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⑤ : 사탄의 두 얼굴(고후11:14-15, 2016년11월6일 주일)
사탄이 무서운 이유는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성경에서는 “빛의 천사”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시뻘건 찢으진 눈에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탄의본래 모습은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실제로 “빛의 천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화려함을 가졌습니다. 겔28:17에는 사탄의 타락하기 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새번역 성경에서는 “너는 네 미모를 자랑하다가 마음이 교만하여졌고”라고 번역합니다. 성경은 사탄이 본래 천사 중에서도 굉장히 출중한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알려줍니다.그런데 우리는 사탄이 타락하면서 더 못생겨졌으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성경이 말씀하는 사탄의 “미모”라는 표현은 인간 육체의 미모와는 차원이다른 “영적 모양새”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본성적으로 만들어질 때부터 그 어떤 천사들보다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사탄은 본성적으로 탁월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활동할때 사람들은 도무지 이것이 사탄의 모양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하도록 감쪽같이 속인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은 두 가지 본성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타락 하기전의탁월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8:44)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마귀는 어떻게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신자를 넘어뜨릴까요?
은혜의 모조품을 진짜 은혜인 것처럼가장합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가장 감격해 하는 이유가 뭡니까?그저 주어진 선물이라는 데 있습니다. 선물을 받았다는데 너무 너무 신이 나 있습니다.그리고 그 선물을 주신 분이 다시는 절대 도로 빼앗아 가지 않을 것이라는 교육도 너무도 훌륭하게 배워서,그 확신이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믿음이 마치 굳건한 반석이라고믿습니다. 그래서 특히 저를 위시한 장로교 교인들은 “칭의”교리 같은 것은 이론적으로는 시쳇말로 “빠싹합니다.”그러고는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왜요? 나는 아무 공로 없어도 그리스도의 의가나에게 전가되었기에, 내가 뭔가 했다고 큰소리 치면 오히려 교만한 것이고 그런 것은 알미니안주의나 믿는 행위구원이라고철썩 같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옛날 것은 절대 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 받은 은혜의 선물에 신나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경건생활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노력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이것이 사탄의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서 신자들에게 주는 은혜의 모조품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세계를 두 가지 양상으로 가르칩니다. 첫째,구원에 이르는 길이 어디 있는가? 둘째, 구원에이르는 길을 찾고 난 다음의 삶은 어떠한가? 첫째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은 오직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둘째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고 난 후에는 오직 순종의 삶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의 이르는 길은 이미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Already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구원이 있습니다. 이것을 Notyet이라고 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것은구원의 다른 길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빌2:12, “…두렵고 떨림으로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처럼, 구원받은 신자가 성화의 삶을 살아서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순종의 삶으로 가능한 것이지요.
다시 요약하면, Already는 구원의 즉각성입니다. 이것은 단회적이고, 이미 우리에게 임한 구원입니다. 절대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우리의 구원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Not yet, 은 구원의 점진성입니다. 이 구원의 점진성은 순종의 삶을 통해서 완성되어져 갑니다.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신앙과 순종은 하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백번 맞는 말입니다. 본 회퍼는이런 말도 했습니다. “믿음은 오직 순종 속에서만 존재한다. 믿음은결코 순종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은 오직 순종의 행위 속에서만 믿음이다.”
오늘날 사탄이 기독교 신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거짓말이 뭔지 아십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제가 저번 주 설교 시간 내도록 강조한 것이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 서신의 주제이자, 종교개혁의모토입니다. 누가 감히 “오직 믿음”이 사탄의 거짓말이라고 말한단 말입니까? 불경죄죠. 그럼에도불구하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믿음”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구원받고 난 이후의 풍성한 삶은 “행함”으로 나타나야만 합니다.그게 순종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여러 번 강조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 믿음이 있는 자만이 순종하고,순종하는 자만이 믿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선물로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자란 신앙의 터전이 장로교회입니다. 그리고 장성하여서장로교교단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그곳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목회훈련을 받았고, 지금 장로교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게 큰 자랑이자, 소중한 신앙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번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한번 돌아 봅시다. 얼마나 우리가 “오직 은혜””오직 믿음”을 외쳐왔습니까? 그런데 “오직 순종”했습니까? 나는 지금 제 모교교단인 장로교교회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정말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렇게도 외치는 “이신 칭의의 믿음”이 우리에게 순종으로 매일 매일 나타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한번 스스로 해 보자는 것입니다.
