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에 대한 생각
박영돈 목사
치유는 하나님나라가 임재하는 표징이며그 나라의 능력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와‘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나라 사이의 종말론적인 긴장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 교회는 성령 안에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경험하며 그 안에서 종말론적인 회복과치유의 능력을 미리 맛본다. 하지만 교회가이 땅의 현실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나라의 은혜는 부분적일뿐이다. 천국의 맛보기에지나지 않는다.
‘아직’을 무시한 채 ‘이미’만 일방적으로 강조하기에,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치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믿음 치유’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아무리 믿음이 좋을지라도 실제로 치유받기보다 그렇지 못하는경우가 더 많다. 고침받았다고 굳게 믿고 선포해 봐도 이 엄연한 사실은 결코 변개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치유를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지않는 한 설명할길이 없다. 신자는이 땅에서 ‘이미’치유의 은혜를 부분적으로 누릴 수 있지만 ‘아직’ 약함과질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지않았다. 이것이 우리가피할 수 없는 종말론적 삶의 특징이다.
때때로 하나님은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병과 고통이라는 십자가를통해서 더 많은 영적인 질병, 교만과방종을 치유하시고 영적 성숙의 밑거름인 겸손과인내를 배양하신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질병과고통의 신비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깡그리 무시한채 믿음으로 치유될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 믿음이라는 탱크로하나님의 뜻을 깔아뭉개는 소행이다. 그것은하나님의 뜻에 근거한참된 믿음이 아니라자신의 소원을 자신의심리에 투사해서 조작해낸 억지 믿음이다. 하나님의 뜻을 비틀어자기 소원에 맞추려고떼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교회는 성령안에서 종말론적인 회복과치유의 은혜를 미리 맛본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치유는 불완전하며 미래의 완전한치유를 바라보게 한다. 부분적인 치유는 온전함이이루어질 종말론적인 소망을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심으로 그분의사랑과 긍휼하심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우리의 병과 고통의 문제를 우리가원하는 대로 해결해주지 않으심으로 더 깊은 차원에서 그분의사랑과 배려를 나타내기도 하신다. 고쳐 주시지 않거나 혹은 치유를 지연하심으로 우리에게훨씬 더 큰 영적인 유익이 있게 하실 때가 많다. 질병과 고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찾게 되고 기도의사람으로 빚어진다. Forsyth가 말했듯이 고통은조임쇠 같은 역할을한다. 목수는 두 널빤지를 접착제로 붙이고완전히 붙을 때까지조임쇠로 꼭 조인다. 더 이상 외부적인압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접착됐을때 조임쇠를 서서히푼다. 이와 같이 고통과 질병은 우리를하나님과 꼭 붙어 하나가 되게 하는 영적인 조임쇠 역할을한다. 고통이 쉬이 가시면 우리 안에 기도의 습관이 형성되지않는다. 그래서 주님은우리가 그분과 온전히연합하기까지 계속 고난이라는 압력을 가하신다.
하나님은 육신의질병을 통하여 우리 내면의 변화를 극대화하신다. 때로는 질병을 우리의죄를 징계하는 방편으로혹은 우리를 교만하지못하게 하는 육체의가시로 혹은 우리를정결하고 겸손하게 하는 성화의 요긴한 방편으로사용하신다. 만약 우리가병에 걸렸을 때마다매번 즉각적으로 병 고침을 받는다면 우리는너무나 많은 영적인유익과 은혜의 기회를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신앙이 깊어지고 성숙할수 있는 절호의기회를 박탈당한다. 많은 치유 사역자들이 질병을통해 선을 도모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뜻과 섭리를 무시한채 무조건 치유되는것이 하나님의 뜻인 양 가르치고 있다. 그리하여 병자들이 낫는 데만 온통 정신을빼앗긴 채 주님의선하신 뜻을 헤아려보지 못하게 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있다.
이 땅 위에서 잠시 질병에서자유하게 되는 것보다더 중요한 사실은십자가의 목적이 우리 안에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죄와 옛사람의소욕에 대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닮은 새사람으로 변화되는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이며 우리 안에 행하시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때로 질병이라는 고난은 우리가죄와 세상에 대해 죽도록 우리를 돕는 적절한 기능을 한다. 우리는 평안하고 건강할때는 육신의 정욕을좇아 살다가 질병에걸려서야 정신을 차릴 때가 많다. 그래서칼뱅은 고난이라는 외적 십자가가 우리의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내적인 사역을돕는 역할을 한다고말했다. 그러므로 병 고침을 받기만을 바라기보다, 오히려 잘 감내하는것이 더 성숙한신앙의 자세라고 하였다. (중략)
치유를 위해서는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치유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필요하다. 현대의 많은 교인들은 사실 치유에대한 확신이 별로 없다. 병 낫기를위해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응답되리라고는 그다지기대하지 않는다. 야고보서는 교인들이 서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교회가전체적으로 또는 소그룹으로 모여서 서로를위해 기도할 때 병 고침의 역사가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간구를 통해 형제의 고통에 참여하고그 짐을 분담하는사랑을 실천하며 서로 한 몸을 이룬 지체라는 의식이 깊어진다. 하나님은 질병을 통해 서로 사랑으로 연합하게하시고, 서로를 위한 기도를 통해 치유의은혜를 베푸심으로써 그 사랑의 소원을 성취해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주셨고 그 사랑을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은사로 주셨다. 오늘날 교회에 사랑이식으니 그 사랑의방편으로 주시는 은사도고갈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소외되고병든 이들을 돌보고섬기는 사랑이 풍성한공동체가 될 때 치유의 은혜도 풍성하게나타나는 치유 공동체가될 것이다. 부활하신주님이 성령을 통하여가난하고 병들어 망가진인생들을 다시 고쳐 온전하게 하시는 새 창조의 사역이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현장으로우리 교회가 거듭나게될 것이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IVP] pp. 119-38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