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21: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
김태길 목사
하나님 나라는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복종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나라, 로이드존스, p. 97]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기간 중 행하신 모든 복음의 사역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지난 2000년간 교회가운데 이미 임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 왕도 보이지 않고, 영토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사람들 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보여야 되는 것 아닐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3).
밑 줄 친 예수님의 말씀의 속 뜻을 삼단논법으로 풀이해보자. (1)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이유는 거듭나지 않기 때문이다. (2)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면 그는 거듭난 사람이다. (3)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면, 그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있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밑 줄 친 예수님 말씀의 속 뜻이 무엇일까? (1)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2)하나님의 나라는 특정한 지리학적 장소에 있지 않다. (3)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
이제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요3:3과 눅17:20-21간에 존재하는 모순점이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난 신자가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볼 수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두가지 관점으로 봐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나라는 “이미(already)” 도래 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순간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시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죽으심”으로 왕이 되시길 원하셨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살아서” 왕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바라보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들이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달랐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나라는 “아직(not yet)” 도래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셔서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는 미완성의 나라다. 그러나 재림 때까지 완성을미루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미 있지만, 아직 완전히 볼 수는 없는 상태”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말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엡1:22, 골1:18)가 되시며,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의 각 부분(고전12:27)이 된다. 머리는 지체가 없이 세워질 수 없고, 몸은 머리 없이 기능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already)”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이미 통치하시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반면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아직(not yet)” 덜 되었다는 측면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는 인간의 부족함이 계속 나타날 것이라는 의미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되기에 충분한가 아니면 부족한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이미(already) 충분히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러나 더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위해 아직(not yet)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질그릇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다. 그러나 질그릇교회는 “아직”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다. 질그릇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사랑(love)이 충분히 넘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적인 미숙함으로 인해 그 사랑이 충분히 흐르지 못한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기쁨(joy)이 충분히 넘친다. 그러나 또한 인생의 고단함이 섞여 있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화평(peace)이 충분하다. 반면 내면의 화(anger)가 서로 스파크(spark)를 낸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인내(patience)가 충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동물적인 성미가 폭발하기도 한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자비(kindness)가 가득하다. 반면 자기밖에 모르는 냉냉함과 무자비함이 공존한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양선(goodness)이 충만하다. 또한 동시에 죄인의 본성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faithfulness)이 면면히 흐른다. 그럼에도 끝까지 순종하지 못하는 나태함과 게으름이 넘친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온유(gentleness)가 가득하다. 그러나 한편 인간의 내면의 깊숙이 박힌 냉혹함이 늘 도사린다. 우리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절제(self-control)가 촘촘히 스며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방종과 무절제함으로 인해 혼란하다.
이 모든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신자는 다음 명제를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고, 그러나 앞으로 더 도래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안주하는 낙관론자가 되지도 말고, 넋 놓고 지켜보는 회의론자가 되지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