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교리4-3 : 전능하신 주권의 하나님(사57:15, 욥42:2,눅18:24-27, 2017년6월18일)
오늘은 하나님의 속성 세 번째 시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권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사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라는 것은지난 두 번의 시간을 통해 설교한 “영원성, 편재성, 불변성, 전지성”과 다른 개념이 아니라,이 네 가지를 다 합쳐 놓은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설교는“전능하심”이라는 속성으로 구분하되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부분과 연관하여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욥기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라고 시작합니다. 이표현이 바로 정확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성경 원문에는 “주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로는 “You can do all things…”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전능하시다”는 말에서 오해 될 수 있는 소지를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못 하실 일이 없다고 해서, 말 그대로 “모든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1.하나님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일을 하지 못하십니다. 동시에 외형이100% 세모이면서 또한 100% 사각형인 사물을 만들 수 없습니다.처음부터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일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예수님 안에 100% 완전한 인성과 동시에 100% 완전한 신성이 존재하는것은 우리의 관점으로는 신비롭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자신의 도덕적 속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못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참만 있으시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일을 칭찬하거나 도와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선만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스스로 절대 깨뜨리지 않습니다.하나님은 항상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을 부인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 하시기를 포기하실 수 없습니다. 전지성과 전능성을 포기하시는순간 이미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똑 같은 또 다른 하나님을 만들 수 없습니다.피조된 하나님께서는 그 자체로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계획을 바꿀 수 없습니다.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후회를 하신다는 의미가 되고, 또한 하나님의 지식에 제한이없는 전지하심과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영원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몇 주후에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서 설교할 때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할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보다 초월하는 피조세계와 법칙을만들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오래 전부터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돌의 역설”(The paradox of the stone)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능력의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보다 뛰어날 수 없다는 기본 전제의 문제입니다.하나님보다 더 뛰어나고 초월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다스릴 수 없는세상과 법칙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약해 보면, 하나님은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속성과 미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모든 것을행하십니다. 그러므로 뭔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전능성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성경적 의의는 뭘까요?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전능성에 의해 실천됩니다. 본문 욥기42:2 하반절,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것이 없는 줄 아오니” 하나님이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실행하시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능력이 무한대입니다. 그러면어떤 계획이라도 다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대이므로,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제한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는 “할 수 있는 만큼만 계획을 세운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계획을 실행에 옮기실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있어서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의지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없이 만들어지는 계획은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의 의지가 없으시다면, 어떤 계획도 세워지지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 없이 존재하는 피조물이란 없으며, 하나님의의지 없이 발생하는 사건이란 없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만약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면 그 어떤 일도 발생하지않으며 그 어떤 존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도록 할 의사와계획이 있었고 또한 그것을 실행 시키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세상은 하나님 없는 세상을상상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모든 존재와 발생하는 일들의 제1차 원인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아테네 사람들에게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17:28). 여기서 세 동사, “살며,기동하며, 존재하다”는 결국 생명체에 대한가장 기본적인 설명입니다. 이 생명체가 살며, 움직이며,존재 할 수 있는 유일한 전제는, “그를 힘입어”라고 말씀하면서, 생명체의 하나님의 절대 의존성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생명체의 존재에 대해서 과학적인 사고로 잠시 살펴봅시다.생명체가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는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환경적 요소입니다. 쉽게 말하면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인간 생체적요소입니다. 인간의 몸이 그 환경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산소를 마시기 위해서 폐가 발달해야 합니다. 또한 동시에 대기환경이 인간의 신체에 맞는 가장 적합한상태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구 대기는 질소가78%, 산소가 21%로 99%를 차지합니다.산소의 농도가 조금만 내려가도, 사람은 어지럼 증이 오고 뇌의 활동이 둔해지다가결국 멈춥니다. 산소의 농도가 조금만 올라가면 온갖 곤충과 식물들이 거대하게 자란다고 합니다.사람만한 메뚜기가 판을 치고, 돼지만한 벌이 날아다니게 돼서 사람이 살 수 없게됩니다. 그리고 산소의 농도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짙어도, 캘리포니아산불이 나면 비가 오지 않는 한 그 불길을 잡기가 거의 불가능해 질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산소 비율과 질소의비율이 서로 뒤 바뀌면, 누군가 담배 불을 지피면 도시가 파괴될 정도로 큰 폭발이 일어난다고 합니다.그래서 지금의 산소 비율이 21%인 것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생체적,환경적 수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비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태양광선의 세기가지금처럼 일정해야 합니다. 또한 태양과 지구간의 거리가 지금보다 조금만 가까워도 안되고, 조그만 멀어도 안됩니다. 