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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박영돈)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김태길목사

 

천막 교회로 시작하여 70-80만 교인이 모이는 세계 최대 교회를 일구어 냄으로써 성공 신화가 현실로 바뀌는 기적을 창출해 낸 조용기 목사는 영산제자교회 독립 1주년 기념 예배에서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작은 교회가 아름답다는 말을 믿지 마라. 목회에 실패한 이들이나 하는 변명이다주님 보기에 큰 교회가 아름답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결코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가 신봉하고 추구해 온 신화적 교회론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은 교회는 실패한 것이고 큰 교회가 아름답고 성공한 것이라는 사고는 대기업이나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영 논리이지 교회가 따라야 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는 정면으로 충돌된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성장은 세상의 대기업을 닮은 성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성장이다. 교회가 과연 성경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는 숫자가 아니라 거룩함이다. 열매를 많이 맺은 교회가 아름답다는 조용기 목사의 말은 맞다. 그러나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는 조 목사가 말한 수적 열매가 아니고 성화의 열매다. 주님 보시기에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열매를 많이 맺는 교회가 아름답다. 아무리 수적으로 거대한 교회를 이루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함의 열매가 없는 교회는 주님 보시기에 추할 뿐 아니라 악하다만약 그 큰 교회와 많은 교인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기보다 세상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본받는다면, 복음의 영광을 가리고 주님의 이름을 심히 욕되게 할 것이다.”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 by 박영돈, 책 내용 중

 

    한국에 즐비한 대형 마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도시를 장악할 때, 수십 년 간 동네 어귀를 지켜오던소위 구멍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 현상에 대해 사람들에겐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값싸고 좋은 물건을 한 곳에서 한꺼번에 구할 수 있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추리닝입고 대문만 열고 나가 엎어지면 코 닿을 대에 있는 또 다른 편리함을 잃어버린 것이다.

 

    교회의 대형화가 일어난 지는 꽤 됐다. 적어도 한국은 대형 마트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부터 이미메가 처치가 존재했다. 교회의 대형화가 상업계의 대형화보다 앞선다. 일전에 서울의 새벽기도로 유명한 한 대형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그 교회는 교회당 주변에 여러 개의 주차장을 두고 있었다. 그래도 매년 주차장이 모자라 주변 땅을 매입한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그 교회 주차장 한 복판에 지은 지 수십 년은 돼 보이는 아담하고 고풍스런 교회당 건물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교회당에는 주일임에도 문을 잠그고 사람들이 출입하지 않았다주차안내 하시는 분에게 저 교회당은 뭐냐고 물었더니, “아 네, 교인수가 계속 줄고 운영이 힘들어서 우리교회에 건물과 땅을 팔고 나갔어요.” 나는 그 주차장 한 복판에 마치 박물관처럼 버티고 있는 그 교회의 모습에 가슴 아파 할 틈도 없이, 그 대형교회의 주차 안내하시는 분의 담담하면서도 당연하듯이 내 뱉고 가는 그 말투에 더 가슴 아팠다.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거대자본이 소자본을 잠식하는 현상에 대해서 무뎌진 지 오래다. 아니 오히려 교인들 가운데 다수가 대형교회를 반긴다. 이유는 개인마다 다양하다. 어떤 이는 교인행세는 하고 싶은데, 적당히 숨어서 하고 싶을 때 대형교회는 소속감 없이 홀가분하게 예배만 딸랑 드려도 되는 곳이기에 좋다. 한 교회의 열심당원으로 소속된 어떤 이들은 자기 교회가 커져야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자본주의에 도취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대형교회가 개인의 자유로운신앙생활을 가능케 하는 도피처가 되는 셈이고후자의 경우는 대형교회가 마치 하나님이 소형교회보다 훨씬 기뻐하시며 더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고 하는 비뚤어진 교회론의 결과다.

 

    내가 소형교회 목회자이기에 소형교회 예찬론이나 대형교회 무용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박영돈교수도 그의 책에서 최악의 또는 최상의 교회가 될 수 있는 작은 교회라는 소제목에서 밝히듯이 작은 교회라고 해서 항상 건강하고 성경적인 교회일 수는 없다라고 지적한다. 교회 싸이즈 자체가 성경적인 교회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소형교회가 기독교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 보다, 대형교회가 훨씬 많은 부분에서 그리고 심각하게 본래 교회의 모습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근 몇 몇 대형교회들이 모범적으로 분립개척을 시행하는 것은 그나마 기독교 교회의 본질을 지키려는 아름다운 시도라고 봐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교회가 대형화나 소형화와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흥망성쇠가 성경적인 본래 교회의 기능을 회복하느냐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교회의 성경적인 본래 청사진이 뭘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본질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다. 에베소서 2장과 4장은이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 세운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첫째, 신자 개인이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는 것이다 (2:21). 오늘날 성전은 더 이상 교회 건물이 아니다. 신자의 몸이 성전이다. 이 의미는 세상 어떤 철학이나 사상에도 나오지 않는 기독교 유일의 신비한 가르침이다. 신자의 몸이 성전이 된다는 의미는 신자의 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의미이다(2:20, 고전3:16). 만약 교인수가 수천 명이 된다 한들 각 신자 안에 그리스도께서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신자 몸 안에 계신다는 의미는 구원받았다는 말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여기에서 만족해 버리기 때문에 교회론이 세속화된다. 앞서 그리스도의 몸의 세운다는 의미의 첫째에 해당되는 문장을 유심히보라. “성전이 되었다(became)”가 아니라 성전이 되어가고(become)”이다. 성경이 그렇게 명시한다무슨 말인가?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끝이 났다는 말이 아니다오히려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다. 남아 있는 신자 개인의 구원의 삶이 너무너무 많다는 말이다. 그 신자 개인의 구원의 삶 중에 가장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가야 하는 일이다다른 말로 하면 성화의 삶이 남아 있다.

 

    그러면 어떻게 성전이 되어 갈 수 있을까? 신자 개인이 벽돌 한 장이라면, 신자 두 명은 벽돌 두 장이다. 건축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에게 물어봐도 벽돌 한 장을 건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신자 개인이 아무리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a holy temple)이라 한들 그것이 교회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경은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joined together)” 그리고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being built together)”라고 말씀한다 (2:21-22, 4:16). 교회는 혼자일 때가 아니라 여럿이 합쳐지고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교회이다. 그러고 나면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진다.

 

    그러면 연결된다는 말이 뭘까? 사랑이다(4:16). 교회라는 조직은 사랑의 유기체이다. 세상의 어떤 기업이나 국가조직과는 본질적으로다르다. 세상의 그것이 조직의 이윤과 공리주의가 목표라고 한다면, 교회는 사랑이 교회조직의 목표이며, 도구이며, 이유다. 교회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의 과정을 거쳐서, 사랑으로 귀결된다. 신자가 서로 연결된다는 의미는 곧 사랑으로 하나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된다. 소형교회는 대형교회보다 이런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기 쉬운 조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그래서 교회의 크기가 작을 때부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서로 사랑 안에서 연결되면, 교회의 크기가 커지더라도 그 본질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확률이 클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형교회도 얼마든지 성경적이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영돈 교수님은 나의 신학교 은사이다.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이라는 책을 쓰실 때, 나에게 각 장마다 미리 읽고 교정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보다 이 책을 많이 그리고 정독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성경적인 교회관에 대해 좀 더 많이 묵상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 책이 이 시대에 선지자적 소명감으로 쓰여진 교회를 향한 노 신학자의 절규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절규에 귀 기울인다면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교회의 본질에 가슴이 뛰게 될 것이다.

 

5/6/2016 2:52: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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