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요한복음 ⑥ : 제한 속죄(“TULIP”의 “L”)( 요 6:37-40, 10:26, 17:6, 9, 2017년2월12일)

요한복음⑥ : 제한 속죄(“TULIP” “L”)( 6:37-40, 10:26, 17:6, 9, 2017212)

    오늘은 칼빈의 5대 교리 세 번째, 제한속죄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Limited Atonement라는 영어인데요.그대로 번역하면 제한된 속죄입니다.“속죄가 제한되었다는 말은, “속죄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만인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제한 된 특정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그리스도는 선택된특정 사람들만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 제한 속죄를 설교할 때면, 사람들이 더러 혼동스러워 합니다. 심지어는 정말 그것이 성경에 있는 교리인지를 묻습니다.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롬10:13말씀을 예를 들어 묻습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0:13)고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라는 것입니다.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의 말씀의 진의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성경에 흐르는 일관된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후 문맥에서뭘 말하려고 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1013, “누구든지가 뭘 뜻하는지,그 바로 앞 구절에서 밝힙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10:12). 그러므로 여기서 누구든지는 불특정 다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의미로,“누구든지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또 한가지 제한속죄에 대한 반론은, 딤전2:4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후 문맥에서 무엇을 의도했는지 보면 간단합니다. 딤전2:1-2에서 그 의도가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여기에 두 번씩이나 모든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라고 명시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람의 본 의도는 뭘까요? “모든 계층의 사람을 말하는것입니다. 그 모든 계층에는 임금들도, 높은 지위의 사람들도 포함되는모든 계층을 일컫는 것입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이라는의미로 모든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모든 사람모든 인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속죄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는 것을 강력하게 가르칩니다. 오늘본문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여기서 내게 주시는 자라는 말은 창세전부터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17:6, 9절에도 마찬가지로,“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럼 이제 확인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해 보십시오. ①그리스도는 만인을 위해 죽으셨다. ②그리스도는 자기백성을 위해 죽으셨다. 답은 ②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을 위해서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 백성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여기에서 자기 백성이라고 명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가르칩니다. “자기 백성그들의 죄그들은 바로 무조건적으로 선택한 자들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요10:26에는 내 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그 대상과 범위에서 제한적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십자가는 온 인류를 위해서 주어졌고,대신 믿을 사람은 믿고,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는다라고 정리하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느냐? 라고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가 편협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요한12:2를 예로 듭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여기에서 온 세상은 온 인류라고 해석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결국 온 인류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이렇게 주석합니다. “심지어 사단까지도 구원받을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허황된 꿈이며 망발이므로 논의할 가치 조차 없다.” 그리고 여기서 온 세상은 흩어져 있는 온세상의 택한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소위 보편 속죄라고 불리는것, 십자가는 모든 인류를 위해서 주어졌다.”라는 교리는 초대 교부들 중 클레멘트, 오리겐 같은 사람들이 주장했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대부격인 슐라이어마흐 같은 사람들이 재 정립한 것입니다이것은 치명적인 두 가지 큰 맹점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에 큰 치명타를 입힙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인간의 불신앙 때문에 좌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의 예지성에 모순점을 줍니다. 만약 누가 십자가를 받아들일 것인지 뻔히 예지하시는하나님께서, 뭣하러 믿지도 않을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주시겠느냐? 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십자가가 부분적으로 실패한 계획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처음부터 줄곧 제한 속죄를 가르칩니다. 십자가는 오직 무조건적으로 택하신 백성들만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야 실패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한 속죄는 구원의 확실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만약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믿을 사람들, 즉 특정 대상을 위해서 죽으시지 않았다면 어떤 치명적인 일이 벌어질까요? 이때부터는 구원의 확실성이 아니라, “구원의 불확실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죽으심이 어느 누구의 구원도 확정 짓지 못하게 됩니다. 그냥 가능성만 열어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 중요하게 됩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일단 독생자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불특정 다수를 위해 십자가에죽게 하신 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의 문제는 확률의 문제가 됩니다. 일단 만인을 위해서 죽으셨으니, 이제 그것을 스스로선택해서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고, “스스로 믿음을 선택하지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되는 구원의 가능성만 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산술적으로 50%는 믿게 되는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순진한 사람입니다. 이 경우에 사실은 확률적으로 아무도 안 믿을 수도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만약 음식점을 하나 차렸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점은 세상 모든종류의 음식을 다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이든 주문만 하면, 중국식이든,프랑스식이든, 아프리카 음식이든, 아마존 음식이든다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일단 이 음식점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고객으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입니다.그러면 확률적으로 사 먹는 사람사먹지 않는 사람두 부류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이 음식점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절반이 찾아와서 음식을 먹게 되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확률계산의 조건자체가 엉터리지요. 모든 나라모든 민족의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해서, 절반은 반드시먹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지요. 여기에 한가지 확률계산에서 빠진 게 뭘까요? “사람의 취향이라는 변수가 빠져 있습니다. 제 아무리식당이 세상 모든 사람이 찾을 수 있는 메뉴로 단장을 했다 하더라도, 그 식당은 세상 사람의 단 한 사람도찾아 주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요? 음식이 맛 없으면아무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고, 이제 정말누구든지 그 십자가를 믿기로 선택하는데 자율권을 준 것이라면,어떤 사태가 벌어질까요? “믿는 자믿지 않는 자라는 단순도식으로 50%정도는 믿어줄까요?아니지요.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본성이라는 변수가 빠져 있습니다.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이것은 인간 본성의 문제입니다.1:28에서 자연인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3:10-11,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이처럼 성경은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을 절대로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말씀에서 수치적으로 무엇을 보여줍니까? 가능성 zero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누가 믿을래?”라고 선택권을 주어서 가능성을 열어놓았을 때, 믿을 수 있는 확률은 50%가 아니라, 단 한 명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왜요?모두가 본성적으로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그럴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전적 타락, 전적 부패”2주전에 했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무조건적 선택을 하셨다면, “제한 속죄는 반드시 필연적인 것입니다.두 가지 교리는 함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구원하기로 선택은 했는데,십자가가 만인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은 서로 모순이 되어버립니다. 예를 들어,한 집에 사람이 6명인데, 밥을 두 그릇 담아놓고, 6명 모두에게 한 그릇씩 먹으라고 하면 모순입니다. 한 사람이한 그릇씩 먹으려면 2명밖에 먹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두 그릇도 서로가위바위보를 해서 먹으라든지, 서로 팔씨름을 해서 이긴 사람이 먹으라고 하면, 그때부터는 밥 2 그릇을 차지할 사람은 그야말로 누구든지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만약 무조건적 선택이라는 개념은 이 두 밥 그릇을 먹을 사람이 불특정한 2명이 아니라, 특정한 2명이 정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두 밥그릇은6명 모두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두 명만을 위한 제한적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한 속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한속죄무조건적 선택이라는 교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교리입니다.

