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23: 오이코스(οἶκος)
김태길목사
하나님은 무엇보다 먼저 교회와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숙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교회의 사역에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개인적인 영적 실천”으로 옮겨 가도록 의도하셨다는 것이다.이것은 “그리스도와 관계에서 성장하기 위해 개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즉 기도, 영적인 일기 쓰기, 고독,성경 연구”와 같은 것을 포함한다. 신자가 성숙해질수록, 관심을 교회에서 사적인 활동으로 옮겨야 한다. 온전히 순복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의 보모 노릇이 필요 없는 청년에 비견된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있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by Michael S. Horton 책 내용 중.
위의 글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 중의 하나인 윌로크릭교회가 자기교회의 사역전반을 진단한 후, 교인 중 많은 사람이 영적성장이 멈춰있거나 교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들 자체로 내린 처방이다. 마이클 호튼은 그의 책에서 이 사실을 인용하면서 결국 그리스도의 제자도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그러면서 “기독교인의 제자도는 목사와 교사들이라는 선물을 통해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엡4:11-16)으로 세워지는 평생 과정이다”라고 결론 짓는다.
성경적 제자도의 핵심은 “또 한 사람의 스승”이 되는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만이 스승”으로 남는 것이다. 신자는 평생 제자로 살아야 한다. 기독교 제자는 졸업이 없다. 소위 말하는 제자훈련 프로그램 수료증은 그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한 기초군사훈련학교를 잘 마친 증표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신병이 전쟁터에 나가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서 비로소 군인이 되듯이, 제자는 교실 밖의 영적 전투장의 치열함과 매일매일 싸울 때 비로소 그 정체성을 찾게 된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무수한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받아 보았고, 목사가 된 후로는 내내 그것을 가르쳐도 보았다. 그러면서 늘 내 마음속에 불편함이 있어왔다. 왜 사람이자라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계속된 의문이 그 불편함의 원인이었다. 나의 질문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의 문제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신자됨과 교회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도대체 교회는 신자에게 무엇을 하는 곳이며, 또한 변하지 않는 신자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누군가 “우리가 “교회에 간다”라는 말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곧 교회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마도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보자는 의미로 한 말일 것이다. 이렇듯 신자가 모인곳이 교회라고 한다면 결국 “기독교 교회”는 목사와 운영위원이 인도하는어떤 조직으로 축소될 수도 없고 그래서 안 된다.
교회론과 관련하여 칼빈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마다 교회를 어머니로 받는다.” “어머니로서의 교회”라는 개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이므로, 그리스도께서 돌보신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신 목사, 장로, 집사 제도를 통해 교회는 신자를 돌보는 어머니 노릇을 한다. 이 얼마나 멋진 개념인가! 하나님 아버지를 주로 모시는 신자가 교회를 어머니로 생각한다는 발상이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모든 사람들에게 뭔가 친근감과 편안함을 준다.
교회가 어머니가 된다는 말에 당장 드는 생각은, 교회는 학교라는 개념보다 앞서 가정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교회는 뭔가 “배우고 얻어내고 유익이 되는 ”가르침의 장소가 아니라, 보살피고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도 초대교회에 그런 표현을 했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롬16:5).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16:19).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골4:15). 신약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교회를 “집”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헬라어 원어는 οἶκος(오이코스)이다. 오이코스는 교회가 가족이며,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에서도 집(오이코스)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명시한다. 새번역 성경은 친근하게 이렇게 번역한다. “이 가족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집이라고 할 때에는 왠지 건물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가족”이라고 하면 훨씬 본질적인 관계의 개념으로 와 닿는다. 이처럼 교회가 가족이라는 개념은 이미신약성경에서 명백히 가르치고 있으므로, 교회가 어머니가 된다는 의미는 영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성경적인 표현이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기독교 제자도를 신약교회에 적용시킨다면 “선생과 제자”라는 방식이 아닌, “어머니와 자녀”라는 개념이 더 맞다.교회는 어머니가 새생명을 탄생시키듯이, 영혼의 새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곳이다. 교회는 어머니가 태어난 생명을 사랑으로 잘 돌보고 키우듯이, 새로 태어난 영적 아기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잘 보살피고 아낌없는 영적 자양분을 통해 결국 건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질그릇교회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신자가 교회를 어머니로 받으며, 서로 보살피고 돌보는 진정한 제자도의 교회가 되길 원한다. 좀더 성숙한 신자는 스스로 어머니*가 되라! 그리고 좀 덜 성숙한 신자가 또 다른 영적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어머니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여전히” 어머니가 되어주라! 어머니가 없는 곳에 자라남은 없다. 교회가 어머니 되기를 포기한다면 그곳은 영적으로 한없이 평균 나이만 높혀가는 영적 노인정이 될 것이다.
(*필자주: 여기서 “어머니”는 육신의 아버지의 반대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자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며, Single parent개념과도 상관없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