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hip 10: 왕들의 전쟁2(삼하2:1-3:1, 2016년7월 10일 주일)
오늘은 저번 시간에 이어서 같은 본문으로 결론 부분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이제 가드 왕 아기스로부터 선사받은 시글락 성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유다로 갈까요?” 하나님은 가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 유다 어디로 갈까요?” “헤브론으로 가거라”라고 하나님이 답하시는 장면이 본문 1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남쪽 20마일 가까이 떨어진 변방과도 같은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정치적 중심지는 예루살렘인데도, 헤브론으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다는 의미는 다윗이 손쉽게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등극할 것이 아님을 넌지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헤브론은 정치적으로는 변방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영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지역입니다. 헤브론은 옛적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져서 이주해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마므레 상수리 수풀”(창13:18)이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사라가 죽었을 때, 헷 족속에게서 막벨라 굴을 사서 가족 매장지로 삼았던 곳이며, 이곳에 아브라함, 사라,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이 장사 되었습니다(창49:29-33). 그리고 그 이후에 가나안 정복전쟁이 다 끝나고,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했던, 해발 1,000미터의 고산지대가 바로 헤브론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도피성으로 쓰여지던 곳입니다. 이처럼 헤브론은 이스라엘 전체의 지리적 위치로는 별로 매력이 없는 곳일 수는 있으나, 조상들의 선산과 영적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쉽게 왕이 되기보다는, 이런 조상들의 믿음의 발자취가 스려있는 헤브론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백성전체의 인정을 받는 기간을 가지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다윗이 이뤄야 할 통일 왕국은 무력으로 하나되는 나라가 아니라, 영적대통합을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 사람들로부터 공식적인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야말로 열 두 지파 중 1/12에 해당하는 유다 지파의 왕이 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기까지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북쪽에 유다를 제외한 열 한 지파는 사울의 가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거의 몰락하면서 정치적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울의 군대 총 사령관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는데, 그 이름이 아브넬이었습니다. 아브넬은 사울 왕과 사촌 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울의 넷째 아들인 이스보셋도 죽지 않고 살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보셋에게는 5촌 당숙 되는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웁니다. 분명히 꼭두각시 왕이었고, 실제 권력은 아브넬이 다 쥐게 됩니다.
이스보셋의 아버지 사울과 그의 형 3명이 길보아 전투에서 다 전사했음에도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볼 때,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나이가 어려서 전쟁에 나가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이 본문은 이스보셋이 북쪽 지파의 연합인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의 나이가 40세였다(10절)고 밝히기 때문입니다. 다윗보다 10살이 많습니다. 아마도 전쟁에 나가지도 못할 만큼의 약골이거나 타고난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오촌 당숙 아브넬이 아버지의 첩을 빼앗아서 취할 때 이스보셋이 그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하다가 도리어 아브넬이 큰 소리치니까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말도 대답지 못하니라”(삼하3:11)고 성경이 기록할 만큼 이스보셋은 소심하고 남자답지 못한 사람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전쟁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고 이제 살아남았지만, 오촌 당숙인 아브넬의 꼭두각시 노릇 하는 왕이 되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생각하는 통일왕국을 위한 정책은 대화를 통한 유화정책이었습니다. 다윗의 정책이 꼭 한국의 모 역대대통령처럼 ‘햇볕정책’같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외교적으로는 분명히 포용하면서 평화주의 모드로 나가려는 시도를 초반에 하게 됩니다. 그 증거로 본문 4절부터 나오는 부분이 그것을 대변해 줍니다. 성경은 다윗이 유다 족속의 공식 왕으로 등극한 첫 번째 업무를 기록합니다. 몇 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와서 대통령으로서 한 공식 첫 업무가,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서명하는 것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처럼 다윗도 이제 왕으로서 첫 업무를 보고받고 그것에 대한 지시를 내리는 일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다윗의 중요한 정책 노선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다윗이 이룰 나라의 특성이 무엇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통일왕국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첫 업무의 내용은, 신하 중 한 명이 보고하기를, 사울 왕의 장례를 잘 치러 준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두 주전 설교 본문 삼상31장에서 사울 왕의 최후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본문 맨 마지막 부분에 보면 블레셋이 사울왕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박아 놓았던 것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새벽에 살짝 가져와서 화장을 하고, 그 뼈를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했다고 기록합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한데에는 분명히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삼상11장에서 기록하고 있는데요. 암몬 족속이 길르앗 야베스를 치려고 할 때, 사울이 나서서 구해줍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 왕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를 치러 줬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렇게라도 해야 사울에게 마음으로라도 보답하는 길이었습니다. 할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사실을 보고 받고 길르앗 야베스에 사신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사신을 통한 내용은, “여호와께 복을 받을찌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5-6절)라고 합니다.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고 난 후 가장 첫 왕으로서의 공식 업무에 외교의 일을 합니다. 