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김태길 목사
모든 일을 그의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1:11).
이 구절은 소위 “예정론”이라고 부르는 것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나는 예정론에 대해서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일상에서 내가 결정하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에베소서 1장11절은 세상만사에 주체와 객체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주체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객체는 “우리”라고 표현한다.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객체는 사람이다. 하나님 자신이주체가 되는 것을 주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의 범위를 “모든 일”이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모든 일”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당신은 오늘 아침에 세수를 먼저 했는가? 아니면 양치질을 먼저 했는가? 아마 기억이 가물가물 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 했던 나의 행동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비록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그것들은 나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진 나의 인생에 작은 역사의 한 조각이다. 나는 아침에 세수를 안 할 수도 있는 권한이 있고, 양치질을 오후에 할 수 있는 결정권도 있다. 또한 양치질을 밥 먹기 전에 하고, 세수는 밥 먹고 난 후에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결정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는 나의 인생에 어느 만큼이 해당되는 것일까?“모든 일”을 결정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이 정말 나의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것까지 간섭하시고, 심지어 이것들의 순서를 정하고, 혹 빼먹는 것까지 하나님의계획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사소한 것은 나의 몫이고, 중대한 결정들은 하나님의 몫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사소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중대한 것들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답해 줄 사람이 아마도 이 땅에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성경적인 원리가 무엇인지는 한번 짚고 넘어가보자.
성경은 먼저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수정할 자유의지가주어졌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는 말씀에는 사람에게 인생의 청사진을 그리도록 허락하셨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그렇다면 계획은 내가 세우고, 그 계획을 시행하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내가 잘못된 인생의 계획을 세우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인도해 나가신다는건가? 또는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결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으시다가 그 개인의 결정사항을 실행에 옮기려고 할때 조금씩 관여만 하신다는 뜻인가? 이것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작정”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 로이드 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 하는 일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활동들에 불확실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하나님의 계획은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일과 사건들을 포괄하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우연한 사건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통제하시고, 결정하신다는것을 보여 주는 성경의 증거가 있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아주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도 하나님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도,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악을 유발하시지않습니다. 그분은 악을 승인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한 행위자들이악을 행하는 것을 허용하시며, 그분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악을 지배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작정은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이다라고 하는 명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작정은어떤 의미에서도 인간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뜻하시는 것은 틀림없이 일어나야만합니다. 아무것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것을 꺾을 수없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그분 자신의 최고로 지혜롭고, 자비하시고,거룩한 본성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다시말해 하나님 안에는 모순이 없습니다.즉 하나님은 자유를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궁극적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지배하십니다.모든 것이 결정되고 정해져 있다며 왜 그분은 우리를 벌하시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이 영광 가운데 들어가기까지는 궁극적인 이해를 보류해 두어야 합니다.지금 이 곳, 시간 속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일관성이있으심을 믿고, 하나님이 그의 영원하신 작정과 창세전에 결정하신 일들에 대해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는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교리 강좌 시리즈1, pp. 173-182에서요약발췌]
하나님의 작정은 완벽하기에 인간이 저지르는 죄나 실수로인해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죄를 유발시키는 제1원인이 아니시지만그 인간의 죄마저도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금지된 열매를 따 먹는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왜냐하면 ①하나님이 아담의 불순종하도록 작정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②하나님의 작정을 벗어나서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①번과 ②번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그러나 “표현과 논리의 모순이 인간에게는모순일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모순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①불순종할 것인지 ②순종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셨다.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그래서 아담은 자유의지로 불순종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아담이 불순종하도록 하나님이강권적으로 역사했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이 불순종하도록 적극적으로 역사하셨다고 하면,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건은, 구원의 은혜가 아닌 하나님의 “병주고 약주고” 식의 자작극 해프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에 외아들을 죽이시기 위해서 자작극을 벌이는 아버지가 있는가? 하나님이 그래야만 될 이유가있는가? 없다.
하나님의 작정이 사람의 인생에 절대적으로 유효하게 작용한다.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유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작정에 틀에 집어 넣으려고 강요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20년 후 가나안 땅의 기근에서 야곱의 집안을 구원하시려고, 요셉을 구덩이 쳐 넣으시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 당하게 하시고, 감옥에 갇히게 하시고, 결국 총리가 되게 하셨는가? 하나님의작정 안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요셉이 죽을 뻔한 일들은 인간의 죄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것을 두고, 요셉은 이렇게 표현한다. ①하나님이 생명을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②나를 이리로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8). ③당신들은 나를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요셉은 이 세 구절의 고백에서, 이집트에 자신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했다.그렇다고 해서 형들이 자신을 시기해서 구덩이 넣어서 죽이려고 했던 것 마저 하나님의 계획인가? 아니다. 요셉은 이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들은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악은 요셉의 형들이 행했고, 그것을 선으로 바꾸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구분 짓고 있다. 이것이 정확히 하나님의 작정이다.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의 실수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수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한다고 해서,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이제 신자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들어가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