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21: 창조6
김태길 목사
4장2항: …이성적이고 불멸의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으며…
영혼불멸인가, 영혼멸절인가
“사람이 불멸의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말이 갖는 오해가 있다. 사람이 마치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이 원래부터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영혼자체는 불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하나님께서 영혼을 멸하시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불멸’(immortal)이라는 단어 때문에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의미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이 단어가 갖는 일반적인 의미는 ‘절대 죽을 수 없는, 절대 파괴될 수 없는’이다. 그러나 이 단어를 인간 영혼에 대한 표현으로 신앙고백서 작성자들이 사용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의 영혼이 불멸한다는 의미가 마치 하나님께서도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영혼을 어찌하지 못하는 “불사신”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멸하시는 전능하신 능력까지 무력화시킬 정도로 완전무결하다거나 초월적인 하나님처럼 영존하는 능력을 스스로 갖출 순 없다. 다만 우리의 영혼이 불멸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보존하심에 있다. R. C. Sproul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사람의 영혼이 창조된 이후에는 영원히 계속해서 살지라도 그것들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은 다만 영혼 안에 있는 생명을 하나님이 유지하시기 때문이지, 영혼 자체가 죽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유지하기를 멈추신다면 그 즉시 우리의 영혼은 멸망할 것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해설, R.C. 스프로울, 부흥과개혁사,p. 190).
존재하는 것 중 스스로 영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한 분 뿐이다 (시102:26, 히1:11). 심지어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하게 되는 신자 또한 하나님께서 영생하도록 약속하셨기 때문에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지, 인간 영혼 자체에 영생하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그 영생불사의 능력을 받아, 더 이상파괴할 수 없는 신적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영생은 ‘영생의 보증’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불멸”의 참된 뜻이다.
일부에서는 인간 영혼이 불멸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영혼이 멸절된다고 믿는다. 그들은 마태복음 10장28절,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를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절로 애용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불신자의 영혼을 지옥에서 소멸(annihilation)하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몸과 영혼이 전인적으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영혼멸절”을 주장하는사람들은 또한 “둘째 사망”이라는 요한계시록 21장8절의 말씀을 애용한다. 그러나 이 표현은 “첫째 사망”이 육신의 죽음을 가리키고, 그 다음에는 영적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둘째 사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영적인 죽음은 곧 최후의 심판을 말하는 것이지, 그것이 영혼의 소멸을 가리키는것은 아니다.
이들이 영혼의 멸절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신자의 영혼은 불멸이 허락되지만, 불신자의 영혼만 멸절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25장46절은 분명히 영벌(eternal punishment)과 영생(eternal life)이 있다고 가르친다. 만약 영원한 벌이 없다면, 지옥의 불도 그 임무를 다하면 필요 없을 것이므로, 꺼져야 되지 않는가? 그러나 누가복음 3장17절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이렇게 볼 때, 불신자의 영혼이 소멸된다는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지옥이 계속 필요하며, 불은 왜 꺼지지 않도록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혼 멸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건적 불멸성”을 가지고 설명한다. 마이클 호튼은 그의 책에서 조건적 불멸을 주장하는 이들은 “사탄과 거짓 선지자는 지옥에서 영원한 의식을 경험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도 그런 경험을 하지 않는다”(개혁주의 조직신학, 마이클 호튼,부흥과개혁사, p. 978)고 말한다. 이런 그들의 주장의 근거는 요한계시록 14장10절에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두 부류—마귀, 거짓 선지자들—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마태복음 3장12절,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에서 ‘태운다’라는 의미는 소멸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불신자의 영혼의 대부분은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서 멸절되어버리지만, 오직 마귀와 거짓 선지자들은 멸절되지 않고 영원한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말하자면 “영원한 멸망의 형벌”(살후1:9)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평범한 불신자의 영혼”은 “영원한 소멸의 형벌”로 받게 되고, 반면 상대적으로 “악독한 부류—마귀와 거짓선지자들”은 “영원한 불멸의 형벌”을 받게 된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성경은 일관되게 영혼이 불멸하면서 겪게 될 신자와 불신자의 미래를 가르친다. 이에 대해 헤르만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은 인간의 불멸을 선명하게 그리고 반박할 수 없게 가르친다. 조건론은 죄의 형벌인 멸망을 인간 실체의 소멸로 여김으로써 윤리적 존재를 물리적 존재와 혼동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첫 번째 죽음에서 인간을 소멸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죽음에서도 소멸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두 번째 죽음은 형벌(마25:46), 울며 이를 가는 것(마8:12), 환난과 곤고(롬2:9), 꺼지지 않는 불(마18:8), 결코 죽지 않는 구더기(막9:44) 등으로 묘사되는데, 이 모든 표현들은 잃어버린 자들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상태는 멸망, 썩어짐, 파멸, 죽음이라고 불릴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도덕적, 영적 의미에서 전적으로 파멸되었고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신자들에게 주는 생명의 풍성함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탕자는 ‘죽은 자와 잃어버린 자’(눅15:24,32)라고 불리고, 에베소 교인들은 그들의 과거의 상태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엡2:1, 4:18)이라고 불리며, 사데 교인들은 ‘죽은 자들’(계3:1)이라고 불리지만, 이런 맥락에서 누구도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혁교의학4, 헤르만 바빙크, 부흥과개혁사,p. 843).
성경이 이토록 영혼의 불멸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이유는, 하나님이 개인에게 내리실 최종적인 심판이 얼마나 크고 무시무시하신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한치의 착오 없이 주권적으로 끝까지 실행 되어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