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영적전쟁 ⑥: 마귀의 공격점, 마음(엡4:26-27, 2016년11월23일 주일)

영적전쟁 ⑥ : 마귀의 공격점, 마음(4:26-27, 20161123일 주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26). 성경은 화를내는 것과 죄 짓는 것을 구분하여 말씀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니라,결국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죄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1급살인은 자신의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4장이이것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동생의 제물만 받고, 자신의 제물을 받지아니한데 대해서,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4:5)라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특이한 말씀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4:6-7, 새번역).하나님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화와 죄짓는 것의 메커니즘이 잘 나타납니다. 가인이 화를 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해 주신 말씀은,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과가인 사이에 이어지는 대화의 주제가 뭡니까? “분냄과 죄의 지배성의관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로 이것을 밝힙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26)라고 명령합니다.그 다음 구절에 이렇게 이어집니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이 두 구절을 잘 못 읽게 되면, “, 마귀는 주로해가 지고 나면 활동하는구나라고 해석해 버립니다. 마귀는 영화에 나오는드라큘라 같이 밤에만 활동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분냄과 죄의지배성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마귀가 재빠르게 우리의 화내는것을 내버려두지 않고 이용하니, 그러기 전에 빨리 그 분노를 털어버리라는 차원의 말씀입니다.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화가 날 때, “나는나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어, 나를 내 버려둬라고 하면서 자신의 화를계속해서 삭히지 않고,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결국 마귀에게공격을 허락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저는 심리학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기독교 심리학자인 아치볼드하트는 그의 책 [숨겨진 감정의 회복]에서 분노의 원인을4가지로 말합니다. 1)좌절, 2)상처,3)조건반응, 4)본능적 보호. 첫째,좌절: 뭔가를 간절히 원했는데 그것을 얻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욕구불만이 해소가 되지 않아 나타나는 욕구의 좌절감이지요. 우리 집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한 개 있었습니다. 제 딸아이가 아침에 학교를 가면서, 방과후에 이것을먹겠다고 하면서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선 학교를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깜빡 잊고 낮에 먹어버렸습니다.학교를 다녀온 아이는 집을 들어서자 마자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이없습니다. 아이는 화를 굉장히 많이 냈습니다. 욕구가 좌절 당한 것이지요.그래서 화로 표출된 것입니다.

    둘째, 상처:살아오면서 받은 자기만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가, 자신이 싫어하는 분위기를 경험하거나말을 들을 경우 과도하게 분노하는 행동입니다. 대게 상처로 인한 분노는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말투나 빈정거리거나,비평하는 말로 나타납니다.

    셋째, 조건반응:어릴 때 학습된 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어릴 때 부모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때를 쓰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원하는 것을 받아낸 경험이 많을수록,어른이 되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 화를 냅니다. 예를 들면, 회의 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않을 때, 얼굴을 붉히거나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신경이 쓰일 정도의 어조나 감정이 섞인 말을 한다든지,아니면 전혀 회의의 흐름에는 맞지 않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넷째, 본능적 보호:이것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입니다.예를 들면, 평소에는 신사적인 사람이, 자신의가족이 해를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상황을 볼 때, 분노를 이용해서 자신을 보호합니다.

    이런 4가지 정도의심리학자가 말하는 분노의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인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상담학 등을 잘 이용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적인접근은 필요하긴 하지만, 신자의 분노의 문제를 모두 해결 해 줄 수 있는 완전한 도구는 아닙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신자의 분노의 근원지가 어디이며, 왜 이것이 통제하기가 쉽지 않은문제인지를 살펴봅시다.

