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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가진 자와 방패를 가진 자

창을 가진 자와 방패를 가진 자

김태길목사

모든 것은 관계다옛창조도 관계고 새창조도 관계다. 사랑도 관계다. 질투도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하면 할수록 용기가 나고 두려움도 없어진다. 연약함 가운데에도 사랑하면 힘이 생긴다. 사랑하는 마음이 거절 당할 때 분노가 생긴다사랑하는 마음을 몰라줄 때 슬픔과 분노가 생긴다. 사랑하는 자는 약자다.사랑하는 자는 아프다. 그 마음이 너무 아프다. 사랑하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사랑 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믿음 없는 것이다. 이재환 선교사님의 말처럼 하나님은 바보다. 사랑을 쏟고 또 쏟고 기다리기만 한다. 동구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처럼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 그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이 괜히 쓸데없이 아파하는 것까지도 계속 기다린다알아줄 때까지하나님도 알기 때문에. 정말은 하나님을 원하는 것을 본인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알기 때문에그 두 마음이 하나가 되는 기쁨. 그 기쁨을 희미하게나마 맛본 사람은 하나님을 떠날수가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 모습이 엉망진창이 되어도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다. 때로는 하나님이 죽도록 미워도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다. 이미 하나님과 중심에서 하나가 되었기때문에.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약자가 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강자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세상의 속임수에 더 이상 속지 않고 사랑하는 바보가 되기로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먼저 사랑하는 약자가 되셨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우셨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아프셨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다 이루셨기 때문에. 생명은 강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생명은 사랑의 아픔과 용기에서 나온다.  [이지연 집사의 신앙단상]

 

    만약 누군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하루 하루를 불안과 공포로 떨어야 할 것이다. 밤에 누울 때 그 다음날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 될것이다. 낮 동안 언제 자신의 뒤통수를 칠지 하루에도 여러 수십 번을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다윗의 도망자 생활이 그러했다. 그는 사울의 손에 죽든지 아니면 배고픔으로 죽든지 둘 중 하나는 피해 갈수 없는 처지였다.

 

    다윗은 최소한 여섯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날아드는 사울의 창을 세 번 피하고(삼상18:11, 19:10), 두 번은 사울의 딸 메랍과 미갈을 아내로 주겠다는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과 싸우게 해서 죽음으로 내 몰았고(삼상18:17-25), 한 번은사울의 자객들에게 암살 당할 뻔 한다(삼상19:11). 짧은 기간 동안 여섯 번씩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은 전쟁터의 군인들 아니면 병원 집중치료실의 중증환자 외에 누가 경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다윗은 전쟁터도 아니고 병원도 아닌 자신의 집과 일터에서 그런 일을 경험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의 적대감이 전갈의 독침보다 더 화나 있다. 그런데 그를 죽이려 하는 자는 나라의 최고권력자이다수천 마리 고양이를 풀어놓고 쥐 한 마리 잡겠다고 미쳐 날뛰는 포악한 농장주인이 어쩌면 그보다 더 자비로워 보일 정도다사울은 지금 악령에 사로잡혔고(삼상19:9), 질투심이 그를 지배하며(삼상18:8), 그의 왕좌를 넘보는자가 다윗이라고 생각한다(삼상20:31). 게다가 하나님마저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삼상18:12). 나라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다윗을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다. 암울하다. 이번엔 골리앗을 상대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상대가 크고 포악하고 영악하며 전쟁까지 경험한 한 나라의 왕이다. 뿐만 아니라 한때 하나님의 신이 함께 했던 자다. 아무리 봐도 다윗의 목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판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붙여주신다. 그 도움의 손길은 다윗 가까이에 있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요나단이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식으로든 한쪽을 택해야만 했을 것이다자신이 물려받을 왕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약자의 정의를 지켜줄 것인지, 아니면 탐욕의종이 되어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불의의 편에 설 것인지.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삼상18:1). 앞서 신앙단상하나님은 바보다. 사랑을 쏟고 또 쏟고 기다리기만 한다라는 대목이 생각난다. 요나단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다윗에게 사랑을 쏟고 또 쏟는다그래서 요나단은 성경에서 가장 인간미 넘치는 인물이다어떻게 왕의 자리를 내 던질 정도로 친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마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울은 지지리도 자식복이 없었던 걸까? 딸 미갈 마저도 다윗을 너무 사랑한다(삼상18:28). 사울은 이 사실을 알고 다윗을 평생의 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삼상18:28-29). 그리고 결국 미갈은 아버지의 암살단이 도착하기 직전 다윗을 창문을 통해도망가게하고, 다윗이 마치 침대에 아파 누워 있는 것으로 꾸며서 도망갈 시간을 벌어준다(삼상19:12-16).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창 끝으로부터 다윗을 보호하시기 위해 직접 방패가 되어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은사울의 자식들을 방패로 사용하신다. 아버지는 창이 되고, 그 자식들은 방패가 된 셈이다. 아이러니의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지은 시편 7편의 한 구절이 이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7:10).

 

    중국 초나라에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가 있다고 했던가. 그래서 모순()이라고 불렀단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에서 만큼은 사울의 창(,)은 소용없었고, 다윗의 방패(, )만 빛났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다윗의 시, 35:1-2].

6/11/2016 10:48: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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