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Kingship 16: 다윗의 인구조사(삼하24:1-25, 대상21:1-27, 2016년8월28일 주일)

Kingship 16: 다윗의 인구조사(삼하24:1-25,대상21:1-27, 2016828일 주일)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독자의 눈에 모순점이 발견됩니다.오늘 두 병행본문의 시작이 그렇습니다. 삼하24:1을 보세요. “여호와께서다윗을 감동시키사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그러나 대상21:1을 보면,“사단이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습니까? 하나님이 인구조사를 시키신 것입니까? 아니면 사단이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입니까? 답은 둘 다 맞습니다. 인구조사를 하게 한 주체가 하나님도 사단도 다 맞다고 하면 이제 한가지문제가 생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결국 인구 조사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받거든요. 벌은 죄를 지을 때 받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구조사를시키신 것이면,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되시는 것 아닙니까? 라고 질문을던져야만 되겠죠. 물론 하나님의 죄의 조성자가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시편에서만 적어도 7번 여호와의 선하심이 영원하다라고 찬송합니다. 요한1 1:5,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조금도 없으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은 죄를 지을 수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잠깐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하여 한가지 변증학적인정리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라는 명제는 변증학적으로는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실 수 없는 것들이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1. 하나님은 죄를 지을 수없습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 되시기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은 또 다른 하나님을 만들 수 없습니다. 4.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습니다.5. 하나님은 죽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변증학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전능하시지만,하나님의 성품적인 측면에서 하실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다윗이 인구조사라는 죄를 짓게 된 것은, 1차적으로는 사단이 하게 한 것이고, 2차적으로 하나님이 허용하셨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죄의 제1차 원인은 반드시 사단이고, 그러나 제2차 원인으로서 하나님은 허용하셨기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허용하셨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왜냐하면 마치 하나님은 이 세상을지으시기만 했지, 전혀 상관하지 않는 이신론적 하나님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죄가 난무하고, 심지어 테러와 전쟁이 난무해도 하나님은 전혀 관여하지 않고,다 허용하시는 수동적인 하나님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더 큰 그림인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작정에는 세 가지 큰명제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는마지못해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발적 사고나 예상치 못한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후회하실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의작정은 우연히 보이는 사건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배하시고, 통제하시는가운데 일어나는 필연입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그러므로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에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허락 없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셋째, 하나님의작정은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입니다. 인간의 어떤 실수나 개입도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실패하게 하지 못합니다.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형들에게 한 말이 바로 그거죠.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50:20). 인간의 온갖실수와 죄악도 하나님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못합니다.

    이제 만약 이 하나님의 작정 교리를 잘 못 이해하거나악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허용하신 일이기 때문에, 내 맘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구실과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때로는죄짓도록 내버려 두시고 허용하신다고 해서, 그것이하나님이 내가 죄짓도록 강요하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죄짓도록 몰고 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조성자가 아니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따져 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셔서 내가 죄를 짓게됐으니, 하나님이 책임 지세요! 은혜를 좀 주셔야만 합니다.”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명확히 경고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6:1). 인간의 죄와 불신앙을 빌미로은혜를 구걸할 수 없습니다. 은혜는 받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께서필요한 때에, 필요한 장소,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방법으로 주권적으로 수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두 본문의 각 1절을 요약적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사단은 다윗을 부추겨 인구조사를 하게 했고,하나님은 그것을 허용하셨다.”그러면 이제 우리는 또 중요한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왜 하나님은 죄를 허용하시는 걸까요?그 이유는, 하나님은 죄를 허용하심으로 결국 ①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②오직선한 것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고백하게 하고 ③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죄 자각믿음돌아섬). 회개의 3 요소이기도 하지요. 죄인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죄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알게 됩니다. 탕자가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게된 것은 아버지 품을 떠나, 허랑방탕하고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를 먹게 되었을 때에야, 아버지의 선하심이 생각났고, 결국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듯이, 하나님은 죄인이 계속 죄를 짓도록 허용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 아버지를 찾게 하십니다.

