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요한복음 ⑤ : 무조건적 선택(“TULIP”의 “U”),(요10장26절, 13장18절, 15장16절, 2017년2월5일)

요한복음⑤:무조건적 선택(TULIP”의 “U),(1026, 1318, 1516, 201725)

    오늘은 칼빈의 5가지 중요 교리 중 두 번째, “무조건적 선택에 대해서 하겠습니다. 보통 칼빈의5대교리 설교를 하게 되면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간혹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의교리만 가르치면 되지, 왜 칼빈의 교리를 가르치느냐?” 맞는 말씀입니다제가 오늘 설교할 내용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중요한 교리를 말씀 드리는 것이지, 칼빈이라는 사람의 신학적 주장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왜냐하면 칼빈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출처가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TULIP”“U”인데요. Unconditional Election입니다. 이것을 번역하면 무조건적선택이 됩니다. 작년 2016 11월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미대선에 투표권을 행사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영어로 하면,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입니다. 여기에election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선거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는 본래, “선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국민이 선택한다는 의미죠.

   그러면 Unconditional Election과 presidential election의 가장 큰 차이가 뭘까요? Unconditional Election은 하나님이 한 사람을조건 없이선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presidential election은 사람이 어떤 후보의 조건을 보고선택하는 것입니다가장 큰 차이는 조건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사건이 무조건적이다라는 말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 단어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오해부터짚어 봅시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어떤 자격조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자격조건을심사하지 않으셨다라는 오해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우리는 저번 주 설교를 통하여, 인간의 전적타락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인간이 얼마만큼 무능한가를 살펴보았습니다저번 시간 설교의 핵심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구원으로 나아갈 어떤 능력이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 선택은 무조건적일 수밖에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선택할 수있는 길이 원천 봉쇄되었다면, 방법은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 밖에는 없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 요15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파란색, 빨간색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 옷 가게에 데리고 가서, 무슨 색깔의 옷이 맘에 드냐고 하면 도무지 할 수 없는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때만큼은 그는 색깔에 대해서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볼 수 있는 사람이 색깔을 보고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것으로 골라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색깔에 대해서 전적 무능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누군가 무조건적으로 색깔을 선택해 주지 않으면, 어떤 색깔도 고를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무조건적 선택을 해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능력은 없지만, “자격까지 없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색깔 옷을 대신 골라주는 것은 무조건적 선택이 필요하지만, “무조건적 선택이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기 전, 자연인의 상태에서는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기 때문에, “무조건적 선택이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라는 것이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격을 주어서라도 해야 하는, 완전한 절망과 비참에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위한 어떤 능력도 자격조차도 없다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자격을 부여해서라도 그리스도의 옷을 입게 해주시는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무조건적 선택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라는 것이 이때 해당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일종의 역설이죠.

    그럼 이제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과 믿음의 관계를 이야기 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요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믿지 아니하는도다.”이 말씀에서 가르치는 믿음의 논리적 순서가 뭔지 보세요. ①내가 믿기 때문에 양이 된 것입니까? 아니면, ②양이기때문에 믿게 된 것입니까? 정답은 ②번입니다. “나에게 믿음이 있는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양이기 때문에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선택이 믿음보다 앞섭니다. 양이 메에하고 운다고 해서 양이 되는 것은 아니죠. 반대로 양이기 때문에 음메에 하고 우는겁니다. 논리적 순서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된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내가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죠. 그리스도께서 그 몸 된 교회로 우리를 지체로 접붙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많이 좋아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교회를 좋아하기로 맘먹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아닙니다. 내 안에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일으키시는 성령님의 주도적인 행하심이지요.

    어제 나는 한 진모임에 갔습니다. 나눔 질문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증거가 되는 열매가 있습니까?” 한 지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열매는내가 교회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말인지 모릅니다. 신자가 교회를 좋아하는 것이 자신이 좋아하기 시작했다가 아니지않습니까? 성령님께서는 주시는 열매이지요. 논리적 순서가 이런 것 아닙니까성령님이 신자에게 들어오셨기 때문에,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에게 열매가 있었기 때문에, 성령님이 들어오신다라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우리가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할 수도 없고요.

