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여인들 1: 아비가일
김태길 목사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잠14:1).
성경에는 지혜로운 여인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 아비가일은 단연 돋보인다. 구약에는 아비가일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존재한다. 한 사람은 다윗의 친누이이며(대상2:16), 또 하나는 나발의 아내이다(삼상25:3).오늘 다룰 사람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다.
아비가일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기뻐하신다’이다.그래서 인지 성경은 그녀를 두고 “이해심도 많고 용모도 아름다웠다”(삼상25:3, 새번역)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또 다른 성경에서는 “총명하고”라고 번역한다(개역개정). 아마도 종합적으로 판단컨대, 아비가일은 지성과인품과 외모를 골고루 갖춘 당시에도 보기 드문 여성이라고 성경이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오늘날 미혼 남자들이결혼 상대자를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외모와 마음씨이다. 게다가 지성까지 겸비한 여성이다.아비가일이 21세기에 살았다면 그녀는 분명 인기가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법 시집도 잘 갔을 것이다. 그런데 3,000년 전의 그녀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너무 어울리지 않는 남편을 만나게 된다.성경은 그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는 뜻의이름을 가진 나발이라고 소개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자라 아내 고생은 들 시켰던 것 같다.성경은 나발이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삼상25:2)라고 소개한다. 동방에서 가장 부자였던 욥이“양 칠천 마리, 약대 삼천, 소 오백 겨리, 암나귀 오백”(욥1:3)이라고 소개한 것과 비교해 보면 나발도 상당한 부자였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나발이 “부자이지만 어리석다”라는 말로 그의 영성과 인격이 형편없음을 더 부각시킨다. 쉽게 말하자면 졸부라는 말이다. 아비가일 같이 현모양처 감이 어쩌다 이런 졸부와 인연이 맺어졌는지성경은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졸부인 나발에게 돈으로 팔려갔을 수도 있다고 예상해 본다.
어느 날 다윗의 무리와 만나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에 새 바람이 분다. 성경은 다윗이 부하들을 시켜서 나발에게 음식을 요청한 시기를 나발이 “갈멜에서 양 털을 깎는”(삼상25:2) 시기라고 말씀한다. 먼저 ‘갈멜’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진다. 갈멜은 나발이 살고있는 곳은 아니었다. 성경은 그가 ‘마온’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날 갈멜에서 양털을 깎았다는 것은 갈멜에 양털깎는 시기의 큰 축제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때 큰 돈이 움직인다. 양모 거래가 성사되고, 외지 사람들이 몰려들고, 음식과술이 넘쳐난다. 성경은 은근히 ‘갈멜’이라는 장소를 기록함으로써 사울이 했던 교만한 행동을 나발에게도 투사시키고 있는 듯 하다. 사울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삼상15:12)라고 성경이 기록하듯이 사울의 교만은 갈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다.전쟁에 도무지 이길 만한 군사력이 없었음에도 이겼다면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전쟁임에도 사울이 자신을 위해기념비를 세운 것은 교만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 영적 교만의 상징적인 장소가 갈멜인 셈이다.그런데 그 장소에서 나발이 있다. 성경은 나발이 굉장히 영적으로 교만한 인물임을넌지시 알려주려는 것이다.
나발의 영적 교만은 다윗을 만나면서부터 최악으로 치 닫는다. 나발은 그 동안600명의 군사를 동원해서 지역을 방어하고, 가축들을 지켜준 대가로 잔치기간 동안약간의 음식을 공급해 달라는 다윗의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게다가 다윗을 “도망친 종”에 비유하면서 속을 긁어 놓는다. 다윗은400명의 군사에게 칼을 차라고 명령하고선 일가족을 몰살시키려고 출정한다. 이때하나님은 아비가일을 예비시키신다. 일의 전 후 사정을 전해 들은 아비가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알아챈다. 그러고는 그녀는 굉장한 순발력을 발휘한다. 성경은 아비가일이“급히”(삼상25:18) 음식을준비했다고 기록한다. 급히 준비한 것 치곤 엄청난 양의 음식이다. 떡이백 덩이 포도주 두 가죽 부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백송이,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나귀에 나누어싣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윗이 당도하기 전에 이 모든 음식을 준비하지 않으면 목숨을부지 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 준비한다. 집안살림을 진두 지휘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고 짐작 가능하다. 평소 큰 잔치를 치르거나 살림을 도맡아서 꾸려온것이 분명하다. 아비가일은 부자 집 여주인 행세나 하면서, 쇼핑이나다니고, 거드름 피우는 꼴불견 아낙네와는 차원이 달랐다. “잡아서 요리한양 다섯 마리”라는 표현만 봐도 얼마나 신속 정확하게 양을 잡고 요리를 끝내기까지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분주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해냈다.
이제 음식을 가지고 다윗이 오고 있을 길목으로 나간다. 아비가일은 마음속으로 기도했을 지 모른다.“하나님 제발 이 길목에서 다윗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또한 만나거든 그를 설득할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드디어 다윗의 일행과 마주친다. 그때 아비가일은 땅에 넙죽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그리고 그녀는 다윗을 3가지 요점으로 설득한다. 성경은 그것을 상세히 기록하는데, 백지연 아나운서도 울고 갈 만한 말솜씨를 발휘한다.그 내용은 이러하다. 첫째, 어리석은 남편의잘못이 아니라 다 자신 탓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요청하러 온 자리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까지 일이벌어졌다면서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삼상25:24)라고 한다. 둘째, 원수는 하나님만이 갚으실 것이니 하나님께다 맡겨야 되며, 셋째, 후에 왕이 되었을 때 후회할 일을 하면 안된다.
아비가일의 설득은 그야 말로 촌철살인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녀는 먼저 “이 불량한 사람 나발”(삼상25:25)이라고 남편을 깎아 내린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다윗의 자존심을 치켜세워주고 있는 것이다.아비가일은 아마도 심리학을 공부했어도 대성했을 듯싶다. 두 번째 설득의 요지는 신학적관점이다. 원수를 멸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아비가일은 신학공부를 했어도 굉장히 훌륭한 신학자나 성경교사가 되었을 법하다. 세 번째 설득의내용은 다윗 왕국에 대한 인정이다. 지금은 도망자 신세이지만, 미래에곧 왕이 될 것이며, 그 왕국은 하나님께서 손수 세워 나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왕이 된 후에 이런 불미스런 전력을 남겨서 뭐가 도움이 되겠느냐는 논리였다. 이 대목은아비가일이 마치 사무엘을 대신하는 선지자 역할까지 한다.
아비가일의 설득은 바로 먹혔다. 다윗이 곧바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막으시는 것이라고 찬양한다.이후 나발은 되어진 일을 전해 듣고 “몸이 돌과 같이”(삼상25:37) 굳는 병이 찾아온다. 그리고 마지막에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시매 죽게 된다. 이제 아비가일은 과부가 되었다. 당시 과부는 죽는 것만큼이나 힘든 현실이 기다린다. 그러나 다윗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아비가일의 지혜로 “인생역전”이 된 것이다.어리석은 졸부의 아내로 사는 것 보다 잘 생긴 왕의 아내가 백 번 낫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