이 외교의 일을 하면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다윗이 전달한 내용의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첫째, 나는 사울의 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시 할 마음이 없다. 둘째, 나 역시 사울 왕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왕의 죽음에 애도하고 선의를 베푼 사람들에게 나 또한 선의를 베풀고 싶다. 그런데 다윗의 외교전술을 통해서 얻고 싶은 진짜 궁극적인 결과물은 뭘까요? “나는 당신들과 전쟁을 통해서 관계를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대화로 풀자. 그러니 협상 테이블로 나와라”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다윗 왕의 외교정책과는 무관하게, 다윗의 조카인 요압(대상2:16)과 사울 가문의 군대 사령관인 아브넬은 자신의 야망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12절부터는 요압과 아브넬 사이의 전투가 발생하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전투의 발단은 기브온 연못 가에서 이루어집니다. 서로 연못을 중심으로 마주보고 대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사울 가문의 아브넬 장군이 제안을 합니다. 젊은 병사들을 뽑아서 겨루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14절)이라고 번역했는데, “장난하자”는 말이 어떤 게임을 하면서 놀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 칼부림”을 한번 해보자라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아브넬은 다윗의 군대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소규모로 하되 잘 훈련된 젊은 병사들끼리 한번 칼싸움을 시켜서 상대의 전력을 분석해보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압이 이에 선뜻 응합니다. 대결 방법은 대표12명씩을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최정예 용사들로 내 보냈을 것입니다. 12명이 서로 칼을 뽑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던지 성경은 기록하길, “각기 적수의 머릴 잡고 칼로 적수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16절). 설마 서로 머릴 잡고 있다가 “시작”이라고 외치면 서로 찌르기…했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그 12명의 전투가 얼마나 필사의 각오로 치열하게 치러졌는지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단칼에 사람을 벤다든지, 무슨 곡예를 하듯이 멋있게 싸운 것이 아니라, 죽을 힘을 다해 싸우다가 싸우다가 나중에는 서로 몸이 엉겨 붙어서 싸우다가 결국 서로 칼로 옆구리를 찌르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24명이 서로 다 죽을 때까지 찔렀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계기가 되어 확전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싸움이 맹렬하게 되었고, 결국 요압의 군대가 승기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넬과 그 군대는 도망가게 됩니다.
이 전투의 결과를 보면 요압의 군대는 20명이 전사하고, 아브넬의 군대는 360명이 전사합니다(30-31절). 이 수치는 뭘 말해 주는 것일까요? 갑자기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이 아닌, 정규군이 같은 조건에서 붙었는데, 한쪽은 20명이 전사하고, 한쪽은 360명이 전사했다는 것은 용사들의 실력차이가 확연하게 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브넬의 군대는 처음 대표로 내 보낸 12명이 최고의 용사이면서 더 이상의 용맹한 칼잡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요압 쪽에는 그 12명 외에도 용맹한 칼잡이가 무수히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성경이 왜 이것을 숫치적으로 기록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다윗이 힘이 부족해서 무력통일을 하지 않고, 유화정책을 펴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비록 열 두 지파 중에 겨우 한 지파인 유다 지파만의 왕이 되었지만, 그 군사력은 자기보다 적어도 10배 이상 큰 북쪽 이스라엘의 군대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왜 이렇게 소규모 전투에서의 전사자 수를 공개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다윗의 군대가 싸이즈는 작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며, 전쟁을 통해서 이스보셋의 군대를 무력으로 얼마든지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무력의 힘을 충분히 가졌지만, 무력으로 통일왕국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전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다윗의 군대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충분함에도 그런 방법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다윗의 군대가 얼마나 용맹한가를 여러 군데에서 설명합니다. 삼하23장과 대상11장에는 이미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도망자 생활을 할 때부터, 다윗을 따르던 용맹한 장수들이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소위 다윗의 “30인 용사”라고 불리는 그들을 간략 간략하게 소개하는 데, 무슨 무협지 소설이나, 히어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불사신 같은 용사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은 실제 30명이라기 보다는 최소 37명에서 많게는 48명까지 되는 것으로 성경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이 통칭적으로 30인 용사로 그들을 소개하는데, 이들 중에 가장 뛰어난 첫째, 3인을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요셉밧세벳이라는 용사는 혼자서 단번에 800명을 쳐죽였다고 말합니다(삼하23:8). 나는 집에서 파리 한 마리 잡으려고 파리채를 한 열 번 휘두르고 나면 팔에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800명을 그 무거운 칼을 들고 상대해서 다 죽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이런 정도의 용사가 두 명이 더 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3명 용사 그룹을 소개하는데, 이들은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도망자 생활을 할 때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먹고 싶다면서 누가 그 물을 좀 길어 올 사람이 있느냐고 했을 때, 이미 블레셋 군대가 점령하고 지키고 있던 베들레헴까지 침투해서 물을 길어다 주는 다윗에게 갖다 바칠 정도로 용맹하고,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 번째 3명 용사 중에 우두머리가 바로 요압의 바로 아래 동생, 아비새(삼하23:18)라고 소개합니다. 그 아비새가 한때 적국 300명을 쳐죽였다고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그 정도로 용맹한 아비새도 첫째 3대 명장보다는 좀 못 미친다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다윗의 수하에는 1당 100이 아니라, 1당 300백, 800백 씩 하는 용사들이 즐비했습니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대게 다 다윗이 도망자 생활을 할 때 모여 들었으며, 대상12장에 보면 시글락에 머물 때 많은 용사들이 함께 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이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될 때, 군대의 중추적인 멤버들이 됩니다. 그러니 다윗이 1/12밖에 안 되는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기는 했지만, 나머지 11지파의 연합인 북쪽 이스보셋의 군대보다 약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상해 보건데 삼상31장의 길보아 전투에 만약 다윗의 용사들이 참전해서 사울을 도와주었다면 블레셋에게 분명히 승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길보아 전투때 그 자리에 없었고, 아말렉과 싸우고 있었지요.