    이게 왜 중요할까요? 구원의 확실성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먼저일 때 믿음은 실패할 확률이 제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전제될 때에만반드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효한 믿음이 됩니다. 왜요? 그 믿음을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시작한 믿음의 길이라면 그것은 항상 불안합니다. 언제 중간에 포기할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시작하게 하셨다면 그것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을 처음에 누가 수여해주셨느냐 하는 문제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은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고 해서 자녀가 되지는 않지요. 아버지께서 자녀로 삼으실 계획이 없다면 무슨 수로 자녀가 됩니까? 구원 서정 여섯 번째에, “양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삼아주셔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무슨 수로 나서서 하나님의 양자가 될 수 있습니까

    누군가 고양이에게 너는 이제부터 호랑이야라고 하면, 처음에는 고양이가 그럽니다. “아니야 나는고양이야그런데 계속 고양이에게 아니야 너는 호랑이야계속 볼 때마다 말합니다. 그러다가 고양이도 스스로 그래 맞아 나도 호랑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뀐게 뭡니까? 바뀐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고양이의 마음만 바뀐 것입니다상태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무조건적 선택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고양이었는데, 나중에 호랑이로 신분을 변경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아무리 자기 스스로 나는 호랑이라고 믿습니다!!”라고 확신해도, 여전히 고양이입니다. 그러나 무조건적 선택은 처음부터 호랑이로 선택한 사건입니다. 다만 자신이 호랑이인줄 모르고 지낸 것입니다. 호랑이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고양이로만 살아가다가 어느 날 본래의 야성이 깨어나고 새로운 마음, 새로운 상태가 주어져서 호랑이로 살아가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믿음이란, 출발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있습니다처음부터 원래 믿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선택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택 받았기 때문에 중생의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선택했기 때문에 중생에 이르는 믿음이 생긴 게 아닙니다.    

    그래서 무조건이라는 것은 그야 말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자격심사를 하겠다고 했다면, 모두 탈락입니다. 그러나 자격심사를 거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구원의 대상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구원을 선택하셨다는 말은 인간의 어떤 공로도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predestination)하셨다고 고백하지만, 예지(foreknowledge)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혹자들은 그렇게 믿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을자를 미리 내다보시고 그들을 선택하셨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게 성경적인 근거를 롬8:29절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미리 정하셨으니…”그러나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유의해서 읽어야 하는 점이 뭐냐 하면, 전후 문맥을 반드시 함께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롬8:30절을 보세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여기에 부르심과 칭의에 이르게 되는 시작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미리 정하신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부르시고의롭게 하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이 밝힙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 주님을 선택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칭의"를 베푸실 마음이 없으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칭의를 베푸실자는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하시는 주권적인 사건입니다.

