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중요성(마1:18-25, 2016년12월25일)
The Significance of the Virgin Birth of Jesus
The latest research says that 73 percent of American Christians say they believe Jesus was born of a virgin. The Virgin Birth of Jesus is really an important doctrine to the Christian faith. Let’s look at the verse 18. “…but before they came together, she was found to be with child through the Holy Spirit.” “before they came together.” This means that while Mary was still a virgin, she became pregnant. Let’s look at the verse 23.“The virgin will be with child and will give birth to a son…” The term, “virgin”originally referred to sexually inexperienced women. Let’s look at the verse 25. “But he had no union with her until she gave birth to a son…” Joseph had no union with Mary until she gave birth to a son.
미국 크리스천의 73 퍼센트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우리 기독교 믿음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교리입니다. 본문 18절을 보세요.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동거하기 전”이라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가 임신을 했을 때, 여전히 처녀였다는 말입니다.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 본문에서는 “처녀”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기록합니다. 처녀라는 단어는 성경험이 없는 여성들에게 쓰는 단어죠. 25절,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요셉이 마리아의 약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3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1. 동거하기 전에, 2. 처녀, 3.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이 세 개의 단어는 실상은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사용되었습니다. 마리아의 동정녀 출산, 즉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이 본문의 뉘앙스는 마치 변호인이 법정에서 의뢰인을 변론하기 위해서 집요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듯이 보입니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본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이 뭘까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너무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싶은 것입니다..
앞서 미국 크리스천의 73퍼센트만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고 했는데, 어떤 조사에 보니까 미국 크리스천의 77퍼센트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답했답니다. 예수님의 부활보다 동정녀 탄생을 더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는지 제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고 부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사도신경에서 이 두 가지 사실을 외우면서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매년 12월 25일로 지키고 있지만, 성경이 그날이라고 가르쳐 준 적은 없습니다. 12월 25일이 언제 어떻게 예수님의 생일이 되었는지 몇 가지 설들이 있지만, 사실 기독교 신앙에는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언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관심은 예수님이 육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육신의 어머니의 상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동정녀, 즉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이 핵심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야만 한다.”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많은 종교마다 탄생신화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알에 태어났다든지, 아니면 신들끼리 결혼해서 태어났다든지…그런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좀 황당한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그냥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오셨다고 하면 멋져 보일 것을, 왜 이리도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을,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라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을까요? 제가 어릴 적에 시골에 자랄 때, 동네에서 “누구 누구 집에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더라” 그러면 정말 창피스런 얘기였습니다. 그 집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형제들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고, 학교에 가면 놀림감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고 버젓이 기록한다는 것이 세상의 놀림감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은 굳이 이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을까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사실이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을 통해 예수님이 오게 하신 것이고, 그래서 성경이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Then why is the Virgin Birth of Jesus so important? There are two main reasons.
First, Jesus is one hundred percent God. Jesus, God the Son is the second person of the Trinity. Why is this so important? There was no physical father of Jesus. Surely Joseph was not the biological father of Jesus.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은 백 퍼센트 하나님이라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 되십니다. 왜 이 사실이 중요할까요? 예수님의 진정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제2위격이신 성자하나님은 제1위격이신 성부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출생의 근원은 육신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곧, 예수님께는 육신의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당연히 예수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닙니다. 동정녀 탄생에 있어서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합니다. 만약 예수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있다면, 그는 생물학적 생산 방식으로 이 땅에 왔기 때문에,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를 물려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의 불가능해집니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아담의 후손으로 생물학적 방식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류는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본성적으로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Romans 5:12 says, “just as sin entered the world through one man…” This means that we fell into sin. We are born with sinful nature because we have inherited a sinful nature from Adam.However, Messiah must be born without a sinful nature because He must die on the cross as the Savior and the perfect sacrifice.
왜 예수님이 생물학적인 방식으로 태어나시면 안될까요?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1절에서 그렇게 기록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라는 이름을 붙여주려면 반드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구원자의 자격을 갖춰야만 그런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습니다. 구원자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뭘까요? 그에게 죄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구원,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에는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더러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태어나는 아이에게 붙여줬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23절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인류의 죄를 위해서 오시는 구원자 예수님은 당시 많고 많은 또 한 명의 예수의 이름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700년 전에 미리 예언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오시는 하나님이며, 그는 생물학적인 방식으로 이 땅에 태어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태어나게 된다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제 예수님이 동정녀의 몸에서 나셔야만 되는 두 번째 이유가 뭘까요?
Second, Jesus is one hundred percent man, but without sin. Many people think of Jesus as being fifty percent God and fifty percent man. However, Jesus was both fully divine and fully human. The concept of fully God and fully man seems logically impossible. Can you imagine something that is both round and square at the same time? However,God can make it possible.
예수님은 백 퍼센트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십 퍼센트는 하나님, 오십 퍼센트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이 개념은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동그란 네모나, 네모난 동그라미를 상상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이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형이상학이나, 추상적이거나,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안 될 뿐입니다.
그럼 왜 예수님은 백 퍼센트 인간으로 오셔야만 하셨을까요?
Why did Jesus become a human being? Mark 10:45 says, “For even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Jesus became flesh so that He could die on the cross for our sins. The son of God, Jesus has a fully human body, mind, heart, emotion, and will. John Calvin said, “Christ has put on our feelings along with our flesh.” Why is this so important? Isaiah 53:5 say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온전히 인간의 몸을 입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도 마음도, 감정도, 의지도 완전히 인간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몸과 같이 우리의 감정들을 취하셨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이사야53:5에서 그 해답을 줍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기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 백퍼센트 육신의 몸으로 오셔야만 되는 이유는, 그가 온전한 고통과 죽으심을 통해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줄곧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피입니다. 히9:1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가 흘려져야만 죄사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레17:11,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예수님의 피가 생명을 이루는 피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은 진짜 피를 흘리셔야만 됐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온전한 백퍼센트 사람으로 오셔야만 됐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고통과 진정한 피를 완전히 쏟으셔서, 그 피가 우리에게 효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을 입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신반인”같은 50퍼센트 하나님, 50퍼센트 인간의 몸을 입고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십자가에서 쏟으심으로, 구약시대의 모든 제사의 희생을 대신하셨습니다. 그 피는 단번에 그리고 영원하게 효력을 발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효력있게 나타났고, 이제 구원백성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