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영적전쟁 ④: 칭의 구원과 마귀의 계략(롬1:17, 눅8:5, 11-12, 2016년10월30일)

영적전쟁 ④: 칭의 구원과 마귀의 계략(1:17, 8:5, 11-12, 20161030)

 

    내일 1031일은 종교개혁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99년전 로마 카톨릭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95개조로 된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을 반박하는 글을 써 붙였는데, 그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95개조 반박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면죄부라는 단어입니다. ‘면죄증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요. 당시에 타락한 교회인 로마 카톨릭에서는 교황 자신이 사람의 죄를사하는 권한을 가졌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교회당 건축을 위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는데,그 자금 마련을 위해서 면죄부라는 것을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연옥이라고 하는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면서, 아직 죽은 영혼 중에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 중간지대인, 연옥에 있는 영혼이 연보궤안에 돈이 떨어져서 딸랑하고 소리를 내는 동시에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타락한 로마카톨릭교회와 교황이 저지른 가장 큰 죄악 중에 하나는 죄사함에 대한 권세를 자신이 쥐고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면죄부를 사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구원교리를파괴시키는 행위입니다. 말하자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복음의 믿음이 아니라, 교황이 시킨 행위에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인류 최대의 거짓말은,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보장하는 유일한 구원의 길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믿음에는 인간의 행위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이신칭의라고 부르는 것의 근거구절입니다.“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칭의는 두 가지 큰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의로 다 사함 받았다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둘째,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하는 하나님의 법적 선언입니다.

    크리스천들의 고민이 뭡니까?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죄 속에 거하는 자신의 모습을 매일매일보게 되는 비참함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여전히 예전의 습관을 버릴 수 없는 자신을보면 한심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이 맞나?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이 맞나?”라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이런 고민 가운데서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칭의의 개념입니다.

    칭의는 행위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칭의가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실 때, 의롭게할만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안에서 의롭게 되어진 것은,어떤 자격을 갖추어서 합격 조건을 구비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이대학을 입학할 때, 시험을 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고등학교GPA 2.0도 안됩니다. 성적표에 온통반이 D, 반은 F입니다.그러면 여러분은 UCLA같은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왜요? 그곳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고 그 점수로 판단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입학 자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UH라는 대학이 있습니다. 그곳은 내신성적이 perfectscore가 아니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라도 B가 있으면 절대 못 들어갑니다. 그리고 SAT도 만점을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application과 함께 성적표를제출하면, 성적표를 보지 않고 그냥 뽑고 싶은 사람을 뽑습니다. 그리고합격시키고 싶은 사람의 성적표에  “Perfect score”라는 스탬프를 꽝하고 찍어줍니다. 여러분 이쯤 되면 UH라는 곳이 어딘지 궁금해 질 것입니다. University of Heaven입니다.천국은 perfect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점도 흠도 없는 오직 의인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이 세상에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갖춘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3:10). 이것이 우리의영적 성적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신비로운 계획을 하나 세우십니다.“칭의라는 계획입니다. 아무도 자격이 안되지만,테스트를 치르지 않고, 그냥 하나님께서 임의로 택한 사람들에게 자격을 부여하시겠다는계획입니다. 이것이 칭의의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우리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으셨습니다.그리고 이 칭의는 믿음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나타내십니다.

    의인이 되는 길이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이것을 두고 오늘 본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신비롭고 경이로운 법칙이 있을까요? 세상 사람 중에 아무도 의인의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어떤 결과를 초래합니까? 의인만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은 텅텅비게 됩니다. 어떤 식당이 있습니다. 그 식당의 음식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한번 음식을 먹으면,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식당을 출입할 수있는 고객의 요건을 100일동안 금식한 사람만 된다고 공시합니다. 그렇게되면 그 식당에 들어갈 수 있는 손님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100일동안 굶고 살 사람이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식당은 텅텅 비겠지요. 이 식당 주인은얼마나 대책 없고 무모합니까? 정말 그 식당에서 음식을 한 번 먹어 보고 싶은데, 아무도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에 다들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려면 죄가 티끌만큼도 없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공시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텅텅비는게 불 보듯 뻔합니다.이런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얼마나 무모하고 대책 없는 분입니까? 그렇다고 흠이있는 죄인을 들여보내자니 천국이 죄인이 득실대는 지옥이 될 것 뻔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미 천국이 아니라지옥이지요. 딜레마입니다.