    칭의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면말할 것도 없이 믿음은 하나님이 수여하시는 사건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결정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결정 바깥에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우리가 믿음을 받아 들이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말은, 우리가 선택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은, “1. 하나님께서 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2. 하나님은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아신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빛이 생길 것을 미리 아시고 빛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모순이죠. 빛이 생길 것을 아셨다면 그대로 두면 생길 텐데 왜 빛을 만드셔야 합니까그러므로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지요. 하나님은 태초에 빛을 만드실 것을 작정하셨기때문에, 그것을 미리 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 점심 메뉴는 소고기 무우국입니다. 여러분은 30분후에 소고기 무우국을 드시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희 가정이 식사로 섬기는 날입니다여러분 논리적 순서가 어떻게 될까요? 1. 김태길 목사가 교인들과 함께 주일 오후2시 경에 소고기 무우국을 먹고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소고기 무우국을 메뉴로 하기로 결정했습니까아니면, 2. 소고기 무우국을 먹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30분후에 소고기 무우국을 먹을 것을 아는 것입니까? 답은 2번이죠. 결정했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에누리 없이 그대로 하나님께 적용시키기에 부족한 것 압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하나님께도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결정하신 일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아십니다. 그러나 미리 내다보셨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시겠다고 결정하신다면, 그것은 너무 많은 혼란을 가져다 줍니다. 왜냐하면 불확실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인간의 어떤 선택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냥 지원만 해주는 서비스 기관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변심과 기복에 의해서 매번 하나님의 주권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해서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그래야 우리의 구원은 흔들림이 없고,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것도 우연이 없습니다. 항상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모든 것이 필연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이 미국에 이민을 와서 외로워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그러다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손 치더라도, 그것은 우연이나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미리 선택되었고, 예정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필연의 사건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불공평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조건적 선택””예정이라는 말을 들으면대게 불공평 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는 경향이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믿고 싶어서 믿어도, 하나님이선택하시지 않았다면 다 헛된 일이잖아?”라고 반문합니다. 사실 설교자로서이 주제만큼 난감한 주제가 없습니다. 도무지 머리로는 어떻게 이것을 논리적으로 잘 이해시켜야 할지 쉽지 않습니다그런데 성경은 불에 기름을 붓는 듯한 말씀을 기록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9:13-15). 이 말씀을 읽으면 불신자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기는커녕 마음에 화만 더 생길 것입니다. “무슨 엿장수 마음이니 군소리 하지 말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롬9장 외에 이보다 더 좋은 해설을 할 능력이 없음을 솔직히말씀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가 참 신자에게는 거리끼거나 낙망하게 만드는 것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전적으로 부패해서 그 어떤 구원의 길도 찾을 수 없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남아 있지 않은 절대 무능의 상태에 있었던 저와 여러분을, 자격이 없지만 조건 없이 구원의 대상으로 선택하셨다는 이 사실이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저와 여러분이 무조건적인 선택의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로 기뻐하고 감사할 뿐, 절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할 때, 생각의 출발점을 본래나는 아무 자격이 없었다.”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평의 생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사과 밭의 농부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어느 날과 수원에 가보니, 사과나무의 뿌리에 병이 들어서 썩게 생겼습니다. 내버려두면 병들어 죽든지, 살더라도 병든 사과 열매를 맺을 것이 뻔합니다. 이때 결단을 합니다. 사과 나무 중 몇 그루만 선택해서 좋은 땅에 심겨져 있는 다른 종류의 사과 나무 가지에 접붙이기를 하자고 결단합니다. 그래서 농부가 임의로 사과 나무 몇 그루만 선택을 해서 접붙이기를 성공시킵니다. 그리고 접붙이기 한 그 사과나무를 열심히 돌봅니다. 벌레가먹지 않도록 방충망을 씌우기도 하고, 사과나무에 좋은 거름도 줍니다. 그래서 결국 정말 먹음직스런 사과 열매를 맺습니다. 이때 접붙임을 받은 사과 나무는 농부에게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대로 내 버려 두었더라면, 버려져 땔감으로나 쓰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로 접붙임 받아 살아난 사과나무들은 왜내 친구들은 접붙이지 않았냐고?” 농부에게 이렇게 따지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농부는 그 모든 사과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다 썩어서 죽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살려 준 것은 오직 농부의 주권적인 결정이었기에 오직 감사할 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롬11장에는 접붙이기 농사 기술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십니다본성적으로 안 좋은 돌올리브 나무가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이 내버려 두면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돌올리브 나무를 좋은 참올리브나무에 접붙이기를 하십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접붙임을받아 살아난 돌올리브 나무가 해야 할 고백을 알려줍니다. “본래의 가지가 잘려 나간 것은, 그 자리에 내가 접붙임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11:19, 새번역). 그러면서 이렇게 성경은 경고합니다. “그 가지들이 잘린 것은 믿지 않은 탓이고, 그대가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것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십시오.”(11:20, 새번역). 이것이 신자의 태도입니다.

    요15장에서는 예수님은 나는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소개하면서, “무릇 내게 붙어 있어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15:2)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궁금함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농부시라면, 실패가 없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농부시면 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뭇가지가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이것은 말씀 드린대로, “전적부패”, 본래우리는 모두 멸망했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내 버려두면 그냥 밟히다가 불속에 집어 넣어질 인생이었습니다그런데 그 중에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을 해 주셔서 그 은혜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니 그외의 선택받지 못한 가지들은 본래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왜 무조건적 선택이 중요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기위해서입니다. 만약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너무도 값어치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릴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기투표나 다름 없어질 것입니다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고 복지가 좋아지고, 의술이 발달해서 노아시대처럼 사람이8-900년을 건강하게 살고, 아프지도 않는 시절이 온다면 사람들은스스로 그리스도를 택할까요? 그냥 살아도 이곳이 천국 같은데 누가 불편한 십자가를 지고 제자가 되려고 하겠습니까쓸모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텅텅비겠지요그러나 그럴 일이 없습니다. 왜요? 그리스도의십자가는 내가 발견하거나 내가 원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세 전부터 이미 무조건적으로 선택되어진 사람만이 십자가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은혜는 그저 주어진 것이요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선택의 전제 하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5/2017 6:20: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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