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hip 8: 왕의 죽음(삼상31:1-13, 삼하1:1-16, 2016년6월26일)
오늘 본문은 사울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사울은 전쟁 중에 죽습니다. 사무엘상에는 블레셋과 이스라엘간의 전투가 총 네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블레셋과의 4번의 전투는 대략 20년 전후의기간 동안 일어났을 것으로 봐 집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과의 네 번째 전투입니다. 앞선 세 번의 전투에서의 전적은 1승 2패로 이스라엘이한 번 뒤집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4,000명이 전사합니다(삼상4:2). 두 번째 전투에서는 이스라엘 보병 30,000명이 전사합니다(삼상4:10). 그리고 세 번째 전투에서는이깁니다(삼상16장). 그런데이 세 번째 전투는 다윗이 출전한 특별한 전투입니다. 만약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전력상으론 이기지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네 번째 전투가 벌어집니다. 본문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완전히 열세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도망쳤다고했고, 길보아산으로 후퇴를 거듭하다가 거기서 거의 다 죽게 됩니다. 4전 1승 3패입니다.
이렇게 볼 때 블레셋의 군사력은 이스라엘을 압도적으로능가합니다. 블레셋은 이미 역사적으로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다 격파하고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와서나를 세울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의 민족입니다. 이미 철제 무기가 발달했고, 군사전략과 보병양성 기술이 뛰어났습니다. 객관적 전력으로는 백전 백승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정도의 강한 군대였습니다. 이런 군대를 상대로 이스라엘이 싸운다는 것은 어쩌면 대패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런 블레셋의 막강한 군사력도 1번 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출전했을 때입니다. 이 블레셋과의 세 번째 전투는 좀 특별한 전투입니다.먼저 심리전을 이용한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전도 심리전이 중요하지만 고대전쟁은 심리전이 훨씬 중요한 전쟁 전략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고대 전쟁에서는 대표 장수가 나와서 장수끼리붙습니다. 이 장수끼리의 싸움에서 이기는 쪽은 사기가 올라가고, 지는쪽은 사기가 떨어져서 결국 패합니다. 삼상 17장은 이것에 대해서 기록합니다.이 세 번째 전투를 기록한 삼상 17장에는 두 번의 “도망치다”라는 동사가 나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군대가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여 도망”(삼상17:24)했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골리앗이 죽은 후에는 이제 반대로 블레셋 군대가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삼상17:51)에 기록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블레셋과의 세 번째 전투에서 이긴 것은 심리전에서의 승리입니다.그렇다면 성경이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 심리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을 말씀하려고 하는 것일까요?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는 결국 하나님께서 심리전을 사용하셔서 이기도록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전투에서 이겼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의고백에서 그 증거가 발견됩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7).
오늘 블레셋과의 네 번째 전투에서 객관적 전력으로는 도무지이길 수 없는 것은 명백했습니다. 사울도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삼상28:5)라고 성경이 기록하는 것을 볼때, 사울의 마음에도 이미 승산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렇다면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군대가 길보아산으로 밀리고 밀려서 결국 다 전사하게 되는 패전의 원인은, 이스라엘 군대에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입니다.
이제 사울과 사울의 아들들이 어떻게 전사하는 지에 대해서성경은 기록합니다. 시간상으로 사울의 세 아들이 사울 보다 앞서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사울은 세 자식들이 전사하는 것을 눈으로 봤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봐 집니다. 사울은자식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이미 지옥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전세는 계속 밀리다가 길보아산까지가서 블레셋 궁수부대의 활에 사울이 맞습니다. 사울은 활에 중상을 당합니다(3절). 분명히 사울의 상체 어딘가에 화살이 깊숙이 박힌 상태일 것입니다. 요즘에야 응급조치를 하고 수술을 하면 살 수도 있지만, 고대전투에서는 화살이 상체부위에 깊숙이박히면 피를 많이 흘려서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서서히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사울은 지금 중상을 입고 고통 속에서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품위가떨어지는 것이 고통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숨이 몰아치는 그 순간에도 사울의 품위는종교적인 것이었습니다.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삼상31:4). 사울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이 할례 받지 않은이방인들 손에 죽는 것이 정말 치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적어도 사울에게는 아이러니 합니다.
