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에 대해알기 2: 거룩한 수줍음
박영돈 목사
성령은 ‘얼굴 없는인격’이시라는 말이 있다. 그분은 자신의 얼굴을 감추시는 신비한 인격이시다.그렇기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성령에 대한 많은 혼란이 야기되는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령의 얼굴을 어떻게 분간할 수 있을까?
성령의 얼굴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거룩한 수줍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수줍음은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병든 자의식의 산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감이 없거나 지나치게 자신을의식하기에 수줍어한다. 그러나 거룩한 수줍음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상대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 사랑의 특성이다.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온전히 예수님만 드러내는 수줍음을 가지셨다. 성령은자신의 영광을 베일로 감추시고, 자신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게 하신다 (요16:14). 이 거룩한 수줍음은 예수님의 특성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리셨다. 예수님뿐만 아니라성부 하나님마저 수줍어하신다. 성부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영광을 받으시지만 그분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신다.그리고 아들 안에서 우리도 영화롭게 하신다. 삼위 하나님은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신다.자신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것은 마귀의 특성이다. 인간이 스스로 이름을 내고 자기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욕되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때하나님을 닮은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다.
이 거룩한 수줍음은 성령의 얼굴을 분별하는 중요한 척도다.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거룩한 수줍음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를심히 부끄러워하며 오직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온통 관심을 집중하는 사람이다. 요즘 성령운동을 하는 이들에게서 이 성령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과시하며 자신의 영광과 명성을추구하는 욕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나타날 때가 많다.
거룩한 수줍음은 십자가가 내면화된 증거다.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옛 자아와 그 욕망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얼굴이 나타나는 진정한 성령 집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가 바르게 전파되며 인간의 옛 자아를 죽이는 십자가의능력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이다. 아무리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외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증거되지않는 곳에는 성령이 부재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린다고 외칠지라도 십자가의능력으로 도살당하지 않은 옛사람이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은근히 과시함으로 그리스도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교묘히 가로채는 곳에서 성령은 심히 근심하신다.그러므로 바울 사도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그 십자가에 육신의 욕심과 야망을 못 박은 사람만이 진정한성령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필자도 이 글에서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편의상 성령운동이라는 말을 사용하긴 했지만, 이 말 자체는 아주 잘못된 용어다. 성령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고 선전하는 운동을 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며예수님의 이름과 사역을 증진시키는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성령 운동이라는 말은 이런 성령의 특성과 전혀 부합하지않는 표현이다. 성령은 성령 운동이 아니라 ‘예수 운동’,즉 예수님을 알리고 높이는 운동을 하신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예수님을드높이는 운동을 하는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작금의 성령 운동은 성령을 이용하여 종교적 아성을쌓아감으로써 인간을 높이는 운동으로 둔갑해 버렸다.
또한 성령 운동이라는 말은 마치 우리가 우리 뜻대로 성령을조종하고 운행할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기에 매주 부적합한 용어다. 우리는 우리의 뜻이나 목회 성공을위해 성령을 운동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 뜻대로 우리를 사로잡아 운동하게 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 드려야 한다.우리가 성령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대로 끌어당겨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 순종해야 하는 인격적인 대상으로 성령을 모셔야한다. 한국 교회에는 성령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종교적 야욕을 채우려는 이들은 많아도 성령을 진정으로사랑하여 그분과 매일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며 그분과 함께 걷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열광적이고 신비적인현상 같은 잎사귀들은 무성하지만 정작 주님이 찾으시는 성령의 열매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