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약함의 은혜(고후12:1-10, 2016년9월18일 주일)

약함의 은혜(고후12:1-10,2016918일 주일)

 

    고린도후서 12장은사도 바울의 서신 중에 바울의 가장 개인적인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인간미가 느껴지는성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새번역성경, “자랑함이 나에게 이로울 것은없으나…”라고 번역합니다. 바울처럼 논리적이고 현명한 사람이,자신에게 이로울 것도 전혀 없는 자랑을 한다는 의미가 뭘까요? 이것은 바울의 고도로 훈련된 수사기법이라고 봐야 합니다. 말끝에 뭔가 반전을 위한 미끼같은, 수사적 서론이죠.

    바울이 자신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 자랑거리를이렇게 소개합니다.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1).주의 환상과 계시만큼 바울의 사도권을 확증해 주는 것이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서신서를쓸때마다 가장 첫머리에 이렇게 씁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그냥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라고 쓰면 될것을 왜 굳이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된 바울이라고 교회들에게 편지를 썼을까요? 권위의 문제죠. 바울의사도권은 곧 복음의 말씀의 권위와 직결 되는 문제였죠.

    그런데 그 환상과 계시가 자신을 변호하고 나타내는 데는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환상과 계시는, “셋째 하늘에”(2) 간 것이라고 말합니다.셋째 하늘은 4절에서 설명하길, “낙원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편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라고 말씀하셨던 그 낙원입니다. 천국이죠. 그래서 바울이 서신서를 쓸 때마다 첫마디에, “주의 환상과 계시로 셋째 하늘에 다녀온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도된 나 바울은…”이라고 써 놓으면,그것같이 유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게 유익이 못되고,오히려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된 바울은이라고밋밋하게 써버리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관한 오해가 있습니다.나는 특별한 체험을 좀 경험하거나 보여주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병을 좀 낫게 해주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믿음의 사건을보여주려고 하실 때는 병을 낫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생기니까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순서가 그렇습니다. 어느 날 혈루증 걸린 여인이 군중 속에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러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8:48).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믿음이 있고, 그 다음 병이 나은 것입니다.그런데 성경은 그 여인의 믿음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전혀그 배경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만 7,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7번 모두, 그 믿음이 도대체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떻게 해서 생겨 난 것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출처가 없습니다.그냥 뜬끔 없이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말씀해 버립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성경이 밝히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는 이 출처가 없는 듯한 믿음의 실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설명할 때, 바람에 비유합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성령의 바람이 한 사람을 건드리고, 만지시고 그 안에 들어가실 때, 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되는데,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눈치 채지 못할정도로 비밀스럽게 어느 순간 출처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 사용한 단어가, “소리는 들어도입니다. 성경은 줄곧 믿음을 말할 때,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뭘 듣습니까?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유심히 보세요. 바울이 천국에 가보는 그 엄청난 경험을 하고서도 이렇게 기록합니다.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4). 바울은 천국에 가보는경험을 하고서 자랑을 한번 해 보겠다고 하고서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새번역 성경에서 이렇게 번역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바울은 천국까지 가서 어떤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표현 할 수 없는 말이기도하고, 또한 현대인의 성경에서 이렇게 번역합니다. “누구에게도 알려서는안 되는 말을 들었습니다바울이 어떤 내용을 들었는지는 천국에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짐작 해 보건대, 그 내용은 바울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꼭 필요한 유익이 되는 말씀이었을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간직하면서 어떤 시련이 와도 그 말씀으로 끝까지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분명히 그 말씀은 바울을 순교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더 큰 믿음을 더해 주는 말씀이었다고 짐작해 봅니다.그래서 그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달려가노라”(3:14)이라고 고백 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바울의 천국 경험은 이것으로 끝내 버립니다.어떤 것도 눈으로 봤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우리가 밤에 잘 때 꿈을 꾸더라도 생생하게장면 장면을 보지 않습니까? 어떤 꿈은 심지어 칼라로 꾸기도 하고, 소리도 스테레오로 풍성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심지어 꿈에서 본 로또 번호를 아침에 일어나자기억해서 적어놓고 그 번호로 로또를 구입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생생하면 숫자까지 보고 기억할정도일까요? 하물며 바울이 천국에 실제로 이끌려 올라 갔다면 그것이 얼마나 휘황찬란하고 기억에서 평생 지워지지않을 경험이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천국 경험을 자랑한다고 하면서, 고작 알 수 없는 소리만 들었다고 하고는 끝을 내 버립니다. 참 밋밋하기 그지 없습니다.왜 그랬을까요? 믿음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시각과 청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읽지 말고, 듣기만 해라라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체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천국 경험 이야기를 간단하게 마무리하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큰 자랑거리가되겠지만 나는 나의 약한 것만을 자랑하기로 했습니다”(현대인의성경, 5). 이게 제가 초두에 말씀 드렸던, 반전입니다.“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1)로 시작했던, 수사학적 표현의 목적은, 5절의 반전을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결국 자랑하고 싶은 것은 남들이 강하고, 멋지고화려한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것들, 내놓기 꺼려 지는 것들을 오히려 나는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약한 것이 무엇인지 7절에서 소개합니다.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라고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육체에 가시는 몸의 질병이라고 하는해석입니다. 그러나 아주 일부에서는 바울을 반대하는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육신의 질병이라고 믿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이유는,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왜 교만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까?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7)라고 했습니다. 천국에 다녀오는 환상과 계시로부터,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실제로 만났던 사건, 그리고 선교지에서 숱하게 본 환상들,계시들이 바울을 교만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에 가시를 허락하셨다는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계시를 주시는 목적이 뭡니까?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자인 바울에게 육신의 질병을 허락하셨다는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가복음을 전하다고 할 때 크게 4가지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복음을 전하고(preaching), 둘째 복음 전한 곳에 교회를 세우고(churchplanting), 셋째, 교회를 세운 곳에서 복음 가르치고(teaching),넷째 그 가르친 복음을 기록하게(writing) 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다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서 전도사로 봉사할 때, 만나는 선배목사님들께 조언을 구합니다.“목사님, 목회를 잘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답들을 종합해 보면, 3가지로 압축이 되더라고요. 어떤목사님은 기도 많이 해라 그럽니다. 영력이죠. 어떤 목사님은 책을 많이읽어라 그러십니다. 지력이죠. 또 어떤 목사님들은 운동 열심히 해라그럽니다. 체력이지요.

