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에 대해 알기 3: 성령을 팔아서 사기 치는 자들
박영돈 목사
성령 운동을 하는 이들 중에는 성령과 동행하며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기보다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끌어당겨 자신의 성공과 명성을 위한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많다. 그렇기에 수많은 성령 집회와 은사 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꼭 있어야 할 성령의열매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을 그리스도를 닮은 아름다운 인격자로 변화시키는 성령 운동이 아니라 초자연적이고신비적인 은사와 체험을 좇는 광신적인 모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주님은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일하고 기적을 행하며 귀신을 쫓아내도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분명한 특징이라고 하셨다(마7:15-23). 이런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자칭 성령의 사역자라고 하는 많은사람들은 이 부류에 속하며, 상당수의 은사 집회는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치는 사이비 집회에 더 가까울 것이다.요즘 한국 교계에 성령을 빙자하여 사기 치는 자들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
아무리 굉장한 능력을 행하고 탁월한 은사를 발휘할지라도 예수님을 닮은 인격의 열매가 없는 이는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참된 영성의 표징은 ‘예수님께 집중하는’ 수줍음과‘예수님을 닮은 모습’이다. 이러한성령의 열매는 성령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만 배양된다. 일상 속에서 성령과 함께 걷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사역할 때만 성령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성령의 열매자 맺히지 않는다. 성령의 사역자들에게 열매 없이 은사만나타나는 현상은 그들이 은밀한 삶에서 성령을 거스르는 불법을 행하며 산다는 분명한 증거다. 이는 성령을 순종해야할 인격적인 대상이 아니라 사역을 위한 도구로 취급한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성령 운동에서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 준다는 말이다.성령으로 충만한 사역자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성령 충만한 은혜가 참석한 사람들에게 흘러나가고, 그의 안수를 통하여 방언, 예언, 병 고침의 은사들이전수된다고 한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그 기름을 다른 이에게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주장은 매주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을 무시하고그분을 하나의 도구나 인간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반면에 인간을 신격화하는 말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마치 성령을마음대로 움직이며 유출할 수 있는 성령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소행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은그런 의미를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말의 표현에는 우리의 생각과 의도가 담겨전달되기 마련이다.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성령에 대한 표현에 있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무분별하게 그런 말을 마구 사용하여 혼란을 빚는 일을 삼가야 한다.
물론 성령으로충만한 사람은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의 사역을 통해 은혜가 풍성하게 임할 수 있다.그러나 그는 단순한 성령의 도구이며 통로일 뿐이다. 이는 성령의 은혜를 전수하는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전수하는 것은 내 것이 된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성령의 은사와 권능은 내 소유가 아니며 내가 그것을 마음대로 전수할 권한은 더더욱 없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이다. 성령 충만이라는 말 자체가 성령에 의해 주관된다는것을 뜻한다. 인간이 자기 뜻대로 자유롭게 유출할 수 있는 은혜가 아니다. 성령의 은사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부여되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인간이안수한다고 이 선물이 하사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통해 성령 충만과 은사가 전수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며 성령을 자신의 원대로 움직이는 시녀로 취급하는 ‘성령 모독죄’를 범하는 것이다. 교인들에게는 그런 집회에 참석하여 안수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성령의 은사와능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와 요행심을 불러일으켜 성령보다 자칭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사역자들을 더 바라보고 의존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된다.
입으로는 삼위 하나님을 고백할지라도 성령을 마구 끌어당겨사용하거나 남에게 자유롭게 전수할 수 있는 능력으로 취급하는 이는 실제적으로 성령의 인격성을 무시하는 이위론자, 즉 이단자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사역의 성공이나 자기실현을 위한 동력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반기독교적일뿐 아니라 이단적인 행위다. 일부 성령 운동이나 성령의 사역자들에게서 성령의 인격성을 손상시킴으로 기독교의근간을 흔드는 이단자의 얼굴이 자주 나타난다.
성령은 신적인 인격이시다. 이것이 성령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식이다. 성령이 인격이 아니시라면 기독교 신앙은 붕괴된다.구원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와 연합도 불가능해진다.만일 성령이 단순히 능력이나 영향력이라면 성령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효력을 전달하는 도구는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인격을 중재하는 채널은 될 수 없다. 성령이 인격이 아니라 능력이라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연합이이루어질 수 없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갱신하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좌절될 수 밖에 없다.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은 하나님 자신의 인격과 분리되어 전달되지 않는다. 이구원의 선물은 죄 용서함과 천국 티켓만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 자신의 인격을 내어 주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이우리 안에 내주하여 우리와 교제하며 천국의 실체를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그 안에 상호내재하실 수 있는 신적 인격체이시기에 우리 안에 삼위 하나님의 내주를 실현시킬 수 있다. 성령 안에 성자가거하시고 성자 안에 성부가 거하신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성자와 성부도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러므로 만약 성령이 인격이 아니라 단순히 능력이라면우리 안에 삼위 하나님의 내주는 불가능하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적 신앙은 붕괴된다. 성령의 인격보다성령의 권능과 은사에 치중하는 성령 운동은 결국 삼위일체의 신비에 깊이 뿌리내린 기독교 신앙과 체험의 핵심 내용을 상실한 채 기독교의 옷만 걸친영성 운동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IVP]pp.72-75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