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땅에 있는 장막 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고후5:1-10, 2016년9월11일 주일)

땅에 있는 장막 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고후5:1-10,2016911일 주일)

   오늘 본문은 두 집이 있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는 땅에 있는 장막집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The earthly tent 라는 단어와 an eternal house in heaven이라는 단어로 번역합니다. 성경을 단순하게만 읽으면 마치 부동산에서 말하는 두 종류의 집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은유죠사람의 몸과 영혼에 대한 것을 은유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몸과 영혼의 결합으로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칩니다. 몸은 물질이고, 그러나 영혼은 물질이 아닙니다그래서 사진을 찍으면 몸은 찍히지만, 영혼은 찍히지 않습니다. 간혹 사진에 사람의 영혼이 찍혔다고 하면서 인터넷에 올라오는데, 믿지 마십시오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영혼은 물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빛이 피사체에 부딪혀서 굴절되고, 반사되어 찍히는 그런 물리학 안에서 증명 되는 것이아닙니다.


    영혼이 물질이 아니고,형체가 없다 보니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간의 제한을 받지않는 영혼을 그냥 떠 돌아다니게 하시지 않고, 사람의 몸이라는 3차원 공간 속에 거하도록 하셨습니다. 몸의 신비라는 말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신비하고 오묘한 것은 물질인 육체와 비물질인 영혼이 결합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번 몸속에 들어간 영혼은 그 몸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는 절대 떠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몸의 수명이 다했는데도영혼이 그 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는 영혼이 그 몸을 떠납니다. 19:30, “예수께서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영혼은 수명을 다하지 않습니다사람의 신체는 유통기한이 있지만, 영혼은 만료일이 없습니다.

 

    영혼의 만료일이 없다는 것을 신학적인말로 영혼불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물론 고대 헬라 철학자 중에도 영혼의 불멸을 말한 사람이 있긴 했습니다. 플라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영혼불멸을 말했다고 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영혼에 대해서 믿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마도 영혼불멸이라든지 영혼 불멸설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영혼 불멸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오해가 있습니다. “영혼자체는 절대로 죽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졌고절대적 존재가 된다.” 틀린 말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자체적으로 영원한 존재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만약 사람의 영혼이 스스로 영원히 죽지 않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피조물이 아니라, 신이겠지요.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혼을 멸하시지 않기로 작정하시고, 또한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28,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영혼을 용도 폐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을 지으실 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영혼이 한번 만들어진 후에는 선인이나 악인이나 동일하게 그 생명을꺼트리지 않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 본문 1절에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있는 줄 아나니이 구절에서 말하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천국에 가면 우리가 살 집이 있다는 뜻으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천국에는 죽은 영혼이즉시 영광 가운데 살 처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내 아버지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14:2-3)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천국에 있는 신자들의 도성에 지으진 멋진 맨션이나 하우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입게 될 영원한 부활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다시 새로운 부활의 몸이 주어지는데 그 몸은 이제 더 이상 수명이 다하지 않는 온전한 몸이라는 뜻에서 영원한 집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영원한 몸은 언제 받게 됩니까예수님의 재림 때 새로 덧입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 37문에 보면, “신자가 죽을 때 그리스도게 받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신자가 죽을 때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중에 들어가며, 몸은 계속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부활 때까지 무덤 속에서 쉬게 됩니다.” 몸과 영혼은 결합 했다가, 육신이 죽으면서 다시 분리 됩니다. 그래서 몸과 영혼은 각각의 상태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다시 재결합을 기다립니다그리고 결국 영혼과 새로운 몸, 영원한 몸으로 새롭게 된 육신과 재결합을 갖게 됩니다그래서 성경은 몸과 영혼의 관계를 3 단계로 정립합니다. 몸과 영혼의 결합, 분리, 재결합. 이처럼 영혼은 죽지 않고 계속 살면서, 새로운 영원한 집인 부활의 몸을 기다립니다.

