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9: 하나님의 작정2
김태길목사
3장2항:하나님께서는 가정된 모든 조건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혹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실지라도, 그는 어떤 것을 작정하실 때, 그것을 장래일로 예지했거나 그런 조건들에 근거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예지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작정하신 것이 아니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풀기 어려운 세상 역사의 숙제이다. 그러나 사실 성경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초등학생도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다. 성경은 명시하길,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1:24). 이 성경 구절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문자적으로 달걀이 아니라 닭을 먼저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예정’이라는 신약성경의 단어는 마치 “달걀과 닭”의 명제보다 좀더 복잡한 논리를 필요로 한다. 예정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크게 두 가지 신학적 입장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하나는 예지 예정이고, 또 하나는 무조건적 선택이다. 이를 주장하는 양 진영 다 확고한 그들만의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성경구절의 문자적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속성(성품)이라는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한번 접근해 보자. 당신은 다음의 두 명제 중에 어떤 명제가 더 하나님의 속성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1. 하나님은 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작정하신다.
2. 하나님은 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아신다.
이 두 가지 명제를 당신의 ‘논리적 상식’을 배제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만 곰곰이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과연 예지의 능력을 발휘하셔서, 어떤 것을 작정하고 계획을 세운다고 가정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은 항상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말하자면 제1원인이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작정이 제1차 원인이고, 인간의 결정이 제2차 원인이라고 가르친다. 창1장3절을 보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기록한다. 빛이 생겨난 제1차 원인은 하나님이시지, 물질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에서의 창조”를 하심으로, 자신이 창조의 주가 되신다는 것과 제1원인이 되신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만약 앞서 두 가지 명제 중 1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과연 “빛이 어느 날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빛을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는가?라는 질문에 그럴 듯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답을 찾기 위해 골똘할 필요가 없이 아주 명료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명제 2번으로 적용해 보자.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빛이 생겨날 것을 아신다.” 여러분은 명제1번과 2번 중 어떤 것이 더 이치에 맞는가? 그리고 어떤 것이 더 “하나님다운” 모습인가? 당연히 2번이어야 한다.
R. C. Sproul이 멋진 말을 했다.“하나님은 모든 우연성들을 아시지만 동시에 하나님 자신에게는 어떤 것도 우연적이지 않다.” 당신의 구원의 문제를 우연성에 맡기겠는가?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비참이 죽게 한 것이, 인간의 선택과 결정이라는 우연성의 변수에 의해서 결정한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도있고, 받아 들일 수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성”이 있을 때에야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을 아무리 치켜 세워 잘 난 척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그것을 덮고도 남아야 될 것이다. 그것이 절대성이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어떤 조그마한 권리나 능력이 주어졌다면, 이미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라고 불릴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 자신이 주지 않으면, 이 세상에는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그것이 비로소 은혜이기 때문이다.
질그릇교회가 대학부 개척을 위해서 얼마 전부터 기도해 왔다. 물론 목사는 약1년 전부터 소원을 품고 기도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부 담당 목사가 적절한 타이밍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교회를 다녀보지 않은 불신자 대학생이 우연히 스스로 교회를 찾아 왔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그렇게도 기도하던 한 대학의 캠퍼스 사역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아주 적절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를 나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캠퍼스사역 시작 당일 하루 전날, 우연히 교인의 가족이 이 사실을 듣고, 그 대학 캠퍼스의 한국 유학생을 총괄하는 담당 한국인 교수를 연결시켜 주었다. 이 각각의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피시는 분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총체적으로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살피시고 다루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이런 측면에서 굉장히 하나님의 “적극적 속성”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인생사를 그저 관망하다가 필요하셔서 한번씩 “관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인생의 주체자이시며, 계획자이시며, 진행자이시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응답들은 우연의 산물처럼 보이는 결과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작정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의 의지이자 결정이다. 이런 하나님의 작정의 의지는, 그 어떤 우연의 법칙이나, 인간 행동의 변수나, 심지어 하나님 자신의 “전지(omniscient)”의 속성도 절대로 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