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행실의 필요성은 소금과 빛의 필요성과 같습니다(13-15). 그 목적은 이 땅에 사는 이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종국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16).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 세상에 속할 뿐만 아니라, 어둠에 종노릇하고 사탄의 자녀로 사는 이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의 착한 행실을 행함입니다.
착한 행실의 샘플과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도 착한 행실로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부적(?)이나 주문, 천국 열차의 티켓 같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고 ,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의지함으로, 자기를 죽이고, 부인하며 그의 왕권을 드러내는, 순종의 결정체이며 교본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착한 행실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자녀답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복음되게 하고, 교회로 교회되게 하며,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선교적 결단과 헌신과 순종으로 행하신 착한 행실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것입니다(17).
율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착한 행실로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맞나 틀리나 탁상 공론으로 소비할 신학적 논쟁거리가 이닙니다.
이를(율법을)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 받게 될 것입니다(19).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말씀하신 바과 같이 “가서”, “제자 삼아”, “세례주면서”, “가르쳐”, “지키게” 하는 제자의 삶과 동일합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자신의 아성을 쌓으며 자기 교만의 늪에 빠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그들의 행실에 주목하며 자기 의를 쌓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되었다고 믿는 자들 역시 믿음 혹은 ‘이신칭의’의 아전인수격의 개인적 복음주의에 빠져, 진정한 착한 행실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는 동급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 입성 자체가 불허됩니다(20절).
나의 믿음은 착한 행실로 천국 백성다운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에 합당한 결과로 귀결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There is no comment y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