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패러다임 전환20: 영적 “공중목욕탕 공동체”

패러다임전환20: 영적공중목욕탕 공동체

김태길목사

 

영적 공동체와 영적이지 않은 공동체의 구별은 갈등의 유무에 있는 것이아니라, 갈등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갈등을다루는 접근방식에 달려 있다. 갈등을 영적인자원으로 더 온전히 이끄는기회로 우리는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게된다.            [지상에서 가장안전한 ] 래리 크랩

 

      교회 안에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천사들이 모인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자는 지상교회가 갖는 한계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상교회의 한계성을 인정하지 않는 순진한사람들은 교회의 갈등을 거짓된 일체감으로 애써 숨기려 한다. 그러나 사도들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들을 보라. 한곳도 갈등과 문제가 없는 교회가 없다. 어떤 교회는 신학적으로 비뚤어진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교회는 당파를 만들어 갈등을 조장했고, 어떤 교회는 천사 숭배를 했고, 어떤 교회는 못된 은사주의로 곤혹을 치르고 있었으며, 어떤 교회는 못된 종말론으로 혼란에 빠졌고, 어떤 교회는 제사문제로, 어떤 교회는 교인간의 송사문제로, 결혼과 이혼문제로, 어떤 교회는 문화와 관습문제로, 어떤 교회는 미움과 다툼의 문제 수많은 교회내의 갈등과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사도들이 까발리고 있다. 사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향하여 손가락질 하는 내용들의 모든 주제들을 이미 신약성경이 스스로 원래교회가 그런 곳이라고 인정하고 있다라는 사실이 오늘날 신자로 사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는지 모르겠다.

 

    교회는 갈등이 존재함에도 쉬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존재하는 갈등의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신사적이면서도 영적으로 살펴보는 곳이다. 래리 크랩은 영적이지 않은 공동체의 특징 하나는, “갈등 속에 있을 위로순간적인 안도감만을 찾는 이라고 말한다. 신앙공동체는 서로 사랑 안에서 위로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돌봄과 영적 성장은 위로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로 부딪혀 봐야 한다. 그러면서 인간 내면의 바닥 들여다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수없이 그것을 서로 해결하려고 나누고 기도해 주고 위로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공동체 일원 각자가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실은, “나에게 있는 자원으로는 도무지 영적 성장을 이룰 없구나라는 사실이다.

 

    영적 공동체의 출발선은 나의 가진 것으로는 소망이 없다.”라는 것을 서로 인식하는 지점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초대교회들이 얻은 답은 안에는 답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사도들이 세우고 목회했던 교회들도 그랬다면, 오늘날 평범한 목회자가 목회하는 현장에는 소망할 수가 있겠는가? 안에는 어떤 소망과 어떤 해결책도 없음을 발견하는 순간 그때부터 영적 공동체가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영적 공동체는 자기 인식을 정확히 하면서부터 영적 자람이 시작된다.

 

    영적이지 않은 공동체는 갈등을 애써 숨긴다. 그리고 위장된 평안 가운데 자신의 치부를 꼭꼭 숨겨둔다. 그런 공동체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속병으로 곪고 터져서 가면 갈수록 손쓰기 힘든 지경이 이르게 된다. 영적 공동체는 아름다운 음악과 춤이 있는 가면무도회가 아니다. 영적 공동체는 오히려 자신의 위장된 품위 스스로 깨뜨리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그때부터 상대방의 상처와 아픔이 보이게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위해 기도해야 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모임은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영혼의 안식처가 되기 위해 진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스스로 질문해 보라. 그곳이 가면무도회장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공중목욕탕 되길 원하는가? 모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가면을 천사들의 모임이기를 원한다면 계속 가면을 쓰고 있어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곳은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을진 몰라도 인간미라고는 찾아 없는 형식적이고 이기적인 모임밖에는 것이다. 반대로 그곳이 공중목욕탕 된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낯설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오해와 갈등도 빚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그리 오래지 않아 서로의 낯에 대해 수용하고 이해하게 것이다. 처음에 서로 다르다고만 생각하여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고집이 점차 꺾이게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안고 있을 내면의 아픔이 어쩌면 자신의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서로 손을 내밀어 이제 이해 있을 같다 악수를 청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손을 놓지 말자고 서로 위로할 것이다.

 

    공중목욕탕은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곳이며 모든 것이 원초적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마치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처음 살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떤 반목도 질시도 없고 서로 숨길 것도 없는 절대사랑과 절대평안이 유지되던 . 우리의 진이 마치 공중목욕탕과 같이 서로의 모습을 훤히 쳐다보아도 서로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서로 당당히 마주보면서 웃고 위로할 있는 곳이 된다면,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것이다.

 

    모임에 가면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맘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 두라! 모임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골라 있는 영화관이 아니다. 영화관은 영화를 골라서 보다가 중간에 나와버린다 한들 아무도 신경 쓴다. 그러나 모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임은 영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영적 공동체는 티켓을 사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영적 공동체의 본질은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신자 사람이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지체이기 때문에 소속되는 곳이다. 그런데 스스로 자꾸만 영적 공동체를 벗어나려고 한다면 어찌 될까? 그것은 자신의 영적 건강에 치명적일뿐더러, 공동체를 위해서도 유익하지 못하다.

 

    모임이 처음부터 삐그덕거림없이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질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려라! 여러분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와 15, 20, 또는 30 이상을 살면서 얼마의 기간이 지나서야 부부 사이에 삐그덕거림 없어졌는지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라. 혹시 여전히 삐그덕거림 현재 진행형이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모임은 어떻겠는가? 하루아침에 자기 마음에 정도로 선하고 완전한 모임이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진이 공중목욕탕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다같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느 명이라도 옷을 여전히 입고 있다든지, 속옷만 걸치고 있다든지 하면 다같이 동시에 안에 들어 없다. 진이 건강한 영적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보이는데 스스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한동안 어색하기도 하고, 서로 충돌하게 되는 각자의 감정들이 어느 시점부터는 서서히 뜨거운 목욕물과 함께 녹아지기 시작한다. 그러고 후에는 이제 이상 멤버들의 어떤 외적 조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드디어 상대방의 내면을 들여다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것이다. 그러고 나면 어느 순간 진은 하나님의 나라의 이상에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3/5/2016 1:12:00 PM

There is no comment yet...
의견 등록을 하시려면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