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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전환19: 복음전도와 성경적 교회

패러다임전환19: 복음전도와 성경적 교회

김태길 목사

 

    얼마 전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중아들의 목회가 걱정이 되셨든지, “예배당이 있어야 매일 기도도 하고,사람들도 오고 할텐데…”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의 의중은 분명, 교회가 부흥하려면 자체건물도 있고, 기도도 많이 해야된다는 것일 게다. 나는 주변으로부터 교회 성장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조언들을 많이 듣는다그 조언들은 대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이 된다. 첫째, 자체 교회당이 제법 좋은 위치에 있을 것, 둘째, 설교가소문이 나야 될 것. 아마도 이 두 가지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적어도 우리 한국교회 실정에서는 교회성장의 불문율처럼 여겨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도자의 입장에서 보면, 위의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다면야 금상첨화일 것이다. 전도하고 싶은 대상자에게전도자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데, 건물과 설교만 한게 또 있을까? 크리스털 교회당처럼 멋들어진 건물에 은혜스런 설교까지 선포된다면, 전도자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데 예배당도 허름하고, 게다가 자체 건물이 아닌 렌트에다가, 설교까지 평이하다면 전도자는 암울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민교회 현실에서 보면, 수많은 작은 교회들의 현실은, 자체건물을 가질 수 없는 형편이기에 아예 처음부터 예배당으로덕? 볼 생각은 가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교회건물과는 상관없이,대부분의 신자들이 생각하는 교회 부흥의 절대가치가 있다. 그것은 이구동성으로 설교라고 말한다. 필자도설교를 공부하고 논문까지 써가며 느낀 점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력하게 하고싶은 말이 하나 있다.

 

    설교가 은혜스러운가 아닌가와는 별개로, 신자는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한번 솔직히 말해보자. 설교로 소문난 교회들의 급성장 이유가 정말 복음전도에 의한것인가? 아니면 이동교인 때문인가? 실제로 기독교신학연구소에서 조사결과한국의 작년 한해 중대형교회의 새신자 48.4%가 수평이동 교인이라고 한다. 한때 교회성장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인의 수평 이동 경험이 76.5%라고 한다. 이들 중 반 이상이 2번 이상의 교회 이동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미국 이민교회 수치는 어떨까? 3년 전 미주한국일보에 실린 통계를 보면, 교인의 61% 1-3번까지 교회를 바꾸어 보았다고 대답했다. 이수치들은 크고 작은 교단과 교회들의 일반적인 조사결과이다. 그런데 만약 갑자기 급성장 하는 교회 또는 대형교회들의경우만 따로 조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도 앞의 수치 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이동교인이 새가족으로 등록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필자가 지금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아직 감이 오지 않는가오늘날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했다고 할 때, 과연 신자 개인이 복음전도의 열정으로자기 가족과 이웃을 전도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한국 기독교뿐만 아니라, 전세계 기독교인 수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불신자 전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글의 논지는 철새교인이 잘 못 됐다라거나 수평이동에 의한 부흥은 잘 못됐다는 것을 꼬집는데 있지 않다필자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신자 여러분이 열망하는 교회 수적 부흥의 키가 은혜스런 설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 동안 지나왔던 은혜스런 말씀이 있었던 교회에서 정말,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를 주께로 인도해 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여태껏 불신자 전도를 못해 본 당신은, 아직까지 은혜스런 설교자를 만나 본적이 없기때문에, 계속 그런 일이 생길 때까지불신자 전도를 미루고 있는 건가? 아니면 주님이 명령하신 복음의 대위임명령(28:18-20)이 나의 불순종과는 상관없이, 그저 훌륭한 설교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믿는건가?

 