    다윗은 군 사령관 요압에게 인구조사 명령을 내립니다(2). 고대 국가에서 인구조사를 하는 목적은 두 가지죠. 군사적 목적과 세금징수 목적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로지 군사목적, 곧 군대를 몇 명이나 소집할 수 있는지를 알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인구조사 프로젝트의책임자를 문관이 아닌 현직 무관인 요압에게 지시했던 것입니다. 또한 인구조사의 기준을칼을 빼는 담대한 자”(삼하24:9)로 잡았다고 기록하고있는 것만 봐도 다윗의 관심은 돈이 아니라, 군대였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이런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을까요?아마도 그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출애굽 광야시절 인구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번 인구조사를 명령합니다. 그 기록이 민수기1장과 26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민수기26장에 나오는 두 번째 인구조사 때 하나님은 첫 번째 인구조사 때와는 다른 조사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26:2). 그래서 이때 이 십세 이상의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의 수가 601,730(26:51)으로 집계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하나님은전쟁에 참여 할만 사람의 숫자를 세라고 하셔놓고, 인구조사가 완료 되고 이렇게 지시하십니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26:52-54).결국 하나님은 군대를 소집하시려고 그 명령을 하셨던 게 아니라, 땅을 공정하게 분배하게하시기 위해서 그러셨던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이 땅 분배를 위해서 굳이 이십세 이상의 능히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자를 기준으로 인구조사를 지시하셨을까요?그것은 하나님의 합리성이지요. 땅을 분배해주어서, 그 땅을 가꾸고, 적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숫자 만큼에 합당한 땅을 분배해서, 그 땅을 잘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군대의 숫자에 있지 않는 것이지요.하나님이 뭐가 두려워서 전쟁에 필요한 군대의 숫자를 계수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인간의 가진 것과 전혀 상관없이 일하시지 않습니까? 다윗이 소년 시절에 골리앗에게 큰 소리 쳤던 것도 바로그 내용이지요.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7). 그런데지금 그랬던 다윗이 노년에 칼을 뺄 수 있는 자를 기준으로 인구조사를실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불신앙이죠. 왜냐하면 다윗은 지금 민수기26장의 인구조사처럼, 땅 분배가 목적이 아니라, 군대를 소집하여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과거 선조들의 인구조사의 기준과 똑같이 시행했지만,결과적으로 다윗의 인구조사는 불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의 아무리 좋은 신앙의본보기를 현재에 적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신앙은 형식을 전수받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물려 받는 것입니다.다윗은 인구 조사라는 형식은 전수받았지만, 본질을 변절시켰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모태 신앙이라면, 여러분은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의 형식을 전수 받은 것이 아니라,그 신앙의 본질을 전수받은 것입니다. 부모님이 장로교교인이기 때문에,여러분이 지금 장로교교인입니까? 그것은 형식이지 본질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만약 장로교교인은 되었는데,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껍데기입니다.여러분이 만약 질그릇교회가 좋아서, 질그릇교회교인은 되었는데,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종교인입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가졌으니…”(고후4:7)라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질그릇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이듯이, 형식이 본질을 넘어설 수는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믿음을 전수 받는 것입니다.그 믿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루를 그리스도 없이도 아무런문제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지요. 인생에 그리스도를중심에 모시지 않는데도, 여전히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사단이 주는 가짜 즐거움입니다.하루 중 단 한번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거나, 말씀 앞에 순종의 삶을 살지않으면서도, 여전히 평안함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 평안입니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해서 가짜 평안을 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이때 인구조사의 지시를 받은 요압 장군이 반발합니다. “왕이시여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이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 불어나게 하실 건데, 어찌 이런 일을 하시려고 합니까?”(3). 이 말을 하고 있는 요압이 어떤 인물입니까? 우리는지난 여러 번의 설교를 통해서, 봐 왔습니다. 요압은 정말 세상적인인물입니다. 군사적으로 능력 있는 장수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자신의야망 때문에 일을 그러 치기도 하고, 복수심에 불타서 사람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의 정책 노선에 찬물을 끼얹고 많은 해악을 끼친 사람입니다. 성경 어디에도요압을 두고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 요압의 입술에서, 다윗에게 믿음의 충언을 합니다. 아이러니죠.