일전에 TV에 모 방송인이 자신의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늘어 놓는 프로그램에서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교회 권사님이셨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새벽마다 뭘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라는 찬송을 구성지게 부르면서 만들길래, 아 저 음식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짜 꿀이더랍니다.그래서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교회 권사님씩이나 되서 왜 가짜꿀을 만드세요?”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미안해 할 줄 알았는데, 너무도당당하게 “이놈아 이거라도 않만들었으면 집세는 어떻게 내며, 너그들은어떻게 키웠겠니?”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율법이라는 관점으로 한번 봅시다. 이 권사님은 율법의관점에서 보면 8계명을 범한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 문답 141문에 보면, “제8계명의 요구된 의무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이것에 대한 답의 맨 마지막 줄에 이렇게 기록합니다.“우리 자신의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와 부동산을 구하여,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모든 공정하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분명히 “우리 자신”것과 “다른사람들의 부”를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부는 재물, 안녕, 건강 모든 것을 통칭하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그 권사님은 다른 사람의 건강을 헤치는 가짜꿀을 만들었기 때문에, 8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해 봅시다. 정말 성경은 리스트화 된 계명을 어겼기때문에, 그 사람을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물론 믿음이 있다고말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 보면 성경이 어떤 사람을 믿음이 없다고 말할 때에는 그렇게 말하지않고 더 본질적으로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율법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합니까? “너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형제를 미워할 수 있느냐?”라고 해석하십니다.무슨 말씀입니까? 십계명의 1-4계명까지는하나님을 사랑하라이고, 5-10계명까지는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인데, 너는 그렇게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예배한다고 하면서 1-4계명은 잘 지키면서, 왜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느냐? 너가 정말 이웃을 사랑한다면, 5-10계명도 반드시 지켜야 되지 않느냐?라는 것이지요.
그럼 이제 좀더 본질적으로 들어가 봅시다. 예수님께서 마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염려하지 말라” 그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들에 백합화를 보라길쌈도 아니하고 수고도 아니한다. 내일 구덩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이 먹이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이렇게 하신 다음 이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께서 믿음이 작다고 말씀하실 때 뭐라고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알고 믿는다면, 너희가 어떻게 염려할 수 있느냐? 라는 것이지요.
다시 권사님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만약 권사님 “야 이놈아 이거라도 안 만들었으면, 방세는 어떻게 내고,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겠니?”라고 말할 때, 그 권사님은믿음과 삶을 분리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권사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새벽마다기도했다면, 어떻게 하나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식,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식을 쓰면서까지 살기 위해서 저렇게 애를 쓰셨을까요? 정말 할 수 있는 기술이 하나도 없어서,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어도,하나님을 정말 실제로 믿었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가짜 꿀은 만들지 않고,다른 방법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랬다면 하나님이 정말 선한 직장이나 생계를 허락하셨겠지요?
