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1일(마태복음 14장 13-21절)
-질그릇 성도들과 나누는 묵상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죽음을 예수께 아뢰었습니다(12절). 이미 요한의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으셨습니다. 그들은 구면인 것입니다. 13절에서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났다고 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세례 요한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 부정한 권력과 죄악의 결과로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마지막 선지자를 죽인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결이 됩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오병이어의 사건 이후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신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의 죽으심과 죽으심의 의미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무리가 따릅니다. 그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 표적과 기사와 권위 있는 가르침에 혹시 메시야 인지 모른다고, 로마의 폭정으로부터 해방하실 그 분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성경을 통해 전후의 사건과 그 의미를 우리는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지만, 그 당시 그들은 현장에 있었지만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후에 예수를 못 박아라 외치는 대중들의 한 편에 선자도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14절).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그 사명을 향해 가는 여정 중에도 최선을 다해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과연 십자가의 죽음을 짊어지시고 가는 이 땅에서의 선교사적 여정이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이었을까요?
미련하고 어리석어 진리를 보고도 듣고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을 따르는 무지몽매한 큰 무리를 보시며 그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그래도 주님은 주님의 길을 가십니다. 그들의 현실적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하늘의 축복을 나누어 주십니다(19절).
큰 무리를 책망하지도 않으시고, 어차피 배신할 자라고 거들떠 보지 않거나, 앞뒤 전후를 따지고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십니다. 자신의 길을 가십니다. 긍휼히 여기시며, 예수님이 가지신을 것을 나누어 주십니다.
아니 자기 자신을 철저히 나누어 주십니다. 받는 자의 형편이나 받는 자의 자질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나는 주님을 받은 자입니다. 거저 받았습니다. 거저 나누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이 행하신 바를 본 받아 기꺼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소유는 없습니다. 나의 소유는 다 하늘로부터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