    나는 성경에 나오는 복음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똑같이 일어날수 있을 만큼 복음은 강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경에기록된 사도행전적 복음의 역사가 오늘날 그대로 재현되는 일은 거의없을 것으로 믿는다. 예를 들면, 4:4에 기록한 것 처럼, 베드로의 설교 한편으로 남자만 5천명씩 예수 믿는 현상은 앞으로도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사도시대가 아니기때문이며, 복음이 막 퍼져나가야 할 초기 기독교 시대처럼 폭발적인 복음의 엔진이 필요한 시대도 역시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 또한 한 설교의 현장에서, 삼 천명, 오 천명씩 한꺼번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록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맞물려서 복음의 특별한 동력이 필요했던 행2-4장의 시대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그 시대가, 복음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하는 첫 출발을 위해서는, 성령님의 특별한 간섭과 인도가 그런 식으로 나타나야만 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5장 이후로부터는, 설교 한편으로 그런 폭발적인 복음의 능력이 일어났다는 기록이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 바울 같이 탁월한 신학자요 설교자가 설교를 했을 때에 나타났던 현상은,오히려 그를 죽이려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9, 14).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최근 몇 세기 동안 나타난 영적 대각성 운동들에서는 설교 한편으로 초대교회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영적 대각성 운동의 기록들을 보라. 그 어디에도5천명이 한꺼번에 예수를 믿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기존 신자들이 회개했다라는이야기와, 회개한 신자들이 복음전도에 불이 붙었다는 것, 그리고 성령의특별한 은사들이 넘쳐났다는 기록들로 가득할 뿐이다. 또한 한때 한 설교 현장에서 수 만 명씩 영접을 했다는빌리 그래함 집회조차도, 그 수 만 명씩 영접을 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로컬 교회로 등록해 신앙생활을 계속유지한 경우가 아주 미미하다고 보고된바 있다. 이렇듯 교회사적으로도 부흥전도집회의 성격은, 그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처음 예수를 믿어 교회로 연결 되어졌다는 의미보다, 오히려 기존신자들이 회개하여 전도에 열정을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혹자들은, “그렇다면 신자가 전도의 열정이 생기도록 목사님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설교해야 되지 않느냐?”고 반문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지면을 할애하겠다.

 

    그런데 오늘날을 보라. “스타 설교자한 사람이면, “삼 천명,오 천명씩 몰려오는 사도시대의 기적이 재현되고 있다. 그게 만약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채워지는 숫자라고하면 정말 박수를 쳐주어야 할 일이며, 정말 도시락 싸 들고 가서, 비법이라도 배워야 할 게다. 그런데 만약, 설교가 소문이나서 몰려 오는 사람들이 불신자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어떨까? 그게 기뻐해야 할 사실인가? 게다가 설교 한번 잘해서 몰려 오는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흐뭇해하는 기존교인들 마음에는, 내가 굳이 전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형성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교회는 부흥하는 교회라고 자랑스러워하면서, 마치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로 착각한다.

    필자는 지금 자신의 설교의 무능함을 변명하려고 하는 것이아니다. 나는 모든 설교자들처럼, 설교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고있다. 나는 설교 준비에 게으르거나 서투른 것이 그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이와 동시에, 신자 또한 복음전도에 대해 게으르거나 무지한 것은 그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고 성경이 날카롭게 지적한다(고전9:16). 이제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전혀 불신자 전도를 위해 기도도,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목사의 설교 하나로 교회가 부흥되는 것에 기대를 거는 것이 성경적인 생각이라고 믿는가? 또는 여전히 목사의 설교 하나에 기존교인이 벌떼같이 몰려 오기를 고대하며, 성경이 명령하는 복음전도의 의무를 슬며시 내려놓으려고눈치만 보고 있는가?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가 뭔가허구 헌 날 복음, 복음” “십자가, 십자가" "오직 예수,예수라고 외치면서, 복음의 능력이 없다목사가 강단에서 조금이라도 복음이 아닌 헛소리를 하거나, 변질된 복음을 전하려는 낌새만 보이면, 너도나도 암행어사라도 된 듯이, “마패요!”라고 하면서 목사 기를 팍팍죽인다. 그런데 그렇게도 똑똑한 신자들이 그리 바른 복음을 외치고 사랑하면서도, 복음 전도에는 왜 그리도 숙맥인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왜 그런가? 껍데기 신앙을 가지고도 그것이 알맹이인양, 온갖 잡다한 신앙지식만 머리에 가득하고 뜨거운 가슴은 상실했기 때문이다. 불붙는 가슴 없이,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날 수 있다고 고대하는가?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의 최고봉이 뭔가? 바로 십자가 아닌가?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의 의무는 뭔가? 십자가를 사랑하는 만큼,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이 진짜 사랑 아닌가? 십자가 복음을 나만 고이 간직하는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의 실천인가?

    당신은 지금 함께 사는 배우자와 불붙는 가슴이 단 하루도없이, 거저 보쌈으로 끌려와서 결혼까지 하고서, 애까지 낳고 사는가아니면 한때 한 시간도 안보면 보고 싶어서, 상사병이 날 정도로 편지도 쓰고,선물공세를 펴면서 사랑표현을 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이렇게 한 이불을 덮고 사는가? 그대가 만약 예수님과 단 한 순간이라도 뜨거운 사이였다면, 단 한 순간만이라도 뜨거운 복음의 사랑의 열정으로 살 마음은 없는가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당신은 아직 그리스도와의 첫사랑 조차도 맛보지 못한,영적 어린아이 일뿐인가

7/24/2015 5:18: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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