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0: 하나님의 작정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0: 하나님의 작정 3

김태길 목사


33: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나타내시기 위하여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에로 예정되고(predestinated)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로 예정된다(foreordained).

 

    신앙생활을 좀 한 사람이라면 예정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예정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이 뭔지 솔직히 말해보라. 많은 사람들은 이 단어에서 불공평이라는 말을 떠 올린다. 사실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에로 예정되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로 예정된다라는 말이 썩 공평하게 들리진 않는다.

 

    목사가 받는 질문 중에 가장 많은 것 중 하나가 바로이 예정과 관련한 질문이다. “목사님, 만약 하나님이 한 사람을 영생하도록 또는 유기되도록 예정하셨다면, 왜 전도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은예수님의 대위임명령을 설교하거나 가르칠때마다 듣게 되는 단골메뉴다.

 

    게다가 집안에서 유일하게 예수 믿는 교인일 경우,사랑하는 식구들에 대한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가도, “예정교리를 듣게 되면 행여 내 부모형제들은 택한 백성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불안감마저 든다. 그러다 정말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게 되면 예정교리에 익숙한 장로교교인들은 때로,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예정과 유기의 교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라고 하니, 혹 끝까지 불신자로 지내다가 죽는 가족을 둔 신자의 맘이 편할 리 없다. R. C. Sproul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하나님이 죄인을 천국으로 구원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 만큼(감정적으로는 납득하기어려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악인들을 지옥에서 심판하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해도 무방하다.”라고 말한다. 분명 여기서 말하는 영광은 평소 우리가 들어왔던 영광과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낯설게 들린다.축구선수가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하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께 영광아닌가? 어떤 일로 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라고 하면 마이크에 대고 으레 하는 말이하나님께 영광아니던가? 그런데하나님은 악인들을 지옥에서 심판하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신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일이 생겼을 때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하던 우리의 고정관념이 단번에 깨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럼 도대체 예정과 유기의 교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성경적 논리를 펼치기 전에 필자는 먼저 이 교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수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평에 대한 정의를 깨트리지 않는 한, 예정과 유기의 교리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나는 어릴 적, 형과 사과 하나를 반쪽으로 나누어서 먹을 때마다 단 한번도 공평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엄마가 칼로 정확하게 반을 가른다고는 하셨지만, 나의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 형의 것이 더 커 보였다. 그런데 형은 형대로 자기 것이 더 작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논리적으로, 서로의 사과를 맞바꾸면 서로 만족하게 될 꺼 아닌가? 그런데 형과 나의 공통된 불만은 왜 엄마는 항상 사과를 반으로 쪼개어서 주시느냐?”였다. 그냥 온 거 짜리하나씩 주면 불만이 없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어느 날 어머니는 우리의 소원대로, 사과 하나씩을 각각 주셨다. 그런데 불만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사과의 크기가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또 불공평하다고 주장을 했더니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형은 너보다 나이도 많고 키도 크니까 더 큰것 먹어야 돼라고 말씀하셨다. 난 맘속으로 여전히 불공평을 외치고 있었지만, 동생으로 태어난 서러움을그냥 삼켜야만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께서 어떤 크기의 사과를 주시든지 불평 없이 받게 되었다. “어머니의 주권적인 결정이 나를 수용하게 만든 것이다. “주권적 결정을 수용하고 나면 생기는현상은, “불평이 아니라 감사가 나온다. 사과를 아예 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반쪽짜리 사과라도 준 것이 감사하고, 반쪽 짜리 사과를 받다가 어느 날 온전한 사과 하나를 받았을 때 더 큰감사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이제 맘대로 냉장고문을 열어서 알아서 먹으라는 완전한 자율권을 주셨다. 그때 나는 은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예정을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라는 측면에서 정확히 풀어낸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9:13-14,새번역).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9:15,현대인의 성경).

 

    예정과 유기는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이다.이 주권을 인정하는 순간 은혜가 보인다완전한 죄의 부패 속에 있는 는 복음을받아 들일 수 있는 어떠한 선이나 능력도 없었다. 그렇다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활동이 없으시면 이루어질 수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사인 예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를 두고 이렇게 기록한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6:65). 이런 의미에서 예정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자녀를 부르시기 위한 가장 우선적으로 행하시는 주권적 절차이다.

 

    그러면 이제 유기영원한 사망에로 예정된다(foreordained)”라는 말이 하나님을 정말 불의하신 분으로 몰고 갈 수 있을까? 앞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 처럼, “그럴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왜 일까? 하나님은 죄나 불의함의 창조자가 아니시기 때문이다. 유기되는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받게 되는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온 인류가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인류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죄의 대가이다.하나님이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더 이상에 또 따른 악을 인간에게 불어넣으시거나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죄가 중대하고 심각한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류하고죄인이 자기의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시면 곧 그것이 유기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영원한 멸망으로 갈 인생을 예정하심으로 하나님은 주권적인 은혜를 제한적으로 행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예정 안에 들어간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혜자이다. 그 은혜의 수혜자는 죄의 바다에서 건져준 구원호의선장에게 감사해야 할 뿐, 왜 다른 사람은 건져내지 않았냐고 불공평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구원호의 선장죄악의 바다에 배를 띄우지 않았더라면, 단 한 명의 은혜의 수혜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막 사망의 문턱에서 건짐을 받은 당신으로부터 선장이 듣고 싶어하는 한 마디는,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다.

10/3/2015 2:50:00 PM

There is no comment yet...
의견 등록을 하시려면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