사울이 지금 마지막 순간에 염려하는 것이 뭡니까?“나는 할례 받은 백성이며,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이방인들의 손에 죽는 것은 정말 치욕적이다라는 것입니다.성경이 지금 사울의 마지막을 묘사하면서 뭘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까요? 사울이 드디어뒤늦게라도 깨닫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성경은 사울이 죽음 직전까지 믿음이 없고, 오직 종교심만 남았다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서하나님의 명예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치욕을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는 죽음직전까지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사울이 정말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렇게도 마지막까지명예를 지키고 싶었다면, 왜 진작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사울은 그러고 보면 입술로는 늘 하나님, 하나님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전혀 행동이 따르질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울의 가장 큰 불신앙이었습니다. 사울은 껍데기만 신자였지 실상은 불신앙으로 하루하루를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례 받은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떠들어 대지만, 행동에서는 전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오늘날 말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신자들의 모형입니다. 자기를하나님의 백성으로 말하면서, 어떻게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생각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항상 육신의 생각에 잠겨있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십자가를지고 전혀 따르지 않습니다. 그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입니까?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말하면서 자기자신의 전혀 부인하지 않습니다. 전혀 낮아짐이 없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아집과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입니까?말로만 자신을 신자라고 하면 다 신자입니까?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사29:13). 살아가면서 전혀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이아닙니다. 전혀 신자의 삶이 없다가 생애 마지막에 가서, 나는 하나님의자녀다라고 자기확신만 있으면 된다 라고 하는 것은, 신앙의 아전인수요, 자기 합리화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생애 마지막 순간의 1초 안에도 얼마든지 사람을 구원시키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신자는 그렇게살면 안됩니다. 신자로서의 과정, 신자로서의 삶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만큼,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음을 앞두고 사울과 같이 어이없는 신앙고백만 하는 꼴불견이 될 것입니다.
이제 사울은 활을 맞고 중상을 입을 상태에서,이방인의 칼에 죽는 치욕은 피하고 싶고, 스스로 자결할 힘은 없어서,사울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비서에게 명령합니다. “니 칼로 나를 좀 찔러라.”그러나 무기담당 비서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때 사울은 자기 칼을 위로 세우고그 위에 자기 몸을 실어서 엎어집니다. 그랬더니 옆에 지켜보던 무기담당 비서도 따라 죽습니다.이것이 사울 왕의 말로입니다. 사울의 죽음은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자살이자,자살로 죽은 4명의 사람 중 한 명으로 기록됩니다. 나머지 세 명은 아히도벨(삼하17:23), 시므리(왕상16:18), 가룟 유다(마27:5)입니다.
이제 삼하 본문 1장으로 가면, 다윗은 시글락을 공격해서 부녀자들을 잡아갔던 아말렉을 치고 시글락에 돌아 온지삼 일째 되던 날이라고 성경이 알려줍니다. 저번 시간의 본문을 기억해 보면, 다윗은 블레셋 아기스 왕을 따라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에 참여할 뻔 했다가, 블레셋 지휘관들의반대로 시글락에 돌아왔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들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아말렉을 쳤고, 그런 후 시글락으로 복귀해서 이틀이 지난 상황입니다. 다윗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이제 마음속에가장 궁금한 소식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결과였을 것입니다. 이때 한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전쟁의 소식을 전합니다. 이스라엘 군사가 많이 도망했고, 많이 전사했으며,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다고 전합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고 소상히 말해보라고 다윗이 묻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대답하길,우연히 길보아산에 올라갔는데,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해서 버티고 있는 것을 봤다는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자기를 불러서 좀 죽여달라고 해서 자신이 그렇게 하고서는 머리의 왕관과 팔찌를 빼서이렇게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여기에서 헷갈려 합니다.도대체 삼상31장의 사울의 죽음의 스케치와 삼하 1장에서 말하는 사울의 죽음의 묘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헷갈릴 필요가 없습니다.삼하1장의 소년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거짓말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소년의 이야기가 거짓말인 증거는 크게 세가지 정도 보입니다. 첫째,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빼돌릴 시간적/상황적 긴박성입니다. 이 소년은 사울이 자기 창을 기대고 서 있을 때, 블레셋 군대의 추격을 이렇게 말합니다.“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 따르는데…”(6절). 병거와 기병은 말을 타고 달리는 부대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기마부대가 빨리 쫓아 오는 것이눈으로 확인될 정도였다면, 금방이라도 도망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소년이 태연하게 길보아산에서 사울과 대화를 하고 있고, 시키는 대로 사울을안락사 시키고, 또 왕관과 팔찌를 빼서 그 추격하는 기마부대를 피해서 용케 도망쳐 왔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것입니다. 둘째, 전쟁을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에서 지켜보기라도한 듯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군사가 전쟁 중에서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중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4절). 