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영적전쟁 ⑧: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1(2016년11월27일 주일)

영적전쟁⑧: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1(20161127일 주일)

 

    오늘 본문을 가지고 이번 주와 다음주 두 번 나누어 설교하도록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이 동쪽으로 가길 원하는데, 만약 그 사람은 서쪽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그러면 2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서쪽으로 가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으시거나, 서쪽의 길을없애버림으로 해서 동쪽으로 결국 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뭉개져 버리는 것 처럼보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양보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서쪽으로 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리고 쭉 계속 서쪽으로 가게 합니다.이런 경우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중되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손상을 입는 것 처럼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서로 잘 조화 될 수 있다고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서로 부딪히지 않고, 조화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이야기를 한번 살펴봅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소를 당하고,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판결이 나지 않고, 본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합니다. 그래서 결국 행19장에서 본인이 고백한 것처럼,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한 것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로 미결수 신분으로재판으로 받기 위해서 배로 압송되게 됩니다.

     9절은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 위태한지라라고 시작합니다. 여러 날이 걸려서도 항해에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람이 여의치 않아서였습니다. 276명을 태운 제법 큰 배가 이탈리아로 출발합니다.배는 범선이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야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설혹 바람이 분다고해도 방향이 맞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출항하지 못하고 그레데 섬의 미항이라는 곳에서 배를 정박시켜놓고 때를기다리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다고 본문이 말하는 것으로 볼 때,때는 아마도 10월 정도로 봐집니다. 곧 겨울이다가오고 있는 시기입니다. 선장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겨울이들어서기 전에 빨리 출항을 할 것인지, 아니면 겨울을 항구에서 보내고 봄께에 출항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만합니다. 그리고 만약 겨울을 나고 출발한다고 할 때에는 어느 항구에서 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이때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엇갈립니다. 바울은 지금 항해를 하면 재난을 당하게되고, 배와 생명까지 잃을 지 모른다고 그냥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자고 주장합니다. 바울이 비록 미결수 신분이었지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로마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약간의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10). 그런데 바울과 달리, 다른 많은 사람들의 주장은지금 항해를 해서, 뵈닉스라는 항구로 배를 옮겨서 겨울을 나자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죄수들을 호송하는 책임자인 로마군대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의견에 더 신뢰를 합니다. 바다의 경험이 많은 선장의 말을 믿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입니다. 이렇게 항해에 대한 인간의의견은 크게 두 쪽으로 나뉘어집니다. 두 자유의지가 팽팽하게 맞서지만 결국 바다의 전문가와 다수의 의견으로출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납니다.왜 해필이면 이 시간에 이 광풍이 불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일어난일이라고 믿습니다. 38장에 보면, 하나님은 홍수의 물길을 내시고, 번개가 가는 길을 내시고, 동풍이 어느 길로 흩어지는 지 결정하시는 분이라고 알려줍니다. 유라굴로 또한 하나님이 결정하셔서일어난 바람입니다. 결국 유라굴로는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들이 항해하기로 한 자유의지의 결과를 하나님의 주권이 틀어버린는 것 처럼 보여집니다.

     이제 배는 바람이 부는 대로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배의 짐을 바다에 버립니다.셋째 날에는 배의 장비를 바다에 버립니다. 며칠이 지나도 광풍이 멈추질 않습니다.그래서 배에 탔던 사람들은 살아남으리라는 희망이 점점 사라졌다고 20절에서 기록합니다.폭풍이 얼마나 심했던지 사람들은 배에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바울이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이런 재난과 손실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21). 그러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제 안심하시오. 여러분중에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고, 다만 배만 잃을 것입니다”(22).그러면서 전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아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23).

    드디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2가지를 약속하십니다. 바울이 반드시 로마황제가이사 앞에 서야 하는 것과 배에 탄 사람들이 아무도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어찌됐던 배가 파손되는 한이 있더라도, 배에 탄 사람은 한 명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약속을 스스로 지키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지를 발동하셔서 반드시 한사람도 잃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주를 만드신 분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은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켜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세요. 배에 탄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발동하는 지 보세요.

