주일에 주의 백성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말씀을 보내어 우리를 치유하신다.그리스도의 복된 말씀, 즉 복음은 파괴된 인간을 치유하여 온전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새 창조의 능력이 함께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는 우리의 전인을주님께 헌신하는 시간인 동시에 우리의 전인이 주님께 치유받고 새롭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몸을 주님께헌신하면 주님은 우리 몸을 위하시고 강건하게 하신다. 병 고치는 것보다 더 큰 기적, 즉 수많은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존하시는 은밀한 은혜로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서 안식에 참여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이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pp.130-133 발췌.

7/24/2015 5:24: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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