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이야기 2
지혁철 목사
바벨론 포로 70년이 지나자 영원할 것 같았던 바벨론이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한 것입니다.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냅니다. 1~3차에 걸쳐 포로를 잡아온것처럼 1차에서 3차에 걸쳐 포로들을 귀환시키는 작업을 합니다.1차 귀환은 유대 총독이었던 세스바살을 중심으로 돌아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남유다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러다가 성전 건축이 방해를 받아 16년 동안 중단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어 성전 건축을 독려합니다.스룹바벨은 다리오 왕의 호의를 얻어 성전 공사를 재개하고 다리오 왕 6년째에 성전공사를드디어 마칩니다. 느헤미야 성경 뒤에 있는 에스더는 1차 귀환과2차 귀환 사이에 페르시아 왕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2차 포로 귀환은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1차 포로 귀환이 있은 후 79년이 지난 BC 458년에 제사장 에스라의 인도로 2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지키면서 율법과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스7:10)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이때의 왕은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 에스라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에스라 역시 아닥사스다 왕의 신뢰와 총애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에스라 역시 다니엘처럼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사람이며, 당대 페르시아 왕의 신뢰를 한 몸에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라를 돌려보낸 아닥사스다 왕 20년째에 드디어 우리가 살펴볼 느헤미야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고,이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이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역시 이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 위로를 받음” 또는“여호와께서 위로하셨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은혜가 되고 참 좋습니다. 그런데 앞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남 유다의 멸망과포로 생활 그리고 귀환이라는 정말 복잡하고 슬픈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느헤미야의 이름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느헤미야 1장 1절을 통해 느헤미야가 본격적으로등장하고 활동한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었는데”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1세의 통치기간인 BC 461-424년 중에 활동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처음 도착한 때는 아닥사스다 1세 제 20년인 BC 445년이었습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한때는 BC 586년입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는 남 유다가 멸망하고도무려 141년이 지나고 나서 예루살렘에 첫 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느헤미야는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나서 페르시아의 언어를배우고, 페르시아의 문화를 배우며 자란 사람입니다. 느헤미야1장 1절을 보면 그가 수산 궁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느헤미야 1장 11절을 보면 그가 수산 궁에서 그냥 놀고먹는 사람이라거나, 수산 궁에 관광을 간 사람이 아니라 수산 궁에서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으로 왕을 모시던사람이었다는 사실, 즉 그가 정치계에 입문한 사람이며, 정치계의 요직에앉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백악관에서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박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시각 장애를 안고서 그가 얼마나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수고했을지,얼마나 피땀을 흘렸을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장애를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세계 최고의 강대국의 정치계에 입문하고, 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의 위치에 오른 강영우 박사는 신불신을 떠나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 강영우 박사도 참 대단하지만 느헤미야는 더욱 대단합니다.
느헤미야가 처한 상황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 이민을 간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이라는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포로로 이끌려간 조상들에게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사라지고 없고 그 자리에 페르시아라는 제국이들어섰습니다. 격동의 세월을 보내던 중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페르시아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는소수민족에 불과했으며, 한때 포로였고, 노예였던 사람의 후손이었습니다.비록 국가가 바뀌긴 했지만 그의 신분이 갑자기 바뀐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고대의왕실은 암살과 독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음료를 담당하던 사람은 왕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했습니다. 지금으로 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버금가는 아니 그보다 더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왕이 마시는 술과 음료를 담당하던 사람에 오른 사람입니다. 왕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쏟았을수고와 땀은 가히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36년의일제강점기를 보냈습니다. 민족의 아픔이요 수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제의 잔재가 우리에겐 아픔과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36년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기간이며, 나라가 망하고 없어졌으며, 부모님을 포함해서 나 역시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그때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나의마음과 관심을 어디에 두시겠습니까? 그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실 수 있겠습니까?우리는 그 대답을 포로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살아가야 하며,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쏟으며,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두어야 하는지 다니엘과 스룹바벨,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를 통해서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스라를 제외한 다니엘, 스룹바벨,느헤미야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들은 직장생활, 특별히 정치계에 입문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더 큰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관심은 자신의 직위와 손에 쥔 권력을 지키거나유지하는데 두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더 높은 자리를 탐하거나,자신의 부동산을 증식하거나, 재산을 축척하는데 두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살까 하는 것에도 그의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곳을 다니면서 인생을 즐길수 있을까 하는 것에도 그의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없어져 버린 나라와민족에게 관심을 두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민족을 섬기고 그들을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한마디로 느헤미야는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의 마음과 관심을 온전히 쏟으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페르시아에서 태어났고,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배웠고, 그 나라의 정계에 입문하여 요직에 올랐습니다.대단히 성공한 사람이었고 성공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를 보면마치 그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나, 그가 가진 모든 재산과 소유와 권력과 명예를 예루살렘 백성들을 섬기기위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주어진 것처럼 여긴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정치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의 관심과 열정과 마음은 예루살렘과 예루살렘에서 살아가는 자기 민족에게 오롯이 두었던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아보고 섬기는 것이 주 업무이며, 페르시아왕의 술 관원이라는 직업은 주 업무를 더 잘 하기 위해 가지게 된 다른 직업으로 보는 느헤미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이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페르시아 땅에서 태어나 거기서 살아왔지만 자신은 페르시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백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