    이제 풍랑을 만난 지 14일째가 되던 날, 어떤 섬 가까이에 배가 다가가게 됩니다. 이때 선원들은 경험적으로 배가 암초에 걸릴 수 있고 그래서 배가 파선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탈출용 보트를 내려서 배를 버리고 도망가자고 모의를 합니다.이것을 눈치를 챘는지 바울은 로마 군대 백부장과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당신들은 무사할 수 없습니다.” 무슨말입니까? 배의 선원들이 탈출해 버리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목숨이위태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세월호 사건이 그랬습니다. 선장과선원들이 승객을 남겨두고 먼저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무고한 생명이 많이 죽었습니다. 바울의 상황이 그와도 같습니다. 배가 이제 조만간 뭍에 당도할 것인데, 그때까지만이라도 선원들이 제 역할을 해 주어야, 배가 뭍 가까이 가게 되고, 사람들의 신변이 안전할 수 있다는 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두고, 바울이 믿음이 없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실하나님은반드시 바울이 살아서 로마의 황제를 만나게 된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이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살아나갈 것이다라는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5절에 보면, 이렇게 까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믿노라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사도 바울의 자유의지는 전혀 충돌하지 않고 그대로 양립합니다.하나님은 그렇게 약속하셨고, 바울은 바울대로 로마 호송대장 율리오에게 선원들이 도망칠가능성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래서 탈출용 보트를 바다에 끊어 버리게 해서 결국 그 탈출계획이 무산되게 하고,배에 탄 사람들이 더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배에 탄 사람들을다 살아나가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고 해서,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시행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유의지로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의 일을 완성시킵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기독교 신자가 경계해야 할 사상이 하나 있는데,그것은 운명론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뜻은주권적으로 인간 역사에서 시행됩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에따라 나타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계획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없고, 아무리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 또한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운명론은 아닙니다.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치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발휘해도 결국 사람의 자유의지는없는 거나 다름 없는 것 아니냐? 라는 질문을 하면서, 결국 개인의운명대로 흘러 가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운명론의 가장 큰 문제는 뭘까요? 바꿀 수 없다는 체념이 깔려 있습니다. 노력해도 소용없고, 자신의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이 기독교에 들어오게 되면,첫째,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요?기도를 해도 운명대로 될 것이고, 기도를 안 해도 운명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둘째, 말씀보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믿음이자라지 않는 사람은 어차피 자라지 않을 것이고, 말씀을 안 읽어도 믿음이 자라는 사람은 어차피 자랄 것이라는사상입니다. 셋째, 전도하지 않습니다. 전도하지 않아도 어차피 믿을 사람은 믿고, 믿지 않을 사람은 믿지 않을 건데 뭣 하러 전도하느냐?이런 사상이 알게 모르게 기독교 안에 들어와서 신자들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지내는지 모릅니다. 나는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말씀 안보고, 기도 안하고, 전도 안 하는 이유에, 자신도 모르게 이 운명론에 젖어 들어 있다고 봅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하루에 한끼만 먹고도 키가 쑥쑥 자랄 수 있다고 믿습니까? 100,000만명에 한 명쯤 그런 특이한 체질이 있을 수 있는 진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일이 불가능하지요?그래서 무조건 밥을 잘 먹여야 되지 않습니까? 북한에 11살 짜리가 남한에 7살 짜리하고 키가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하루에 고작 한 두 끼 먹는데, 그것도제대로 먹는 끼니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만약에 운명론자들이 이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웃긴 이야기입니까? 키가 크고 작은 것은 운명의 문제가 아니지요. 북한의아이들은 키가 작은 것이 운명 때문이 아니라, 밥을 못 먹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 키 작은 아이들이 탈북을 해서 남한에 오면, 하도 잘 먹어서 스무 살이 넘어서도 키가 자란다고하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운명이 바뀐 것이지요. 뭘로요?밥 먹는 걸로요. 신자가 운명론에 물들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자기가 밥 안 먹어서 면역력이 없어지고 감기 몸살이 들어놓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럽니다.기독교 신자들의 가장 큰 위험은 이겁니다. 운명이라는 단어 대신에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을 갖다 넣습니다. 그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감기 끼가 있다고 하니까 장로님 한 분이본인은 비타민 씨를 잘 챙겨 드신다면서 그랬더니 연세가 드셔도 감기 한번 안 걸리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게도그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평소보다 더 잘 챙겨먹고 있습니다. 감기 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니지요. 자기 신경써서 몸 관리 하면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을 보세요. 33절에 바울은 배에 탄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14일 동안 그들이 굶었는데, 그 이유가 음식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열나흘 동안 마음을 졸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그러니까 배가 파선할 까봐 그래서 목숨을 잃을 까봐 마음을 졸여서 하나도 못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34, “음식 먹기를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얼마나 당연한 얘기를말하는 것입니까? 이러다 죽으니 살려면 뭐라도 먹으라 이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신앙과 위배되는 행동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는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약속을 주셨습니다. 276명 중 한 명도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뭐라고 권면합니까? “살려면 먹어라.”사람이2주 굶고 혹 살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그 이상 굶으면 한 명씩 두 명씩 픽픽 쓰러질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 됩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한 명도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주권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276명의 사람들에게 신비한 힘을 주셔서 음식을먹지 않아도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또한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사람이 먹지 않아도 살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35절에 보세요. “하나님께 감사기도 하고 빵을 떼어 먹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게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주권과 전혀 배치되거나 충동하지 않으면서도,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주권은 자유의지에 힘을 실어 줍니다.

    자 이제 배에 탄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나서 또 한일이뭘까요? 38, 배부르게 먹고 음식을 바다에 버리고 배를 가볍게 했다라고기록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하나님께서 다 살게 해 줄 것이라는 약속 하나 때문에 자신들이 해야 할 도리를다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짜내야하는 지혜를 다 짜내고, 행해야 할 행동을 다 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그들은 배가 풍랑을 만나면 당연히 배를 가볍게 해야 한다는 일반 법칙을 자유의지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믿지 못하는 불신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했고, 성경은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1/27/2016 6:15: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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