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길 목사
“ 만일 당신이 일주일의 7일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일주일에 단 하루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이다. 주일예배 후에 월요일 예배, 화요일 예배, 수요일 예배 등으로 삶의 예배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면 주일예배도 의미가 없다. 일주일에 오직 주일 하루, 그것도 교회에 한 번 가는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개중에는 주일에 교회에 두 번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그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한번 가든 두 번 가든, 그것은 모두 동일한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차피 주일은 온전히 ‘예배드리는 날’이 아닌가?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만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삶의 예배가 이어지지 않는다면주일의 공예배 또한 참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책 내용 중]
A. W. Tozer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소위 말하는 메이저 신학교 출신도 아닙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대로 된 신학교 졸업장 하나 없습니다. 그냥 독학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공부를 해냈습니다. 그리고 Wheaton College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학위라면 유일한 학위입니다. 그런데 그는 44년간이나 미국과 캐나다에서 목사로 목회했습니다. 그는 청빈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버스와 기차를 타고 다녔다 합니다.
대게 이런 사람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하나님 밖에 모르죠. 하나님의 외에 그 어떤 것도 가치부여를 하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기죠.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성경이 줄곧 가르치는 바를, 그는 바보스럽게 지키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이 예배의 삶이었고, 형식이 아닌 가슴으로 드리는 실제 삶으로 드리는 예배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살아야 할 삶의 예배를 실제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봅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을 읽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열렬히 당신의 백성을 향하여 거룩한 예배자로 부르시고 계신지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성경에서 줄 곧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거룩한 백성이라고 칭하고 있음에도 말라비틀어진 명태같이 딱딱해 져 버린 우리의 신앙양심을 보며 한숨만 나옵니다.
목마르다고, 갈급 하다고 외쳐대면서도 목사만 쳐다보고 있는 약해빠진 기독교 신자들의 현실을 봅니다. 그 중에 목사 자신도 여느 신자와 다를 바 없는 고물이 되어 털털거리기만 하지 힘은 없는 시골 경운기마냥 강단 소리만 빽빽거릴 뿐 능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옆 사람의 불편한 언사에 째려보며 응대해 줘야 속이 시원해지는 고약한 성질머리를 가진 신자가 교회 안에 있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장 상처 입은 연약한 영혼으로 생각하면서도, 형제 자매의가슴에 수없이 독화살을 쏘아대는 모순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머리로는 온갖 성경의 지식과답을 알면서도 여전히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겸손의 탈을 쓰고 남을 정죄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지독한 선입견으로 무장된, 일말의 조언도 통하지 않는 독선가이면서, 정작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해야 된다고 주구장창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해 본적도 없는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은혜 받고 싶다고 그렇게 외쳐대면서도 주일 예배를 위해 뜨겁게기도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주일 강단의 설교가 은혜의 폭포수가 되길 간절히 원하면서도그 은혜의 폭포수를 받을 그릇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예배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예배하지 않습니다. 사랑 받고 싶다고 말하면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응답 받고싶다고 말하면서 기도다운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말뿐입니다. 정말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모순적이며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목사의 눈에도 그렇게보인다면 그들에게도 당연히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배자로서 도무지 “거룩”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부족합니다. 연약합니다. 너무 엉터리입니다. 궤변적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더 돋보입니다. 예배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설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이 그리스도의 보혈 가운데 흐르는 뜨거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우리의 욕심과 헛된 망상들을 제어해야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제서야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 질그릇 지체들에게 이 예배자의 기본 안내서로, 토저의 [예배인가, 쇼인가]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