    먼저 분노가 발휘되는 근원은 사람의 마음입니다.마음은 사람의 의지가 발휘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곧 의지입니다.신자는 중생한 사람입니다. 중생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뭘까요? 중생한 사람은 마음이 새로워졌다는 것입니다. 36: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마음을 줄 것이며

    중생, 거듭난 신자에게는반드시 나타나는 4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비참함을 보는 것입니다. 둘째, 나는 도무지 이비참함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결국 회개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의로만 나는 의로워지고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넷째,구원받은 자로서 이제 흔들림 없는 구원의 풍성함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중생한 사람에게 반드시 부어주시는 마음은 새마음이며, 그것은 굳은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이라고말씀합니다. 중생은 법적 선포가 아닙니다. 칭의가 법적 선포이지요.완전한 의인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신자를 의롭게 받아들이는 법적인 인정입니다.그러나 중생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마음을 부여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자들이 너무 많이 놓치는 것이 뭐냐 하면, “칭의구원을 강조하다보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진 법적인 하나님의 선언이 있었고, 지금은 성화의 단계를 살아가기 때문에 나는 어차피현재 형편없는 사람이지만, 결국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고, 또점차 점차 느리긴 하지만 성화되어져 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구원논리적순서로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 다음에 바로 따라오는 것은, 가장 먼저중생입니다.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회심입니다.중생하지 않은 사람에게 회심사건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상의 순서입니다. 그러고 난다음 따라오는 것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며, 그러고 난 다음에야 칭의가 따라옵니다. 물론 시간 상의 순서는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의 논리적 순서를 따지자면, 중생이 칭의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무선 말입니까? 거듭나지않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법적 선언을 하실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하나님의 법적 선언이 있기전에 하나님은 이미 신자의 마음을 뒤짚어 놓고, 새로운 마음을 부여하신 다음에 하신다는 것입니다.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은 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실 때는 이미, 거듭난 사람으로 그 마음 밭을 변화시킨 다음에 의롭다고 칭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실제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중생, 거듭났다는말은 문자 그대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신자가 새로 태어났다는 말은 마음의 상태가 새롭게 되었다는 말입니다.혹시 이 말에 동의가 안되거나 아직 와 닿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거듭나면 가장 먼저 마음속에 나타나는 증거가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회개가 나옵니다.신자들의 착각이 뭔지 아십니까? 회개가 있고 나면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그러나 논리적인 순서는 반대입니다. 거듭나야만 회개가 나옵니다. 11:17-18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환상을 보고 난 후 예루살렘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여기서 분명히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믿을 때 주신 선물, 즉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밝힙니다. 회개를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중생을 이미 선물로 받았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나야할 모습은 회개라는 것입니다.

    회개가 내가 죄를 뉘우치고 하는 것 같지만,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선물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생명에 이르게 하는 진정한 회개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내 속에 새롭게 되어진 의지로 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가장 큰 표지가 뭘까요?자신의 의지가 새롭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거듭났다고 하면서20, 30년이 지나도록 여러분의 의지가 새롭게 된 표지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여러분은 정말 회개하셔야 합니다. 왜요? 신자는거듭난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새롭게 된 의지가 날로 날로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요? 중생 다음에 일어나는 구원의 논리적 순서는 회심이거든요. 회심이 뭡니까? 돌아서는 것 아닙니까? 이전에는 동쪽으로가고 있었다면, 이제 회심하고 완전히 반대의 길인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회심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돌아서고 나서도 그 마음이 많이 요동치고, 믿음이 자라는 것이 더딥니다.왜요? 이제 막 돌아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거듭난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왜요?마음속에 항체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던 악의 성향은 점차 죽어지고,점차 의의 성향이 넘쳐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거듭난 신자의 특징이 뭐라고 합니까? 마음속에 새로운 항체가 생겼는데, 그것은 성령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육체 속에 남아 있는 옛 습성인 육체의 소욕과 계속 치열하게 대항하고 싸운다고 말씀합니다. 쉽게 말하면, “악을 싫어하는 성향이 의지 안에 심기어져서 그 의지가 매일매일 더 크고 강한항체로 자라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중생한 사람의 표지입니다.