오늘날 신자의 문제가 뭡니까? 자신은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자신의 삶은 옛방식, 과거의 자기의 방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면서도 순종한다고,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뭡니까? 순종은 옛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그물과 배를 버리는 길이 곧 제자가 되는길이었습니다. 그물을 들고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래서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그는자신 옛날 도구인 그물을 과감히 버려야만 했죠. 베드로에게는 순종이 그물과 배를 버리는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삼위 일체 하나님의 제2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은 제1위격이신 성부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계획에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은 사람의 몸을 입는 것이었습니다.이때 빌2:7,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했습니다. “비어”는 “케노오”라는 헬라어 단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실 때에,하늘의 신적 영광을 포기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습니다. 인간이 되시면서,하늘의 영광을 싸 짊어지고 내려오실 수는 없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왕관도 쓰고,비천한 인간도 되겠다는 것은 본래부터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어”종의 형체로 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고귀하고 찬란한 영광을 그대로 가지면서, 인간의 몸을 입을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빌2: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순종은 곧 자신의 옛 상황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지요. 군대를 입대하면서, 청바지를 입고 훈련 받을 수는 없지요. 그래서 군복을 입지요. 그런데 제대할 때에는 군복을 입고 생활하지 못하죠? 그래서 다시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 입지 않습니까? 믿음의 세계에 입대하면서, 예전의 옷을 그대로 입고 살아가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믿음의 세계에서는 믿음의 법칙을따른 것이 곧 순종이지요.
여러분, 기독교 신앙의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은 두 개중에 하나는 버리고 하나만 취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영광과 현재의 영광을 다 취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즐기던 세상의 일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지금 나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순종은 옛 자리를 떠나고,과감히 옛 습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어제는 어제 시간으로 ‘오늘’이었고,오늘은 내일 시간으로 ‘어제’가 되어 버립니다.여러분이 믿음이 정말 있다면, 믿음이 있기 전과 믿음이 있은 후가 완전히 달라져야하지 않습니까? 어제는 그냥 어제가 되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어제가 오늘이 되어서 여전히 믿음이 없던 시절이 현재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말이 안 되는 믿음을가지고, 믿음이라고 빡빡 우기며 혼자 그걸 은혜라고 믿고, 복음을 이상한싸구려로 바꾸어서 자기식 믿음으로 살아 갑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에 이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안에서 풍성한 삶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모조품은, 풍성한 삶이 없는 그저 천국 가는 구원의 은혜만 믿게 합니다. 그것은 모조품입니다.이 땅의 삶은 지옥 같은데, 죽으면 저 천국 간다구요?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이 하는 짓이지요. 죽어서 천국 백성이면,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죽어서는 천국 백성인데, 이 땅에서는 마귀의 자식처럼 살아가면 그게 어떻게 의의 자녀입니까?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에게 뭐라고 거짓 속삭임을 합니까? “오직 믿음으로 천국가면 됐지 뭐? 이 땅에서는 그냥 적당히 죄지으면서, 적당히 세상 것 즐기면서 살아!”이것은 사탄의 거짓말입니다. 요1서 3장 8-9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사탄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이 복음 안에서 누려야 할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계속 육체의 욕심을 따라 생각하고, 살도록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순종하지못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자는 신자인데, 죽어 있는 신자로 살아가게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것에 대한 아픔이 없습니다. 큰 일입니다.사탄이 신자로 하여금 자신의 비참함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경건하지도 못하고,능력이 없는 신자인 것을 아파하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신의 몸에 악성 종양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감기약 먹으면 낫는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신자가 악성 죄에 걸려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있는데도, 자신의 비참함의 실태를 보지 못하고, 그냥 단순한 신앙의슬럼프로 받아 들이게 합니다. 이러다 나아지겠지, 이러다 나아지겠지.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복음 안에서 누려야 할 순종의 삶이 무엇인지,전혀 알지 못합니다. 매일 매일 불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수치스럽게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모르고,약간의 양심의 가책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온데 간데 없고,종교생활만 유지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자의 삶이 아닙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 요, 신자는 가슴이 아파야 합니다.하루 중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고, 십자가를 수치스럽게 하는 삶을 살았다면,가슴이 저리도록 아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상에 누워서 눈물을 적시면서 회개하지않으면,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반복된 불순종의 삶을 살면서도, 편히 꿀잠을 자고, 자신을 하나님의자녀로 생각하는 뻔뻔함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각은요 죄를 지으면 당장 너무 괴로워서그것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내 맘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계속 불순종의 길로 가게 됩니다.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님이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갈5:16-17,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이라…”
여러분이 살길은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순간 순간 그분에게 붙어 있는것입니다. 그것 만이 살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