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일(느헤미야 1장 1-20절)
-질그릇 성도들과 나누는 묵상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 6....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 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 ...17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20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오직 하나님!
느헤미야서를 리더십의 관점에서 읽고 가르칩니다. 그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상숭배에 빠져 심판을 하시면서도, 고토로 돌아가게 하시겠다고 회복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약화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면 하나님의 His-story 가 이루어지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마음에 합한 자를 세우시고 쓰시는데 전문가 이십니다. 그 경계선을 우리가 다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관계의 종교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정도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며 오직 하나님만의 영광을 오롯이 드러내는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가운데 발생되는 부스러기를 자기의 영광으로 취하는 자는 선종(Finish well)하기 힘든 것을 교회사적으로 봅니다.
느혜미야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주어진 상황 가운데(1-4절) 잠시 묵도했습니다. 묵도는 ‘중재하다, 기도하다, 탄원하다, 판단하다’ 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 짧은 시간이었겠지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던 그는 이것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1장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그러한 관계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혜미야를 준비시키셨고 느헤미야는 합당하게 반응했습니다. 그가 부르는 하늘의 하나님(20절)은 다니엘 역시 고백하던 하나님입니다(단 2:18, 19절).
아닥사스다 왕과의 관계도 하나님이 행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1-9절).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는, 상식과 인간세상의 법칙에서 당연한 해석과 흐름을 넘어서, 이끌고 다스리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십니다. 6절 하반절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하늘의 하나님이 좋게 여기신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하나님의 관계를 살필 수 있습니다. 12절...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18절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시는 것은 일부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일을 맡았을 때 동기부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에 더 동기부여가 됩니다.
반대자가 있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는 것을 들어도 마음에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에 더 마음을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좇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