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 4: 대그룹 공동체와 소그룹 공동체
김태길 목사
N × (N-1)
이것이 무엇을 계산하는 공식인 줄 아는가? 이것은 수학책에 나오는 공식이 아니다. 이 공식은 그룹 내에 인원수에 따른 “대화라인”이 몇 개인지 계산하는 공식이다. 예를 들어, 부부간의 대화라인은 2개이다. 남편à아내, 아내à남편. 이와 같은 대화라인이 2개가 형성된다. 이것을 공식에 대입시켜 보면2 × (2-1)= 2 이다. 만약13명이 한 그룹에 있을 경우 대화라인은 몇 개가 될까?13 × (13-1)= 156개의 대화라인이 생긴다. 예수님과 12제자 그룹은 대화라인이156개였다.오늘날 학자들은 대체로, 소그룹의 대화라인이 156개가 넘으면 소통이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소그룹 형성은 굉장히 과학적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예수님은 이미 인간 소통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아셨다.
예수님은 70인의 제자를 따로 세우기도 하셨다 (눅10: 1).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동고동락하지는 않고, “전도특공대”같은 특수 임무를 띠고 2인 1조로 각 동네로 파송했다. 예수님은 이들 70명을, 측근에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는 제자로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복음전하는 자로 세웠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소그룹 사역은 본인을 포함하여 13명을 넘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실 예수님은 대화라인이 많아지는 것이 신경 쓰여서 제자 12명만을 데리고 다니신 것은 아닐게다. 그러나 적어도 예수님은 오늘날 교회에게 합리적인 소그룹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소그룹 사역에 3년을 몰두하시다 가셨을까? 정답은 소그룹이 제자사역의 텃밭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대그룹 사역을 등한시 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대그룹을 몰고 다니셨다. 벳세다 들판에서는 장정 5천명이 모였다. 뿐만 아니라 장정 4천명은 사흘을 굶어 가면서까지 광야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마15:32-38).오늘날 공화당원들도 당해내지 못할 열성을,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수많은 무리들이 따를 때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사역과 치유 사역이 끝나면 곧장 그들을 피해 자리를 떠셨다 (마8:18). 뿐만 아니라 사흘 동안 먹지도 못하고 따르는 사천명의 무리를 “칠병이어”로 먹이신 후에는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마15:39)라고 성경은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의 사역 목적이 대그룹을 모아 당장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제자그룹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역할 수 있는 조그만 공동체를 이루시는데, 그의 시간과 열정을 쏟으셨다.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보다 더 훌륭하고 완벽한 목회자가 있겠는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는 오고 오는 세대에 가장 위대한 목회자의 모델이 될 것이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가장 싸이즈가 큰 교회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면, 왜 하지 못했겠는가? 기독교 역사상 단일교회로는 제일 큰 교회라고 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우고 목회했던 조용기 목사보다 예수님이 모자란게 뭐가 있는가? 예수님은 성경지식, 인품, 설교, 치유능력,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조목사보다 완벽하게 우위시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의 그런 탁월한 능력을 사람을 모아 교회를 키우는 일에 쓴 것이 아니라, 제자 12명 키우는 것에 그 능력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그의 리더십의 대부분을 소그룹을 이끄는데 사용하셨다. 그가 대그룹을 이끌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밑그림을 소그룹으로 그리기 원하셨던 것이다.
소그룹은 교회의 기본 단위이다. 또한 소그룹이 하나의 교회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가 한 두 개씩, 서 너 개씩 모여서, 대그룹의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셀은 한 교회에 속한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셀은 그냥 그 자체로 교회다. 예수님은 12명의 셀원을 이끄신 셀공동체의 리더셨다.
질그릇교회에는 여러 개의 셀이 있다. 셀은 교회부흥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셀은 목사가 교회를 목회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짜놓은, 운영시스템도 아니다. 셀은 예수님이 다자인 하셨으며, 그가 셀을 직접 리더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셀과 동고동락하셨다.셀은 공적생애의 터전이었고, 그의 가치의 텃밭이었다. 우리는 이제 셀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어떻게 셀을 이해하고 참여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셀은 예수님의 뜻을 이어받는 제자도의 텃밭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