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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전환 17: 공동체 안의 “보이지 않는 나라”

패러다임전환 17: 공동체 안의 보이지 않는 나라

김태길 목사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0-21).

 

    왠지 이 말씀을 보면 시비를 걸고 싶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부처는 내 마음속에 있느니라라는 말과 무슨 차이가있는가? 게다가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없는 것이다라고 단정짓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미 우리 안에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을 좇는 허망한 종교에 불가한가아니면 스스로 득도하여 개인 모두가 부처가 되어야 하는 불교처럼 수련 종교라도 된다는 건가?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기독교는 본질상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딤전1:17에서,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만봐도, 기독교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라고 이미 밝힌다. “보이지 않는 왕국보이지 않는 왕이라게다가 영원하신 왕이라고까지 하니, 도대체 이 밑도 끝도 없는 말씀의 의도는 무엇인가?

 

    절대 볼 수도 없고, 절대 보이지도 않는 나라의 왕을 섬기라고 하면, 여러분은 섬기겠는가? 몬테비데오 협약(1933)에서 명시되었다는국가 성립의 3요소라고 들어보았는가? 국민, 영토, 주권이 그것이다. 이 협약의 기준에 따르면,하나님의 나라는 영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영토도 없고보이지도 않는 왕을 섬긴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세금도 매주 꼬박꼬박 내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나라의국민이 아닌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것이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러면 도대체 여러분은 보이지도 않는 나라에, 보이지도 않는 왕을 섬기느라 일주일에 한번씩 어김없이 예배당을 찾고, 세금 조사도 하지 않을 세금을 왜 꼬박꼬박 내고 있는가기독교 신앙은 이것을 믿음이라고 표현한다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밑줄 친 부분의 좀 더 정확한 뜻을살펴보자.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things which are visible” (NASB). 이것을 직역하면 이렇다. “보여지는 것이 볼 수 있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않았다.”이 문장을 다시 긍정문으로 바꿔 보겠다. “보여지는 것은 볼 수 없는 것들로 만들어졌다.”이것은 철학적인 말이 아니다. 이 세상 창조의 재료가 그렇다는 말이다여러분은 마술사가 갑자기 손에서 비둘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았는가? 이때 비둘기는보여지는 것이고, 비둘기가 손에서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는 볼 수 없는 것이다그렇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창조세계가 마술사의 속임수 같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이 말씀하는 창조는 무(, Ex-nihilo)에서 () 창조이다. 여기서 Ex-nihilo out of nothing 말한다. 창조 전에는, 과학에서 말하는 물체의 최소단위 전자, 양자, 중성자 같은 입자는 것도 없고, 최근 학계에서 신의 입자라고 부르는 힉소스 입자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다. 마술사도 최소한 물질 있어야 속이지 않는가? 그런데,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물질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을 과학적실제 많은 경우 과학이 훨씬 비과학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과학은 가설이 증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증명할 수도 없는 것을 과학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우주가 빅뱅(Big Bang)때문에 생겼다고 하면서 증명은 없다고 말한다논리로 풀어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이 물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라면, 기독교는 우주를 유영하는 것이다. “저차원 고차원 이해하고 증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보이는 으로 보이지 않는 설명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반대로 보이지 않는 으로 보이는 설명하기에는 쉽다. 육신의 세계로 영적세계를 도무지 설명할 없다. 그러나 영적세계의 결과는 육신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나타난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선은 바다나 육지 같은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선은 보이지 않고 결코 만져지지 않는 절대적 세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철학 같은 소리라고 속단하지 마라. 여러분은 엄마의 사랑을 철학 같은 것이라고 치부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일종의 절대적 세계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도 그와 같다. 이는 힉소스 입자가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적 세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영토에, 보이지 않는 왕에 의해, 눈에 보이는 국민인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만들어져 간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에서 너희 성경원어에서 복수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말씀을 하실 , 제자들 개인 개인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2인칭 복수 소유격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공동체로서의 제자 그룹에게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자 개인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영적 공동체의 개념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나라 개념과도 일치하지 않는가? 어떻게 개인이 나라 있는가?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 공동체인 교회와 신자의 가정, 그룹 안에 임하셨다고 있다.

 

    이제 분명해졌다.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여러분이 속한 영적 공동체이며, 영적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은 이미 보이지 않는 세계의 보이지 않는 왕으로서 통치하시며, 다스리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영적 공동체에 속하지 않으면서 나홀로집에서 예배한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의 국민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 나라의 영토안에서 살지 않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 공동체 안에 임하시는 영적 왕국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소홀히 한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임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나라간 축구 경기마다 자신이 외치는 응원구호가 자신이 속한 나라가 어디임을 말해주듯이, 당신이 관심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나라가 바로 당신이 속한 나라임을 증명해 준다면 당신은 동의 할텐가?

 

7/24/2015 5:17: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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