이런 사실을 말하려면첫째 전세가 어떻게 되는지 알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대에 속해서 같이 싸우든지 아니면 하늘 위에서 계속 전쟁을 지켜봤던 자라야 알 수 있는 묘사입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말렉군을 끌여 들여서 동맹군을 형성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때아말렉은 시글락을 불태우고 있었고, 또한 다윗의 공격을 다시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에 참여해서 그렇게 상세하게 전세를 말 할 수 있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째,사울이 죽어 갈 때 무기든 비서에게 죽여달라고 한 이유입니다. 그는 이방인의 손에죽는 것이 치욕이라고 여긴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말렉 소년도 여전히 이방인인데,사울이 그에게 죽여달라고 간청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년은 지금 거짓말을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패배한 전장에 살짝 가서, 시체를 뒤지면서 전리품을약탈하기 위해서 갔다가 우연히 사울의 시체를 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왕관과 팔찌를 가져다가 다윗에게 가져가서자신이 죽였다고 얘기하면, 다윗이 큰 상을 주고, 자신을 영웅으로 대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년의 거짓말은 자신의 종말을 불러 왔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금식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말렉 소년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여기까지가 사울 왕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왜 여기에 사울의 죽음 이야기를 아말렉소년의 입을 통해서 한번 더 묘사하고, 결국 아말렉 소년을 죽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윗의 중심이 어떠한가를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다윗은단 한순간도 마음속으로 사울이 정말 빨리 죽기를 바랬다거나, 빨리 왕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적이 없습니다.그는 사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금식합니다(12절). 그리고 여호와의 기름부으신 자를 함부로 죽인 것에 대해서 직접 처벌합니다(16절).이것을 통해서 성경은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은근슬쩍 성경은 다윗이 앞으로 다윗왕국을 세워나갈 왕으로서의 조그마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더 나아가서는 사울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을 끝까지죽이려고 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려고 했지만, 다윗은 끝까지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이 죽지 않기를 바람으로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이런 다윗이 차기 왕으로서 자격을 어느 정도갖추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넌지시 보여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왜 하나님은 사울이 전장에서 죽게 함으로써 그의 생애를 일찍 마감케 했을까요? 성경은3가지로 기록합니다. 역대상10장을 보면 사울의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똑같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거기에서 맨 마지막 두 구절을 할애해서 사울의 죽음의 이유를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돌리셨더라"(대상10:13-14). 성경은 사울의 죽은 것이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이라고 총론적으로 밝힙니다. 그러고는 그 범죄함이 뭔지 각론적으로 세 가지를 밝힙니다.1.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2.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3.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1.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불순종입니다.
2. 신접한 자에게가르치기를 청하고: 사울은 또한 신접한 여인, 즉 무당을 불러서 장래의일을 점치도록 합니다. 율법에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레20:6)라고 명시합니다.이것은 사단을 섬기는 짓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도무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 묻지아니하였으므로: 사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에 말로는 관심이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물어 본적이 없습니다. 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이것은 왕정이 세우지기 전 사사 시대에 있었던 불신앙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의 죽음을 통해서 결국 보여주는 것은 다윗의 왕국이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왕국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고, 신접한 무당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인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늘 하나님께 묻는왕국이 되어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다윗의 왕국을 든든히 세워 나갈 것이라는사실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죽지 않았어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늙어서든병이 들어서든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죽고 그의 시체가 끔찍하게 훼손되고, 해체되었다고 성경이 묘사하면서까지 그의 말로 비참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영혼이 받고있을 비참함이 얼마만큼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 땅에서 어떤 죽음을 맞이 하든지,그 영혼은 안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대조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내 영혼아,이제 너는 안식하여라. 여호와께서 너에게 은혜를 베푸셨다”(현대인의성경, 시116:7).
신자는 이 땅에서 아플 수 있습니다. 신자도 이 땅에서 고통 속에서 죽어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며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자는 이 땅에서의 행복이나 고생과는 전혀 상관없이, 저 하늘에서 결국 기뻐하며 영원한 행복가운데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마치 거지처럼 없이 지냈어도신자는 저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립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이 땅에서 아무리 왕으로서 산해진미를 먹었던존재였어도, 그의 죽음은 언제나 비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그의 돌아갈 곳이 곧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그것은 그의 영혼을 안식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그러나 신자는 이 땅에서 아무리 비참한 생을 살았다고 해도, 그의 죽음은 아름다우며주님의 환영을 받으면서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