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전환(Paradigm Shift) 2: 조직으로서의셀 VS 공동체로서의 셀
김태길 목사
세상에서 자녀를가장 많이 낳은 사람에 대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70이 다 되어가는 그 남자의 다산의 비결은 다름이 아닌부인을 많이 두는 것이었다. 인도에 산다는 그 남자는 39명의 부인을두고, 94명의 자녀와 14명의 며느리를 통하여33명의 손주들을 낳아, 본인을 포함한 가족의 수가 181명이라는 믿지 못할 기사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가족이 한 집에 산다는 사실이었다. 목사인 나에게 당장 드는 생각은, “저 남자 예수 믿게 해서 교회 하나 세우면 좋겠다”였다. 그러고는 당장 궁금해 진 것은,저 남자는 도대체 자기가 낳은 자식들 이름이나 다 기억할 수있을까? 하는 것이었다.기사 내용을 보니, 본인은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한다고 했다.심지어 한 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위해,엄격한 조직과 규율이 존재한다고 했다.첫 번째 부인이 나머지 부인들의 생활을 관장하고, 집안일들을 나누어 지시한다.그리고 방 배치도 소그룹 별로 나누어서 지내게 했다. 그야 말로 “가족공동체”라는말이 딱 이 남자의 가정에게 어울리는 것 같다.
한 피를 나눈가족도 덩치가 커지니, 조직이 필요하다. 소그룹이 그것이다.그러면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도 늘 신앙공동체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 공동체가 유기적인 공동체가 맞다면, 자연히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게 될 것이다.그러면 성경은 교회가 어떤 모양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 할까? 답부터 이야기하자면,성경은 ‘교회조직의 모양’을 말해주지 않고있다. 대신 ‘원리’를 말하고 있다.
“셀”이라는말이 교회적 용어로 등장하게 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다. NCD(자연적교회성장)라는 교회 컨설팅 단체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성경적 원리를 제시하면서부터, 세계 수많은 교회들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셀을 “조직적”으로 운용해 왔다. 그러나 셀은‘조직’이라기 보다는, ‘원리’로 이해해야 옳다. 성경이 오늘날교회에게 맞는 조직구도를 알려주고자 했다면, 21세기 최적의 교회조직을 위한 방법론을 알려주고도 남았을 것이다.그러나 성경은 교회 조직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 침묵한다. 예수님의 사역을봐도 그러하다. 예수님은 3년이라는 충분한 기간이 주어졌음에도,교회 조직을 위한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벳세다에서 장정만5천명—실제 숫자는보나마나 1만명이 넘었을 것이다—을 모으셨다. 다들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조직으로 교회를 세우기 원하셨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벳세다교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교회를 시작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3년간 이와 비슷한 수많은 기회를 만났음에도 어떠한 조직도 만들지 않으셨다.그분께서 하신 거라고는 12명을 데리고 다니신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12명이 조직이라면 유일한 조직인 셈이다. 말하자면 기독교 2천년 역사상 수많은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설립되었는데, 정작 예수님 자신은 교회를 설립해본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라는 말씀을 남겨둔 채, 무심하게도 구름 타고하늘로 올라가 버리셨다.예수님은 교회를 조직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이 말씀을 주시고 승천하신 지 10일이 지난 후에야,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독교 최초의 교회가 시작된다.
예수님은 교회운영의 어떤 매뉴얼도 주지 않으셨다.다만 12제자들에게 수 많은 교회의원리들을 던져주고 가셨다. 그 원리들 중 하나가 바로 셀이다. 셀의 핵심 원리는 공동체성이다. 예수님은 12제자들과셀을 이루고 사역하셨다. 그리고 3년간 공동체 생활을 하셨다.예수님의 공동체 생활의 키워드를 말하라고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제자도’라고답한다. 예수님은 오 갈 때가 없으셔서, 공동체 생활을 하신 것이 아니다.12제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직업이나 가족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동고동락 하면서 반드시 전수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단 한가지였다. 제자도이다. 그러면 제자도가 도대체 뭔가?제자도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예수님의 표현을 빌리고 싶다.
“누구든지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못하리라”눅14:27.
“누구든지 나를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것이니라”마16: 24
제자도는 세가지를 요구한다.1. 자기부인, 2. 자기 십자가 지기, 3. 주님을 따르기. 이 세가지를 설명하기란 지면이 부족하다. 그러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기부인은 자기의 옛 자아를 부인하는 것을 말하며,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사는 것을 말하며,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전인의 삶이 주님을 위해 살아간다는 말이다.
셀은 이런제자도가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 밭이다. 셀은 교회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씨앗이 뿌려져 자라야하는 토양이다. 셀은 제자도가 실행될 수 있는 텃밭이며,복음이 싹틀수 있는 최소 단위이다. 그러므로 셀은 궁극적으로 교회다.셀이 교회의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셀은 교회의 시스템도,프로그램도 아니다. 물론 셀이 무늬만 존재하여 교회의운영을 위한 조직체로전락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잊지 말자.셀은 유기체이다. 목사가 셀을 조직하여, 리더를 임명하는것에 일희일비한다면 그것은 아직 제자도의 ‘제’자도 모르고있는 셈이다. 만약 예수님의 12제자 셀을 ‘조직 관리’라는 경영학적 시각으로 보면, F 학점이다.왜냐하면, 셀리더가 고작 3년 같이 있다가 홀로 떠나버렸고,그 중 1명은 자살 했으며, 11명은 전 세계로뿔뿔이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당장 아무 소득이 없어 보인다.그러나,
예수님께서원래 디자인 하신 셀의 모형(prototype)은
“뭉쳐서끝까지 덩치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덩치로 언제든지 분열하는 것”이었다.
초대교회가 뭉쳐 있을때, 성령께서는 스데반을 죽이심으로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으신”(행8: 1)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들이 흩어진 다음에야비로소 세계 방방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셀(cell)은 이름부터 그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짓고 있지 않은가? 셀을 ‘조직관리’로 인식하게 되면 이미죽은 것이며, 반대로 셀이 ‘공동체’가 되는 순간 살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핵심 가치는 제자도이다. 결론적으로, 제자도가살아나게 되면, 셀은 무르익고 곧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될 것이다. 질그릇교회의 셀들이 제자도로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