 

    영혼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의 보존하심으로 계속 산다는 의미는 뭘까요? 첫째, 인생의 목적지가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저 하늘에 있다는 뜻입니다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순교 당하기 직전에 했던기도를 보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7:59)라고 하면서, 성경은 영혼을 받아 주시는 분이 계시며, 돌아갈 곳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인생이 동물과 다른 점은 삶이 이 땅으로서만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우리는 코끼리나 고래와는 목적지가 다릅니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매년300마일을 이동하면서 물과 먹이를 찾습니다. 그렇게 6-70년을 살고 죽습니다. 고래도 6-70년을 살면서 매년1만 마일에서 많게는 2만마일을 이동하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습니다. 사람도 코끼리나 고래처럼 짧게는 6-70, 길게는 8-90년을 살면서 평생 1만 마일 정도를 걷다가 죽습니다. 그리고 땅에 묻힙니다. 그냥 보면 사람이 코끼리나 고래 같이비슷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포유류일 뿐입니다


    인생을 염세적으로 보면 인생은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전도서에서 그렇게 말씀합니다. “결국 사람이나 짐승에게는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이것이 죽으면 저것도 죽는다. 사람과 짐승은 다 같이 호흡하는 동물일 뿐 사람이짐승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사람과 짐승은 다 같은 곳으로 가게 되는 데모두 흙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입증할 수 있겠는가?...죽은 후의 사건을 볼 수 있도록 사람을 다시 살릴 자가 누구인가?”(현대인의성경, 3:19-22). 생물학적으로 보면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이 살다가 똑같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사람의 영이 위로 올라가고또한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몸의 부활을 통해 영혼이 완전하고 영원한 집인 새 육체를 입을 것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려 줍니다.


    둘째, 영혼이 처하게 될 두 가지 종류의 상태가 있다는 뜻입니다하나는 영생이고, 또 하나는 영벌입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46). 성경은 영벌(eternal punishment)과 영생(eternal life)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영혼 불멸이라는 말은 누군가 에게는 행복과 축복이며, 또 다른 누군가 에게는 불행과 저주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말 자체가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차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영혼은 영원토록 즐거움 속에서 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의 영혼은 영원토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곳을 성경은 장소적인 의미로, 천국과 지옥이라고 명시합니다.

 

    ①그럼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영생으로 들어가는 장소입니다. 21:16에서는 이 세상 끝 날에 완성될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거룩한 도성이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데, 그 모양은 장과 광과 고가 같고, 12,000스타디온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정육면체 모양의 도시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 크기가 12,000스타디온입니다. 이 단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떤 학자는 630평방킬로미터라고도 하고, 어떤 학자는 736평방킬로미터의크기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자적으로 그런 크기의 도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에 싸였고,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같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21:11).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이 있고, 거기에는 열두 대문이 있고, 그 열두 대문에는 열 두 천사가 지키고 있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그리고 이 12문은 각각 세 개씩 동서남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21:12-13). 열두 대문은 진주로 되어 있고, 도시의 넓은 거리는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입니다 (21:21).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21:23).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습니다 (21:25). 이 곳에는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습니다 (21:4). 그곳에서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천사들과 같이 됩니다 (22:30). 이 모든 천국에 대한 묘사는 수치적으로 그대로 이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하여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우아하고정결하고, 사랑스럽고, 만족할 만한 최상의 하나님의 영광으로 완성 될 것입니다.

 

    ②지옥은 어떤 곳일까요그곳이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3:12). 그곳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9:48).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도 그곳에서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영원토록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 곳이며(14:10),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곳입니다 (14:11). 또한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곳입니다 (14:11). 그곳은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 (8:12). 또한 불꽃 가운데서 계속 괴로워 하면서 혀에 침이 말라서 물 한 방울 혀에 찍어서라도 목을 축이고 싶을 정도로 꺼지지않는 열기가 가득한 곳입니다 (16:24). 그곳은 마귀도 던져지고,불신자의 영혼도 던져지는 불못(the lake of fire)입니다(20:15).

 

