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 속의 보배(고후4:7, 2016년9월25일)
만약 여러분에게 300,000만불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가 생겼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어디에 담아 두겠습니까?생각할 것 도 없이, 딸려온 멋진 가죽으로 된 케이스에 반지를 넣고,그것도 불안해서 튼튼한 금고에 넣어 놓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 일반적인 행동방식,귀한 것일수록 귀한 것에 담아 둔다라는 사고를 깨트리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보물을 좋은케이스에 담지 않고, 그저 질그릇에 담아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럼 질그릇이뭔가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2,000년 전 사도바울이 살 던 시대의 질그릇은 그야말로 별 볼품 없는흙으로 빚은 그릇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오늘날 한국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추장 담는조그마한 사기종지 보다 훨씬 투박하고, 빛도 나지 않는 그릇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값싸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릇에, 보물을 담아 둔다고 말합니다.
그럼 이제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그 질그릇은 무엇을 가리키며, 보배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질그릇은 나약하고도 지극히 평범한 신자 한 사람을 말합니다.그리고 보배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약하디 약한 신자 안에 들어오셨다는것입니다.
그럼 또 한번 더 궁금한 질문을 해 보게 됩니다.그 보배의 주인은 왜 이토록 어울리지도 않는 질그릇에 그것을 담아 두었는가? 입니다.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복음의 능력은 누가 그것을 가졌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그 자체로서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악어가죽으로 만든 케이스에 담겼기때문에 빛나는 것이 아니라, 본래 빛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신자의 상태와 무관하게 능력 있습니다.그런데 악어가죽케이스가 다이아몬드에게 그럽니다. “그래도 나 같은 명품 속에 담아두니까, 다이아몬드 너가 빛이 나는 거야.”착각이죠.
오늘날 신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불신앙 중에 하나는,복음의 능력을 그 담는 그릇에 기준을 둔다는 데 있습니다. 그릇이 튼튼하고 좋으면복음의 능력이 더 많이 나타나고, 그릇이 보잘것없으면 능력이 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오히려 성경은 그 반대로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1: 27).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천재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을 택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지 않고, 오히려 평범하거나 그 이하인 사람들을 택해서 복음을 나타내십니다.그 이유를 고전1: 29에서 설명합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구원하시는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께있으며, 그것을 전하는 자에게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큰 위로입니다.
오늘 우리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직분자를 뽑게 됩니다.제 맘속에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첫째, 직분자를 세우기에 교회가 준비가 덜 됐다라는 측면과, 둘째, 그럼에도 직분자는 지금 세워져야 한다는 측면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여러 번 물었습니다.“과연 직분이 복음을 받은 지 오래 되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또한 교회가 시간적으로오랫동안 준비되었다고 줄 수 있는 것인가?” 제가 내린 결론은 “아니오”입니다.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행6장에는 기독교역사 최초의 직분자 7명을 세웁니다. 이들은 초대교회가 탄생한지 몇달이 되지 않았을 때,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인류 최초의 기독교 교회가탄생한지 몇 달이 되지 않은 시기에 직분자를 세웠다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에 입문한지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일곱 명의 직분자를 세웠던 이 시기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10일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현현하시고 난 후 몇 달 불과 지나지도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기독교 교회의 목회자였던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도들도, 예수님과 다녔던 시기를다 합쳐도 4년이 채 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예루살렘교회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약 5,000명이 넘는 정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제 세례를 받은 지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그렇다면 일곱명의 직분자들도 분명히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예수님을 영접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교회 최초의 직분자가 됩니다.그리고 이것이 성경의 집사직의 시초가 됩니다. 물론 이 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오늘날에적용할 수 없는 특수한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지 이 일곱 일군들의 자격 조건을3가지로 말씀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6:3). ①성령 충만②지혜 충만③칭찬 받는 사람. 이 3가지를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이 세가지 조건이, 그 사람의 신앙경력이나 배경, 집안, 학력, 직업 등 보다 우선한다는 것입니다.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일곱 직분자들의 주 임무는, 구제사역을 진두 지휘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이들이 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 오늘날선교사처럼 감당합니다. 그러나 처음 뽑아야 할 때 상황은, 사도들이구제사업에만 몰두 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이들을 뽑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제사업을 잘 진행할 수 있는특화된 일군을 뽑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돈 계산을 잘하는 세리 출신을 자격 조건으로 하든지, 아니면 장사를 많이 해 본 사람을 뽑아서 공정하게 구제 사업을 진행하고,센스있게 일 처리를 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성경은 그저 세 가지①성령충만②지혜 충만③칭찬 받는 사람, 이라는 자격 조건을 내 건 것은, 교회의 직분자는 세상적인 관점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복음의 능력의우월성은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 초기 시절 이와 관련한 아름다운 이야기가있습니다. 전라북도 김제에 금산교회라는 곳이 있는데, 이 교회는1900년도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 테이트 선교사가 설립한 교회입니다.1907년 어느 날 이제 이 교회가 장로 1명을 뽑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후보가 나왔는데, 조덕삼과 이자익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덕삼과 이자익은 주인과 머슴의 관계였습니다. 조덕삼이라는 사람이 이자익이17살의 어린 나이에 오갈 곳이 없어서, 거두어 주고 집안에 머슴을 살면서 주로말을 돌보는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동시에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같이 신앙생활을 한 교회에서 했고, 세례도 한날 한시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자익은 여전히 조덕삼의 집에서 마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장로 후보에나와서, 투표를 해 보니, 그날 주인은 떨어지고 머슴인 이자익이 장로에당선이 됩니다. 분위기가 싸 해 졌습니다. 테이트 선교사도 어쩔 줄몰랐습니다. 그런데 조덕삼이 일어나서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금산교회성도님들이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은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훨씬 높습니다.그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그러고 나서 3년 후에 조덕삼도 그 교회 장로가 됩니다. 그러다가 조덕삼 장로는 자기집 마부 이자익을 신학공부를해 보라고 권유하고, 학비까지 대 줍니다. 그러고는 이자익 목사가 됩니다.그리고 조덕삼 장로는 그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게 됩니다. 이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질그릇에 보배를 가진 자 만이 할 수 있는 행동 아닙니까? 복음 안에서는 주인도 없고 머슴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오로지 복음의 능력만 있을 뿐입니다.
직분자는 아무나 세워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또한 직분자는 세상 잣대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서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직분자는①성령 충만②지혜 충만③칭찬 받는 사람이어서, 자신은 연약하지만 오직 복음에 대해 신실하고,뜨거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보배이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직분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또한 신자의 이루어야 할 목표도 아닙니다. 이것은 거룩하고 고귀한 하나님 나라의사명을 맡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이것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고귀한 마음을 가진 자라야 합니다.복음에 대한 신실함도 뜨거움도 없고, 성령도 충만하지 않고, 게다가 칭찬 받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 일을 맡으면, 본인도 힘들고 교회도 힘들어집니다.그러나 자신의 세상 신분이나 직업이나, 집안, 신앙의 경력과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이 일을 맡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높아집니다. 오늘 공동의회를 통하여 뽑는 사람이나 뽑히는 사람이나 이 마음으로임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