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3: 하나님의 작정 6
김태길 목사
3장6항: 하나님께서는 그 택자들을 영광에로 정하신 것처럼,자신의 뜻의 영원하고 가장 자유로운 목적에 의하여 거기에 이르는 모든 수단들도 예정하셨다. 그러므로 선택된 자들은 아담 안에서 타락하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속받고, 적당한 때에 성령의 역사에 의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로 유효적으로 부르심을 받고, 칭의 받고양자가 되고 성화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믿음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기까지 보호된다. 오직 택자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받고 유효하게 소명을 받고 의롭게 되고 양자가 되고 성화되고 구원받지 못한다.
구원에는 로드맵(road map)이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당장 건져내야 할 때에야, 무슨 청사진 같은 게 필요할까? 그러나 하나님은 죄악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시려고 할 때,단계와 순서를 만드셨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그 동안 “구원의 서정 또는 계획”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많은신자들이 “구원의 서정”을 시간적인 순서로 오해한다. 예를 들어,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를 시간적인 순서로해석해 버리면 어떤 오류가 생길까?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라고 할 때, 하나님이 자기 택한 백성을 부르시고 난 후 도대체 얼마의 시간을 기다려야 의롭게하실까? 5분을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5일을 기다려야 할까? 또한 “중생”과 “회심”은 부르심과 의롭게 하심(칭의)사이 어디쯤에 넣어야 하나? 그러므로 하나님이 한사람에게 구원을 시행하실 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유효하게 부르시면서, 동시에 중생, 회심, 연합, 칭의, 양자되게 하심이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의 서정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서, 배에 태우고, 인공호흡을 하고, 그 이후에 시간을 두고 회복시켜서, 배의 선장이 건져낸 사람을 자신의 양자로 입적시키는 것과 같이 시간적 순서와 간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구원의 서정”은구원의 논리적 순서이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구원하실 때 “논리적 순서”대로 로드맵을 설계하셨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첫째, 구원의 서정은 인간이 “믿음의 고백”이라는 것으로 스스로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불신앙을 원천 봉쇄한다. 기독교 신앙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구원”은 하나님이 베푸시고, “믿음”은 사람이 가지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과 믿음의 주체는 오로지 하나님께만있다. “효력있는 부르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자신 스스로에게 구원에로의 초대장을 발부할 수 없다. 구원에로의 초대장을 발부할 수있는 능력을 소유하신 분만이 구원의 서정에 관여하신다.
둘째, 구원의 서정은하나님의 구원이 단순히 “영생을 주시는 은혜”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보여준다. 만약 구원이 한 죄인의 목숨을 건져주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하나님나라의 기업을 물려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상속자이신 예수님과 공동상속자(롬8:17)의 자리를 마련하시기 위해서 양자의 자리(롬8:15)까지만들어 주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셋째, 구원의 서정은구원이 기계적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엡2:8)임을보여준다. 하나님의 구원은 횟집 주인이 뜰채로 수족관의 물고기들을 건져 올리듯이 마구잡이로 하신 것이 아니다.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하나님 자신의 능력이 역사(엡3:7)하시는 대로 하셨음을 보여주는 신적 의지의 표현이다.
넷째, 구원의 서정은구원이 “다 이루어 짐”(요19:30, Already)과 동시에 “여전히 이루어 가야 함”(빌2:12;3:12, Not yet)을 보여준다. 성화는 신자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영화는 미래에 이루어 질 구원의 종착역이다. 이것은 신자가 이 땅에서 법적으로 “의인”이라 선포되어졌지만, 여전히 “죄인”으로서 죄의 잔재(롬7:23)가 사로잡고 있는 존재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만이 자유를 얻는 유일한길(롬8:2)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섯째, 구원의서정은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세우실 때, 단순히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라는 것을 내 세우셨다면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몇가지 문제가 대두된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시지 않았는데, 성령님이본격적으로 지상에 현현하셔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성령님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하신 지상 사역을 이어받아 죄인을 거듭나게(중생, 요3:5)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의 서정 두 번째 단계인 중생의 필요성이 없어진다면 성령의사역도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또한 칭의(의롭게 하심)의 근거가 묘하게 되 버린다. 왜냐하면 성경은분명 신자의 의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빌3:9)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없으면 죄인은 여전히 구약시대를 살아가게 되며, 자신의 죄 씻음을 위해 여전히 짐승의 피가 필요하게 된다.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양자의 영도 오시지 않았을 것이므로, 하나님을아빠 아버지라(롬8:15) 부르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면 신자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므로 스스로 예배할 수도 기도할 수도 없으므로, 여전히 인간 제사장을 내 세워야 할 것이다.
구원의 서정은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해서는 어떤 논리도성립되지 않는다. 구원의 계획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구원 논리”의 중심이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로드맵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며,모든 택자들은 구원의 로드맵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