    때로는 신자보다 불신자가 훨씬 신앙의 상식적인 판단을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불신자가 더 도덕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를 통해서도 신자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불신 친구나 이웃이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면 돼냐?”라고 질타할 때 그냥 쉽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뭔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대와 상식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그들이 설혹 자신의 세상적 상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만약 신자의죄를 지적하는 것이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대로, 하나님의 작정 안에는 우연히 보이는 사건도 결국 하나님께서 지배하시고, 통제하시고,결정하시는 필연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일 강단의 설교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않고, 순종하지도 않을 때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께서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가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삼하7:14)이 되게 해서라도 신자를 깨닫게 하십니다. 구약 성경에 줄곧 나오는 이야기가 그겁니다.이스라엘이 범죄하고 깨닫지 못할 때, 주변의 이방 나라들을 일으켜서 압제 당하게하고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시고,포로로 잡혀가게도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바른길로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2:11).하나님이 신자가 죄 지을 때, 담벼락에 돌들로도 소리 지르게 해서라도 죄를 지적하시는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의 자녀들에게 열심하시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요압의 충언을 듣지 않습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하나님의 첫번재 기회를 놓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인구조사를강행해서 9개월 20일만에 마칩니다. 이때 삼하24장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대상21:7,“하나님이 이를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라고 기록합니다.하나님이 치셨다라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찌르는 방법으로 치셨다고 생각됩니다. 삼하24:10,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라고 성경이 기록하는 것으로 봐서,다윗의 마음이 깊이 찔림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다윗은 이렇게 인구를 조사하고 난 다음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삼하24:10). 대상21:7-8하나님이치시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라고 했고, 삼하24:10다윗은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그래서 다윗이 주님께 자백하였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마치 1절 처럼 서로 모순처럼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신자의 양심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성령님은 신자의 마음을 살피시고 감찰하십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깨닫게도 하시고,우리를 위로하시기도 하시며, 우리를 회복시키시기도 하십니다.

    신자가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하나님이 치셨다라는 말이나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라는 말이나매 한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요한14:13에서 알려 줍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성령님과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연합합니다. 그래서 신자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자의 몸은 하나님의 사시는 처소가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주어진 신비한 연합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범죄하면,신자 안에 머무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탄식합니다. 그래서 찔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이것이 양심의 가책입니다. 만약 죄를 지속적으로 짓는데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 일어나지않는다면, 그것은 화인 맞은 양심(딤전4:2)이거나 성령님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윗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때,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보내서, 잘못에 대한 처벌을 할 것인데 세가지 중에 한가지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징계가 다윗이 회개 한 직후에 주어졌다는 것을주목하셔야 합니다. 오늘날 신자들 사이에 기독교 신앙에 잘 못된 사상이 일반화 되어 있는 것 중에 하나가,바로 회개에 대한 것입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죄 용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 말에 함정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징계 없는 용서를 원합니다.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여 낳은 아들은 그 징계로 하나님이살려두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를아내로 맞이하여 낳은 아들은 오히려 여디디야하나님의 기뻐하시는자라는 이름으로 아들을 주십니다. 그가 바로 솔로몬입니다. 징계 없는회개는 값싼 은혜를 낳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믿으면 천당하고, 예수믿으면 복받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가가 은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12:6).

    이제 결국 세 가지 재앙 중에 맨 마지막으로 제안한,“삼일 동안 온역이 일어나서 칠 만 명의 사람이 죽습니다. 아마도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죽은 수가 7만명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죽음의 천사를 보내서 치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상21:15에 보면, 이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셨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갑자기 그 천사에게 그만 멈추라고 하십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멈춰 섰던곳이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낙 마당이었습니다. 다윗이 눈을 들어보니, 주님의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멈추라고한 것은 아마도 일시적인 멈춤이라고 봐 집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청합니다.  인구 조사를 지시한 사람은 바로 접니다. 제가 죄를 짓고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잘 못이 있습니까? 나와 내 집안을 치시고, 제발 주님의 백성에게는 전염병을 거두어 주십시오.(대상21:17). 이때 갓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십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낙 마당으로 올라가서 주님의제산을 쌓아라. 그래서 다윗은 오르난에게 가서 이 타작 마당을 사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르난은 임금님 그냥 가지십시오. 제가 소도번제물로 드리고, 번제태울 땔깜도 드리고, 소제물로 밀도 드리겠습니다.”이때 다윗이 그럽니다삼하24:24,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그러고는 다윗이 은 오셉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을 그치십니다 (25). 이것을대상21:27에서는 사자를 명하시매 저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다윗의 마지막 고백에 주목해야 합니다.“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죄 사함은 누군가 값을치르고 나서야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0:1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찢기시고, 피를 쏟으셔서, 인류의 모든 죄값을 치르셨기에 저와 여러분이 거룩함을 입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10:12). 이제 그 그리스도의십자가에 피흘리심은 단번에 드려졌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효력이 있는 제사가 되게 하셔서, 더 이상 아무도 짐승을 데리고 와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다윗은 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고백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대상22:1). 그러고 나서 대상 22장은 그 장소를성전건축의 터로 지정하고, 성전 건축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대하3:1은 그 장소가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이 모리아산이 창22장의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그 모리아산과 동일한 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또한 많은 신학자들은 이 모리아산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오르신 골고다일 것으로 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골고다에서 단번에 드리심으로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화목제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모든 오고 오는 인류의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 백성이 되었습니다

8/28/2016 5:46:00 PM

There is no comment yet...
의견 등록을 하시려면 로그인 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