    신자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거듭나게 되면, 지금은 아니지만 점차 언젠가는 나의 의지가 새로워질거야.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 한 가지 틀린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뭘까요? “지금은 아니지만입니다. 여러분 제가 저번 시간에, Already, but not yet이라는 말을 하면서,구원의 즉각성과 점진성을 말씀드렸습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십자가의보혈의 능력이 효력있게 이미 발효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이미 받았습니다.여러분 이것이 구원의 즉각성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즉각성을 무슨 구원열차에 올라타는티켓을 받았다는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틀렸습니다. 아닙니다. 구원의 즉각성은티켓을 받았다는 개념이 아니라, 3:5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는개념입니다. 중생을 씻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미 우리의 마음의 더러움과악의 성향들이 한번 온전히 씻김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생의 표로 물로 세례를 받지 않습니까?이것은 일어나지 않은 추상적인 관념으로 거듭났다거나 씻음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마음속의 의지를 담당하는 부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는 표현을 이어서 쓰고 있습니다.

    신자가 똑 같이 자주 분노합니다. 만약 정말 신자라면 자신의 분노하는 모습에 대해서 정말 비참한 마음을 가져야 만 합니다. 왜요?성령은 생명과 평안의 마음을 주시지 계속적으로 반복된 분노에 차게 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반복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성령께 내어주지 않고, 계속 마귀에게 내어주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여러분 정말 신자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을 마귀에게 내어주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정말 신자입니까?그러면 여러분 속에는 마귀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의 근원이신, 성령님이 계시는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성령님의 활동이 나타나지 않고, 마귀의 활동만거침없이 나타나서, 여러분의 마음 밭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분노하고하나님께 예배하거나 기도할 수 없는 그야말로 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마음의 상태가 되어버리고, 결국 모든인간관계까지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여러분의 의지가 성령님께로 향하지 않고,마귀가 좋아하는 육신의 소욕에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참 신자는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양심에서 울려퍼지는 말씀의 운동력있는 외침에 민감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다 거스르고,절대 내어주면 안 되는 여러분의 마음 밭을 마귀가 마음대로 노략질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범죄입니다. 결국 여러분의 마음은 산산 조각이 나고 계속 찢겨진 상태로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마귀의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시로 분노하거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자주 내거나, 아니면 교우들에게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또는 마음으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고, 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문제이지, 상대방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화가 난다고 다 화를내고, 쏘아 붙이지는 않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일수록 성령님의울림을 듣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비뚤어진 의지를 성령님께 내려놓고 몇 번이고 항복선언을 합니다.그게 여러분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입니까? 성령 하나님께 항복하고, 순복하는 것이 무슨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는 것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루에 수십 수 백 번이라도 성령님의 부드러운 음성에 항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신자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화 나는 일이 생겨도,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성숙한 신자입니다. 성경에서 더디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딱 2개가 있습니다.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1:19). 여러분이 미성숙한 신자라는것을 스스로 밝히고 싶으시면, 이것을 반대로 하시며 됩니다. “말하기를빨리 하고, 성내기도 빨리 하십시오그러면 나는 참 어린아이와 같고 못난 사람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절제하는 마음입니다.모든 신자가 자신의 분을 다 그때 그때 표하게 되면, 이 땅의 교회는 오래 전에공중분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가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하고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인격이 모나고, 성령의 은혜를무시하고 제 하고 싶은 말이나, 끓어오르는 분노의 말을 그때마다 다 해버렸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이 자리에없을 것입니다. 목사가 하고 싶은 말이 어디 개인적인 원한의 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거의 다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합니다.어떤 때는 이 말을 저 교우에게 할까 말까 한 백번 정도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속으로 기도하면서 몇 번이고 제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김태길,너가 이 말을 저 사람에게 하고 나면, 너의 마음에 조그마한 쾌감이라도 생길 것같은가?”만약 제 마음속에서 0.1퍼센트라도 예스, 그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라는 음성이 들리면,저는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나는 이 말을좀 해야 마음이 후련해 질 것 같아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성령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왜요? 마귀는 그 말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좋은 충고의 말도, 나와 상대방의 마음을 성령님이 붙들고 계시는 상황이 아니면결국 그 말은 관계의 파탄에 이르게 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11/13/2016 11:21: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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