    “제한 속죄라는 말이 참으로 거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온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게 기독교 진리가 맞냐고, 납득이 안 간다고 말할 사람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양들만을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습니다. 이 사실이 왜 그리 중요할까요?

    구원의 주권적 효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주권적 효력이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믿고자 하는 자에게 있지 않고, “믿도록 선택된 자에게 효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하는 효력이 사람의 믿겠다고 하는 의지나 선택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십자가 속죄의 효력은 오직 그것을 수여하시는 주체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이 만인을 위한 것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죄를 속하는주권적 효력이 있다는 말과 제한적 속죄라는 말이 왠지 어울리지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한적 속죄라는 말이 마치 십자가의 능력과 효력마저도 제한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십자가의 능력만 보면, 만인을 구원하고도 남습니다. 충분합니다.그리고 영원합니다. 다만 그 대상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건이 충분하고, 영원한 효력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절대로 구원받은 사실이 변하거나 퇴색되지 않습니다.

    이제 한가지 어려운 문제가 남았습니다. 전도의 문제입니다.“십자가의 속죄의 대상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전도할 때, 십자가를자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우리가 전도할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사실제한 속죄의 의미를 깨닫고 나면, 이 말이 잘 나오질 않습니다. 우리가 무슨 재주로 전도대상자가 제한 속죄의 대상인지 아닌지 알고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모릅니다. 모른다면 확정적으로 함부로 전도대상자에게 주님은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주님은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성경의 진리를 크게 위배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좀더 정교한 복음전도를위해서 꼭 문장을 고쳐야 한다면, 이렇게 고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주님은 죄인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이렇게 말하면, 정말자신이 죄인이라고 깨닫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적 선택으로 작정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십자가의 값없는 은혜 아래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제한 속죄 교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어지는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의 구원계획에서 십자가는 반드시 전해져야 하며,반드시 십자가가 효력이 될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계속 전해야 할 사명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도 기술이나 우리의 지혜에 의해서 십자가를 믿겠다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아무것도 못해도 결국 십자가의 구속력은 그 택하신 백성들에게 반드시 효력 있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제한적인 속죄 교리가 왜 신자들에게 중요합니까?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죽으셨다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사실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와 닿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2,000년전 그냥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나의 죄를 위해 값을 치르신 실제적인 사건이며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12/2017 5:46: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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