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영적전쟁 ⑦: 영광과 감사의 의무(롬1:21-25, 2016년11월20일 주일)

영적전쟁 ⑦: 영광과 감사의 의무(1:21-25, 20161120일 주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사람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나타나는 2가지 싸인이 있는데,“영광과 감사입니다. 그런데 영광과 감사가실종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본문이 말합니다. 사실 이 본문의 콘텍스트는 1차적으로 불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2차적으로보면 신자들에게 또한 던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과 감사가 사라진이유가 뭘까요? 먼저 시대사조라는 관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쉽게 말하자면, “잣대가 사라진것입니다. 절대기준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진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이 말씀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정확하게묘사해 주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진리가 아닌것들이 놓여져서 진리 행세를 합니다. 이 진리를 변개시켜버린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조는 첫째,개인주의입니다.

    개인주의에게는 라는 존재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합니다. 개인주의는성경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인생관은나 중심주의인생관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 안에 이 포스트모더니즘 사조 중 하나인 개인주의가들어오면 위험합니다. 개인주의 신자에게는 교회도 하나님도 자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말씀도 입맛에 맞아야 하고, 심지어 교회에서 공짜로 주는 밥도 구미에 맞아야 합니다.하나님은 매주일 꼬박꼬박 예배하러 나오는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복이라도 주어야지, 혹 고난이 닥치기라도 하면, “하나님 맞으시냐?”고 따집니다.나의 감정과 나의 기분이 너무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편해야 합니다.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내가 만족스러워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니 교회는 말 할 것도 없이 자기를위해서 존재하는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자기 중심적 신자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자기 부인이라고 말씀합니다.자기부인의 뜻이 뭘까? 하고 궁금합니다. 공동번역성경과 현대인의성경은 자기를 버리고라고 번역했습니다.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기준으로삼는 것은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체계를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번시간에 중생에 대해서 살피면서, 이미 신자의 마음은 갈아엎어졌고, 새마음으로 모든 가치체계의 기준이 바뀌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신자의 유일한 기준은 성경입니다.그래서 성경을 카논이라고 부릅니다.카논은 척도, 표준, 잣대라는 뜻입니다.성경이 인생의 절대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절대기준은 오직 하나이지 여러 개 일 수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1인치를 검지손가락의 첫마디 길이라고 규정한다면1인치는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신자가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을 버린다는 것이며, 오직 인생의 기준인성경만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절대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자신에게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나의 인생의 주인은 누군인가? 나인가? 아니면하나님인가?” 당연히 신자들은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대답할것입니다. 그러나 정답 말고 솔직히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짚어 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런 질문을 반드시 자신에게 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이순간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돌리고 있는가?”달리 말하면, 소교리문답 제1문의 질문, “인생의 제일 된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을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는 이 말씀이정말 나의 삶에 지금 현재 적용되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정말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순간순간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의것이 아니며, 정말 하나님 것인데 그분을 즐거워하고 있는가? 질문해보셔야 합니다.