    그런데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존재해서, 서로 왕래 할 수 없습니다 (16:26).이 말은 한 번 들어간 천국과 지옥은 서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하루 24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냥 영원만 존재합니다. 그곳은 죽지 않고 영혼이 영원한 기쁨 속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반대로 영원한 고통 속에 들어가는 것 둘 중 하나만 끝없이 지속됩니다. 성경 어디에도이 내세의 상태가 끝이 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이 현재를 살아가는 신자에게왜 위로입니까? 본문 2절과 4절이 말씀해 줍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같이 읽어 봅시다. “우리는 이 육체의 집에서 탄식하며 하늘의 몸을 입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이 육체의 집에 있는 동안 짐을 진 것처럼 탄식하는 것은 이 몸을 벗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늘의 몸을 입어서 죽을 몸이 영원히 살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탄식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고난과 시련이 너무 힘들어서 신음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어도 여전히 고난과 시련이 있다고 가르칩니다가난이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 떼거리가 없어서 힘들게 하루 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사람이 고린도교회에 있었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천년 같이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견디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실 하나만으로 집안에서 쫓겨나고, 가문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는데, 여전히 시련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수 믿기 전보다 더 훨씬 심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 왔습니다. 이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탄식밖에 없었습니다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신자들에게 편지로 위로하기를, “우리가 이 육체의 집에있는 동안 짐을 진 것처럼 탄식하는 것은 이 몸을 벗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늘의 몸을 입어서 죽을 몸이 영원히 살기 위한 것입니다”(4). 힘들어도 소망이 있는 것은 앞으로 입게 될 하늘의 몸, 영원한 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 보십시다하루에도 여러 번 탄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걱정 거리들이 들이 닥칩니다이틀 전에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여보, 아파트 렌트비가 다음달부터 75불 오른다고 노티스가 왔어요. 너무 하네요. 등골 빠지겠네…”제가 밤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그랬습니다. “그래도 천국에는 렌트비 안받으니 조금만 기다립시다.” 세상사람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위로 아닙니까? 어떻게 남편이 무책임하게 그런 말로 때울 수 있습니까이렇게 말해야겠지요. “여보 내가 더 열심히 벌어 올 테니걱정 마시오그런데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천국가면공짜니 조금만 참읍시다이 말을 했는데, 아내가 한술 더 떠서 이렇게제게 그럽니다. “공짜가 어딨어요? 천국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셔서가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나보다 낫네. 이번 주부터 당신이 설교 하시오그랬습니다. 그러면서 한번 웃고 나니까 서로의 마음속에는 마치 사도 바울의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자족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다음달 75불 렌트비 오르는 것은 더 이상 탄식이 아니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겨져 버린 것이죠.

 

    우리 지체들 가운데는 육신적으로질병 속에 있는 분도 있습니다. 위를 반 가까이 잘라 내신 분도 있고요. 그래서 소화 기능이 떨어져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배에 심어 놓은 튜브를 통해서 음식을 주입해서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저는 매일 그 지체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소화력이 회복되게 해 주세요. 위 기능이 정상으로돌아오게 해 주세요. 입으로 음식물을 씹어 넘길 수 있게 해 주세요.”저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그리 하지 아니하실 지라도그 지체가 실망하거나 낙심치 않을 거라고 또한 믿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그 믿음은 영원한 부활의 몸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믿음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현재의 탄식이 나오는 상황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받게 될 영원하고도 온전한 하늘의 집을 소유할 것을 기대하고 상상합니다. 그래서 견뎌 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5절 말씀을 보세요.“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이어서  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역경 가운데 있을 지라도, 항상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증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힘든 순간 순간마다 이기고 능히 견딜 수 있는 힘은,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탄식이 매일 매일 사람의 입에서 나오게 되지만, 결국 그 탄식은 우리 몸의 새롭게 받을 영원한 집으로 인해서 위로 받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8:23).

 

    성령님이 신자 안에 들어 올 수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보증으로 우리 가운데 성령님이 들어오십니다. 이것이 신자와 불신자와의 차이입니다신자는 몸+영혼+성령님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그러나 불신자는 단지 몸+영혼으로만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큰 차이입니다. 신자의 영혼은 성령님에 의해서 새로운 하늘의 영원한 집즉 새로운 부활의 몸을 앞으로 입게 될 것이라는 보증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살아가는 날 동안, 신자의 몸 속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해 모든 형편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이것을 두고 7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신자는 눈에 보이는 상황을 보지 않고,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믿음이 더해 지면 더해질수록, 현재의 상황을 보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참을 수 있고, 그래서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가치를 부여 받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우리에게 놓여진 구원의 길입니다. 그 구원의 길로 걸어가는 신자는 현재에 몸이 겪고 있는 것에 얽매이거나 힘들어하지 않습니다몸이 탄식 속에 있고, 고통 중에 있을 지라도 오직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성령님이 주시는 보증으로 견디며 끝까지 구원의 길을 갑니다

9/11/2016 5:41: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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