오늘 본문 18절을 보세요. 다윗의 “30인 용사” 중에 두 번째 그룹의 명단에 오른,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혼자서 300명을 상대할 정도로 용맹한 아비새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브넬의 용사가 그날 전투에서 360명이 전사했다고 성경이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실력으로 이겼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다윗의 군대가 절대 하나님의 도우심만 믿고, 실력도 없는 약골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군사력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10배 이상 덩치가 큰 북쪽 군대를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지 않고, 헤브론으로 가라고 지시하셨던 이유는 무력 통일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포용을 통한 평화 통일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전은 다윗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조카 요압이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면서, 아브넬의 제안에 선뜻 응하면서, 확전이 되고 내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요압은 확실히 야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압은 자신이 모시는 다윗왕의 포용/유화정책을 몰랐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공명심은 다윗의 평화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요압이 얼마나 야망의 사람이었는지는 대상11장에 나옵니다. 다윗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천도하려고 할 때,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는 여부스 토인들을 멸하는 사람에게 군대 사령관으로 임명하겠다고 공약 했는데, 요압이 가장 먼저 예루살렘에 진격하여 여부스를 격퇴하여서 결국 다윗 군대의 총사령관이 됩니다. 이것이 그의 공명심과 야망의 한 단면입니다. 그리고 결국 요압은 다윗의 눈에 눈도장을 찍는 대신, 눈에 가시가 되어져 갑니다. 삼하3:39에서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라고 고백하면서 요압이 얼마나 다루기 힘든, 전투적인 사람인지를 성경독자들에게 넌지시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 스토리로 돌아와서, 이제 아브넬의 군대가 패배해서 도망을 갑니다. 이 때 동작이 굉장히 민첩하고 달리기를 잘하는 요압의 막내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 갑니다. 그러나 그는 동작만 빨랐지 아직 아브넬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브넬이 뒤 쫓아 오는 아사헬에게 창을 날렸는데, 그것이 관통하여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요압은 동생의 죽음을 복수하리라고 마음 먹고 결국 이것이 나중에 다윗이 통일 왕국을 평화적으로 세우려는 것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지난 삼상 본문들에서 나타난 다윗의 일관된 행동은,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 동족에게, 특히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자에게 직접 칼을 겨누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블레셋 편에 서서 아기스 왕의 경호대장 신분으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여 동족에게 칼을 겨눌 뻔한 일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실수를 모면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서,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에게 칼을 휘두르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앞서 살펴 본대로, 다윗의 군대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충분히 북쪽 이스라엘을 상대할 힘이 있음에도, 그런 방법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르앗 야베스를 칭찬하면서, 외교전으로 포용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죠. 내가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쓰지 않는 것이 복음이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His name shall be called the Prince of peace!”그리스도께서는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자신의 몸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 하셨습니다(막10:45). 그는 군림하고 무력으로 죄인들을 굴복시키고, 통치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럴 힘이 있으셨지만 그런 방법을 쓰시지 않습니다. 그저 한없이 낮아지시고 자신의 신분을 버리시기 까지 하시면서 십자가로 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지 않으실 힘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가시관을 씌우려고 할 때 그것을 충분히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나는 로마군의 채찍을 피할 수 있는 힘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눕혀져 20센티미터 짜리 대못을 피할 수 있는 힘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 자리에서 못을 스스로 뽑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왜요?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은 기묘자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본체시기에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피하지 않으셨을까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왜 예수님이 그리도 바보스럽게 잠잠히 고통을 당하시고, 죽어가셔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막혔던 담을 허물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 이게 복음이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충분히 지지 않으셔도 되는 힘이 있으셨지만, 잠시 자신의 능력을 내려놓으시고, 또한 하늘의 영광도 버리시고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의 모든 죄인들을 구원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모든 죄를 지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자신의 거부권을 하나님 아버지께 행사하지 않으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시면서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하겠다고 순종합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힘과 거부권을 전혀 쓰지 않으시고, 다 내려놓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가 사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십자가에 굴복하고, 십자가라는 극형에 죽으셨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그것이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부활하심으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단의 모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산자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약한 듯이 보이고 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기는 것입니다. 복음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30)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약한 것처럼 보여도, 지는 것 처럼 보여도 결국 복음은 이기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완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죽으심으로 완전한 사랑을 이루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질 수 있는 길을 여신 사건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