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5: 왜 소그룹에 속해야 하나?
김태길 목사
왜 소그룹에 속해야 하나?
이 질문은 시스템에 관한 것이 아니다.다만 신자의 신앙본질에 관한 질문이다. 한 군인이 한 분대에 속해 있는 것은 시스템에관한 것이다. 그것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최소 단위이며, 이것이 있어야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군단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비슷한 형태로 군대에 적용되고있는 이유는, 오랜 동안 축적된 군사전략 노하우가 그런 형태가 가장 강력한 군대 조직을 유지하고,전쟁을 잘 수행한다고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신자가 한 분대라고 할 수 있는 소그룹,셀에 속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생명에관한 것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신자가 소그룹에 속하는 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라고 가르쳐 준다.잠18:1은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모든 지혜로운 판단을 무시한다.”라고 번역했다. 셀에 참여하지 않는다고해서, 꼭 그것이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진다거나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그러나 성경은 신자가 자라는 것은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한다”(엡4:16)라고 비유한다. 여기서 몸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반드시 서로 연결되고, 서로 도우면서결합되며, 각자의 분량의 역할을 다할 때 세워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교회는 애당초 신자 혼자서 존립하도록 디자인 되지 않았다. 성경은 단 한 곳도 한 개인이 교회라고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공동체로 존재하고 계시다는 자체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하나님이 왜 삼위로 계셔야만 하는가?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가? 민주주의의 표결방식의 관점으로 보면, 홀수의 멤버들이 모인 공동체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장 적합한 존재방식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와 의논이 필요하다거나 표결방식의 의사 결정이 필요해서 삼위의위격을 가지신 것일까? 답은 NO이다. 하나님은 어떤 부족함이나 도움이 필요해서 공동체로 존재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어렴풋이하나님께서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깊고 깊으신 심오한 의미 중 하나가 “영원하고도 온전한 사랑”과 관련 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17:24)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셨다는 내용을예수님이 스스로 기도로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의 의미는 결국 예수님의 기도의 말미에 잘 나타난다.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6)
하나님이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것은, 영원하시고 온전하신 사랑이 어떻게 표현 되어지고 행해지는지를 보여주는 본질 그 자체다. “하나님은사랑이시라”(요1서 4:16). 라고 했을 때, 하나님 당신 자체가 사랑의 본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금이 빛나야 금이듯, 사랑은 나타나야 사랑이다. 그럼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 공동체 안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이 지구상에 당신 혼자만 산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누구에게 당신의 사랑을나타내겠는가? 불가능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전에 이미,신적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아버지 자신이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심으로 영원하시고 온전한 사랑을 타 내셨다.
하나님은 사랑을 공동체라는 텃밭으로 나타내셨다.그리고 그 사랑의 키워드인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시므로 인간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롬5:8). 그리고, 이 십자가에서 죽이신 그리스도가모퉁이 돌(the chief cornerstone)이 되셔서 교회를 세우셨다 (엡2:20). 이제 이것이 기초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되어가는 것이다 (엡2:21). 이것은 결국 신자 각자가 하나님의 거하실처소, 곧 성령께서 내주하실 성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엡2:22).
이런 공동체의 심오한 원리가 주일예배 출석 잘한다고 될수 있을까? 셀 안에서만이 서로 영적으로 친밀히 연결 되어질 수 있으며, 계속적인 기도와 성령 안에서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자라가며, 성령이 거하실 진정한 성전으로세워져 가게 되는 것이다. 신자는 절대로 혼자 자랄 수 없다. 무인도에서혼자 사는 것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으며,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당신은 교회만 잘 출석하는 “영적 무인도”에서 살아가고있는가? 아니면 공동체 안에서 계속 자라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