        사람이 구원에 대해 공로가 조금도 없다는 말을 두고 성경은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는 사람의 공로가 침범할 수 없습니다. 은혜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한번 수여되면, 빼앗아 가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수여하시고 나서, 나중에 보니 신자가 형편이 없는 것입니다. 계속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거두어 가 버리신다면 어찌 될까요? 그러면 기독교 교리와 성경의가르침은 엉망 진창이 됩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나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나는 구원의 자격을 믿음으로 얻은 것입니다. 애당초 나에게는 의인의 자격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위대한 것입니다.내가 질 수 없었던 십자가를 그리스도께서 대신 지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십자가를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진 것으로 간주 받은 것입니다. 내가 죄값을 치르지 않았지만,대신 죄값을 치르신 그리스도 때문에 이제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는 값을 다 정산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위대합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정산할 어떤 능력도 나에겐 존재하지않았습니다. 그저 주어졌지요. 그래서 은혜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하나님께서 내가 못난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그 은혜를 거두어 가신다면, ‘은혜가 싸구려가 되어버립니다. 왜요? 은혜의 위대함은 내가 자격이 없음에도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격을 운운하며,다시 그 은혜를 거두어 가버리면 그것은 반쪽 짜리 은혜이지요.

    요즘 신학계에서는 새관점 학파라고 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그리고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학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칭의에 대해서 다시새롭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칭의를 상실할수도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구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신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의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형편없이 살아가면 구원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여러분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런 가르침에 현혹되지 마십시오.한번 주어진 구원은 절대 빼앗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칭의는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처음부터 개인의 공로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한번 얻은 구원은 절대 빼앗기지 않습니다.이것은 마귀도 절대로 넘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의 구원의 은혜를 빼앗아 갈 수 없을지라도, 불신자가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그 마음에서 복음의 말씀을 빼앗아 가는 계략을 쉴틈없이 꾸밉니다.8장 본문을 보세요. 어떤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더러는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밟히기도 하고, 새가 그 씨를 먹어버립니다.(5). 11절에서는 이씨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비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씨가 길가에 뿌려지는 것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긴 했지만, 마귀가 믿고 구원받지 못하도록 그 말씀을 빼앗아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신자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까요?복음의 씨앗은 옥토에서만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마귀가 절대로 빼앗아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하면 좋은 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전혀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너희가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여러분이 농부라면, 그 소중한 씨를 길가나, 바위 위에, 또는 가시떨기 속에 뿌리겠습니까? 나는 어릴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그렇게 성의 없이 씨를 뿌리는 농부를 본적이 없습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심기 전에 반드시 하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거름을 줍니다.그러고 나면 소를 앞세워서 쟁기를 끌게 해서 밭을 갈아 엎습니다. 그러면 땅에 거름이잘 스며듭니다. 그러고 나면 한 두주가 지나면 그 땅은 영양분이 골고루 스며든 옥토, 그야말로 좋은 땅이 됩니다. 그리고 씨 뿌리기(파종)를 합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농부가 자신이거름 주고, 좋은 땅으로 만든 곳에 씨를 뿌리지, 그것을 성의 없이,아무 곳이나 뿌릴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는 누구를 농부라고 하나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하나님 아버지께서 농부라고 말씀하십니다.하나님이 농부이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땅에 거름을 주고, 땅을 갈아 엎어서 좋은 땅을 만들고 난 다음에야 씨를 뿌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땅이되는 것은 나의 노력이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면 무조건 식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누가 우리 마음을 갈아엎고 역사하신다고 말씀합니까? 누가 우리 마음을 좋은 땅으로 만드시는 주체인가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자녀가 되었다는 말은, 우리는 이미 좋은 땅이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밭은 우리가 스스로 기경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하신다는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원은 마치 농부가 처음부터 밭을 만들고,거름주어, 좋은 땅으로 만들어, 씨를 뿌리고,자라나게 하고, 그 열매 또한 농부가 추수하듯이, 밭은 아무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밭이 아무리 처음에 형편없는 땅, 쓸모 없는 땅, 남들이 다 버리는 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그 땅을 갈아 엎으시고 기경하시기만 하면 쓸모 있는 땅, 씨앗이 자라나는 땅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저와 여러분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자라나기 위한 땅이 되기 위해서 한 것이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관한 한 저와 여러분은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칭의, 즉 우리의 의는 그저 주어진 것입니다. 그 말은 한번 씨가 심겨져서 자라나고 있는 식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끝까지 수확하신다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것 마저도 농부책임이지요. 고전3:6, “나는(바울)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여러분, 지금도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공격할 때, 이와 같은 의심을 심어줍니다. “너가 그렇게 사는데도 구원받은 사람이냐? 너 그렇게 살다가는 하나님이 구원을 취소하실 거야,너 그러다가 끝에 가서 지옥 간다?”라는 의심을 계속 주입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심어 놓은 복음의 씨앗을 스스로 망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끝까지 그것을 자라게하시고, 결국 열매를 맺게 하시는 책임 있는 농부십니다. 어떻게 열매맺게 하실까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구원의 열매는 그리스도안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런 구원의 열매도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안에서만 가능합니다

11/13/2016 10:40:00 PM

There is no comment yet...
의견 등록을 하시려면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