    그런데 어떤 목사님은 제게 그러시더라고요.“책 사 볼 돈으로 맛있는 거 많이 사 먹고 몸 보신 해라물론 그 말에 농담이섞여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목회를 해 보니, 체력이 안되니까, 기도도 안되고, 책도 읽어지지 않더라. 몸이 건강해야 새벽기도도 나가고, 몸이 건강해야 앉아 오랫동안 책도 읽고 설교도 준비하지…”일리가 있는 말씀을 해 주시더라고요.

    사도 바울이 4가지중요한 사명, preaching, church planting, teaching, and writing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체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세번의 전도여행 동안 적어도12,000마일에서 최대 17,000마일을 걷거나 배를 타고 다녔기 때문입니다.그런데 3번의 선교여행 동안 최소 도시를 57군데를 이동했습니다. 이 기간이 대략 10년이 걸립니다.바울이 예수님보다 최소한 5살에서 많게는 9살 늦게 태어났다고 봐 집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최소 27-29살 정도 되었을 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회심 이후 최소12-3년이 지나고 나서야,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한 것으로 보여집니다.그러면 본격적인 도보여행을 시작한 것이 거의 40세 전후가 되었을 때입니다.그리고 그 여행이 거의 50세 전후까지 계속됩니다. 우리는 가히 상상이 됩니다. 이 나이에 이렇게 먼 거리를 다니면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고, 성경 기록도 합니다. 국가대표급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그런데 성경을 보세요. 바울은 서신서에서 두번 이렇게 언급합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딤후1:3).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살전3:10). 그가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하면서,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할 때에는 자신도 그렇게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씩이나 너희는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4:16, 3:17).

    뿐만 아닙니다. 그는 숱한 고생을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장에 보면,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 가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혹자들은 오늘 본문에 육체에 가시 같은 질병을 가지게 된 이유가,고후11장에 기록한 숱한 고생 때문에 골병이 들어서 얻은 것 아니냐?고 합니다.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십사 년 전에”(2)라고 하면서 천국경험의계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고린도후서를 기록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14년 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시기는 바울이 전도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입니다.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이미 육체의 가시를 가진 체, 전도여행을 시작했고, 그 숱한 어려움과 고생을 하면서, preaching,church planting, teaching, writing을 함께 해냈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한가지 사실이 궁금해 집니다.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 위대하고도 소중한 기독교 초대교회를 세우고,역사의 기초를 놓는 중요한 인물이 강철 체력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육체에가시를 주셨을까요?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없애 달라고 세 번 간구했는데, 왜 거절 하셨을까요? 그 답을 9절에서 던져 줍니다.“…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육신의 질병을 그대로 둔 이유는 결국 그리스도의능력이 그에게 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고,바울의 지혜와 언변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말을 잘하고 싶어서 하나님께 여러 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이유는 저의출신이 경상도이기 때문입니다. 발음과 억양이 아무래도 서울 악센트를 쓰는 사람보다는 약점일 수 있습니다.청중에게 때로는 나의 좋지 않은 발음과 억양 때문에 거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습니다. 그래서는 저는 무수히 제 설교를 듣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한계가 있습니다.그래서 저는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말이라도 청산유수로 좀 잘 해서 하나님의말씀을 더 잘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날 성경을 읽다가 이 기도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말주변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더라고요.오늘 본문 바로 앞장, 고후11:6, “내가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바울은 겸손의 표현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실제로 가진 지식에 비해서 말주변이 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언변이부족했다는 것이 복음 전하는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데 훨씬 더 큰 능력이됩니다. 18장을 보세요. 거기에는바울이 아테네에서 전도를 하는데,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전합니다.그러고 나서 두 부류가 생깁니다. 한 부류는 기롱하였고, 또 한 부류는 바울의 말을 다시 듣고 싶어 했다(18:32)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바울의 부족한 말 주변에도 불구하고, 그 똑똑한 헬라 철학으로 무장한 학파들과 당당히 토론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그런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도를 다시 듣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안에나타나는 내가 약할 때 곧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바울에게 아볼로라는 인물을 붙여 주십니다. 아볼로를 묘사하기를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18:24). 그래서어느날 아볼로가 회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그의 말솜씨에 당해 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의사역에 아볼로를 붙여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려 놓으면, 아볼로가 가서 그 씨앗이 자라도록 뛰어난 언변과 성경지식으로 잘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이렇게 고백하지요.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하나님의 교회는 한 사람의 잘남과 능력으로 세워가지 않습니다.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교만이 나타나고, 그리스도는 없어지고 자기 자신만 남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결국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을 모으시고, 연결시켜서 교회를 세워가게 하십니다.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지요.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서로 도움을 받고, 연결되고, 결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느니라…”(4:15-16).

    복음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되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진행하시며, 그리스도께서끝을 맺으십니다. 사람의 연약함과는 무관하게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사람이구원을 얻고자 노력해서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얻어 낸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리스도께서 다가 오셨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9/18/2016 5:57: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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