이것은 수천 수만 가지의 생존환경의 조건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합니다.달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지구에 가까이 있다면, 지구는 바닷물에 잠겨 버릴 것입니다.달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멀어진다면, 지구는 대기순환이 느려질 것이고,지구 자전축이 변해서 사계절이 없어지고 낮에는 뜨거워서 생물이 타서 죽을 것이고, 밤에는 얼어서 죽게 될 것입니다. 달이 아예 없었다면 지구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8시간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또한 태양을공전하는 궤도도 불안해지고, 지구는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 모든 한치의 오차도 없는 대기순환과 대기의 온도와 바닷물의 높이가 유지되는 이유는 태양과 지구, 그리고 달의 크기와 거리와 그리고 움직이는 속도와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달의 크기가 지구의1/4이고, 태양의 1/400이며,또한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가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의 1/400입니다.그래서 달과 태양의 크기가 지구에서 보면 똑같이 보이며, 개기 일식이 가능한 이유도이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크기와 거리의 비율이 지구에 생물체가 생존하게 하는 유일한 비율입니다.이 수치가 조금만 틀어져도 지구에는 생물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도대체 이런 환경적, 생체적 요소들이 다 언제, 어떻게 출발했는가? 입니다. 이에 과학은 결국 “우연의 법칙”을 내세웁니다. 도대체 이 모든 우주의 산물들과법칙들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게 Big Bang(우주 대폭발)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상식적으로 질문해 봅시다. 그러면 물질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무슨 수로 폭발이 일어나느냐?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주가 탄생할 만큼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발이 가능하려면도대체 얼마나 큰 물질 또는 에너지가 존재해야 할까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러면 그것을 가능케 한 그 물질과 에너지는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폭발이있었다고 말하면, 그것은 비과학이 되는 것이고, 뭔가 있는 가운데 폭발이있었다고 해도, 그 폭발의 매체는 언제 어떻게 출발했는가를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에, “우연”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과학이“우연의 법칙”을 내세움으로써 비과학이 스스로 돼 버립니다.또한 백번 양보해서 빅뱅이 어느 날 우연히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생명체는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과학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알다시피 무기물은 절대 유기체로 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생명체가 탄생하게 될 수 있을까요?과학은 또 한번 “우연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듭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는 이런 “우연의 법칙”을 말하지 않고도, 가장 과학적이고 명백한진리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계셨고, 그 전능하신힘으로 모든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성경이 정확히 이 우주 탄생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권능을 발휘하시고,어떤 법칙을 주셨는지 설명합니다.
욥38장에 보면,땅의 기초를 하나님이 놓으셨다고 했습니다(욥38:5). 지구를 우주 공간에 세워두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밝힙니다(욥38:6). 우주의 중력법칙과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모든 우주에 관한 법칙을 하나님께서 부여하셨다는 뜻입니다. 지구의 바다가 넘치지 않도록 가두시고 한계를 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밝힙니다(욥38:8,10-11). 또한 아침이 어김없이 찾아 오는 일, 즉 지구의 자전 법칙을 하나님께서주셨다고 기록합니다(욥38:12). 또한 지구의 대기순환과 천재지변의법칙을 하나님 정하셨다고 기록합니다(욥38:24-30). 그리고 북두칠성과오리온 성좌, 큰곰자리 같은 별의 무리와 이것들이 움직이는 궤도의 질서와 법칙을 하나님께서 정하셨다고 기록합니다(욥38:31-33).
지금 성경은 무엇을 말해 주고 싶은 것일까요?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이 없이는 그 어떤 우주의 존재도 그 존재성을 유지할 수 없고, 살아 있거나, 움직일 수 없다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욥의 고백은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외쳤던 소리와 일치합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그러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실천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반드시 전능하심으로 나타납니다.힘없는 주권은 없습니다. 한 나라도 국방력으로 그 나라의 주권을 행세하고 지킵니다.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을 자신의 무한하신 권능으로 행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우주에 일어날 일을 일어나도록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그래서 우주가 알아서 돌아가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계획하시고, 명령하시고,효력 있게 실행되도록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발생하는 일도 하나님의주권을 벗어나는 일이 없으시며, 하나님의 의지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고, 발생하는 것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의 위대함은,그 구원이 우리의 어떠한 공로나 노력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말하면, 이 구원에 우리의 어떤 선이나 행위도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결국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받지못하는, “구원 불능 상태,” 즉, “전적 타락”가운데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누가복음18장 본문을 보세요. 한 부자가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눅18:25-25)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을 엉뚱하게 해석하는 어떤 사람들은, “청빈론”을 주장하기도 하고, 기독교의 구원은 기본적으로가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런 구절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구원에관한 한 인간의 어떤 공로도 소용없고, 불가능한데,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은혜가 있으면 가능하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십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최소한 이 자리에 서 있는 목사보다 훨씬 훌륭하게 말씀에 순종하며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그렇게 착실히 계명을 지키며 산 것이 구원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말씀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부자라는 사실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면서 반전을 보여주시죠.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룰 수 없는 구원을반드시 그리고 실패 없이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하실 때,그것을 막아서 거부할 자가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구원의 의지를 보여주십니다.이것이 구원의 확실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구원이 절대로 파기되지 않고,완전한 이유는 그것의 계획을 세우신 분의 의지가 완전하시고,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또한 그 의지를 실행시키시는 능력이 완전히 탁월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그 구원은 절대로 마귀가 포기시킬 수 없으며, 심지어 우리의 의지로도 포기 할 수 없는 완전한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