    이 질문에도 대답하기가 곤란하면 다음의 질문을 해 봐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6:24에서 말씀하신,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누가 주인이냐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까? 재물입니까? 여기서 재물은 성경원어에서 맘몬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당연히 맘몬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한번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보면서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주일 감사헌금 봉투를 받으시면서약간의 고민을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만약하게 되면 얼마를 써넣어야 할지. 여러분 우리는 매 주일마다 봉헌의 고백과 봉헌송을 합니다.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여기 말씀에서 정한대로억지로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이 정해놓은 계획대로 하면 그것은 억지로 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이 말씀을 더 분명히 하는 말씀이 고후9:5에 나옵니다.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이 말씀에도 약속, 미리 준비라는 말과 억지가 아니니라는 말씀을 대비시킵니다.성경이 제시하는, 연보가 억지가 되지 않는 방법은,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어떤 타이밍을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과 또는 부부간에, 가족간에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입니다. 교회가 선교사에게 후원 약속이 기관과 개인의 약속처럼보이지만, 사실은 이것은 하나님과 약속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동안 19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신혼 초부터 매년 초마다 해 온 것이 있습니다. 아내와 그 해에쓸 재정에 대한 계획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떻게 어떤 규모로 헌금 할 것인지 상세하게 의논합니다.십일조, 선교헌금, 감사헌금,주일연보, 그리고 아이들 헌금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러고 나면 우리의 형편이 앞으로 어찌 될지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고백이지요.이런 약속은 하나님께 백지수표를 남발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돌려받을 생각을 가지고,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냥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봉헌송을 부를 때,다윗의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대상29:14,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이것이우리의 고백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뭡니까? 나의 가진 것을 보게 됩니다. 나의 환경, 나의 여건을보면 힘이 듭니다. 이것이 상대주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의 두번째 현상입니다. 절대가치가 사라진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절대기준이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절대가치가 얼마든지상대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하는 사상입니다. 정말 위험한 사상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절대성이라는 말씀이 뭘까요?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의 명령은 변함없이 항상 유효하다는뜻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감사할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을 해서 영광과감사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판단을 접어두고 항상 그냥 무조건적으로 영광과 감사를 돌려야 되는 것을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것은,자신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신자의 의무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주일학교를 시골에서 다녔더랬는데,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매년 강대상 앞쪽에 추수곡식으로 장식을했습니다. 그 당시 시골교회에서 추수감사주일 장식을 하면, 100퍼센트자기 집에서 키운 농산물을 각자 가지고 와서 놓습니다. 호박, 고구마,무우, 당근, 양파, , 옥수수, 쌀볏단 농수산물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거의모든 것들이 놓였습니다. 한해 동안 풍년을 주신 하나님께 그런 식으로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전국적으로 흉년이 왔습니다. 그 해에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주일 장식을 해야 하는데,집집마다 고민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부족한데 교회장식까지 하는 것도 그렇고,또 흉년인데 무슨 이게 감사할 일이냐?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나는 어머니께서 텃밭에서 키우신 무우를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무우를 주시면서,“태길아 올해는 흉년이니 아마도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올게 별로 없을거야, 너라도무우를 하나 더 가져 가거라.”그래서 무우 두 개를 들고 교회를 가면서 생각하길 이번에 추수감사장식은 초라하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강대상에 주일학생들이 가져온 곡식들을 하나 하나씩 올려 놓는데,다들 하나만 가져오면 되는 것을 2-3개씩 들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해에는 대한민국 최악의 흉년이라고 뉴스에서 크게 보도되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교회가 감사의 분위기로 풍년을 이루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세상의 흉년이 신자의 영성까지 흉년으로 만들 수는없는 것이지요.

    상대주의가 뭡니까? 내가 감사할 조건이 풍성하면 감사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드리는 것이 내 손에 쥐어진 풍성함에 비례하거나 반비례하게 된다면,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성경이 말씀하는 영광과 감사는 내가 무엇을 가졌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현재 나의 상태가 영광과 감사를 돌릴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돌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영광과 감사는 물질적 상대주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절대주의에 따른다라는것입니다. 신자는 나에게 뭔가 물질의 많고 적음이나, 세상적 기준의행복의 기준이 많이 채워졌기 때문에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이유는, 나의 존재가 하나님 때문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광과 감사의 절대성입니다.

    나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읽으면서 한가지 명제에 눈이고정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소제목의글이 있는데, 이것의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좋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명제의 의미가 뭘까요? 하나님의 가장 좋은 방식과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서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뭡니까? 하나님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항상 선하시다라는 믿음 아닙니까? 여러분 항상 선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릴 수 있는것이 뭘까요? 나는 믿음의 의연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광이라는 것이 상을 받은 사람이 무슨 마이크에 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라고 하는 것이면 되는 것입니까? 사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축소되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라는 사실에 대한 의연함입니다. “의연함이 뭡니까? 우리의 시선이 항상 하나님께로 향하여 있는 것입니다.

    나는 작년까지 15년된 낡은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나는 그 차를 가지고 아이 학교에 픽업을 갈 때 혹 아빠의낡은 차 때문에 챙피해 하지나 않을까 하는 맘이 듭니다. 그런데, 아빠차를보면 아빠하고 달려오는 것을 보면 너무 고맙습니다. 이게 의연함이죠. 아빠가 뭔가 좋은 차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아빠가 되어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전히그런 조건이 아빠를 아빠로 생각지 못할 이유가 못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면 그것이 의연함 아닙니까? 그게 영광과 감사이지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은 항상 가장 좋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으시는것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이 우리보다우리를 더 많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런 분에게 어떤 형편과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의 시선을 떼지 않고, 의연함으로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영광과 감사이지요.

 

11/20/2016 11:21: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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