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1)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잠 24:23-34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8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30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31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32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33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34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요 5:39-47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시냇가에 서서도 목마른 사람들
좀 더 보고, 좀 더 일하고, 좀 더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목은 앞으로 나와 있고, 허리와 어깨는 굳어 있습니다. 거북목도, 허리 통증도, 뭉친 어깨도 대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루치의 '좀 더'는 아무것도 무너뜨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좀 더'가 날마다 쌓이면 마침내 몸의 기초가 흔들립니다. 몸은 우리가 반복해서 고른 자세를 정직하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잠언의 지혜자는 이 '좀 더'의 무서움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24:33-34). 강도와 군사는 미리 알리고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이닥치기까지의 시간은 길고 조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은 지금, 어떤 '좀 더'를 반복하며 어떤 자세로 굳어 가고 있을까요?
지혜자는 그 결과를 한 밭 앞에서 보았습니다.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잠 24:30-31). 한때는 누군가 돌을 날라 담을 쌓고, 흙을 고르고, 포도나무를 심었던 자리였을 것입니다. 밭 주인은 밭을 버리겠다고 결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저 매일 "좀 더"를 골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더 눈여겨볼 사람은 그 밭을 지나가던 지혜자입니다.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32절). 같은 밭을 보고도 혀를 차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그 앞에 멈추어 자기 삶의 자세를 비추어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너진 돌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에서도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은 영혼의 자세가 굳어 가는 과정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그려 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시 1:1). 걷다가 서고, 서다가 앉습니다. 처음에는 잠깐 따라가 보는 것이었고, 그다음에는 잠시 멈추어 서 본 것이었는데, 어느새 그 자리에 편안히 눌러앉게 됩니다. 몸이 한 번에 굽지 않듯 영혼도 한 번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작은 타협과 작은 미룸이 쌓여, 마침내 그것이 나의 자세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굳어 가는 자세를 바로 세우는 길은 무엇입니까?
시편은 그 길을 물가에서 보여 줍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2-3절). 솔직히 말하면, 물가에 머무는 일은 지루합니다. 열매는 금방 보이지 않고, 어제 한 일을 오늘 또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을 자꾸 "조금만 나중에"로 미루어 둡니다. 그러나 시편은 바로 그 지루해 보이는 반복을 "주야로"라고 부릅니다. 나무는 시냇가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냇가에 "심겨" 있습니다. 하루 이틀 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머뭅니다. 그리고 열매는 서두른다고 맺히는 것이 아니라 "철을 따라" 맺힙니다. 그 사이에도 표시가 나는 것이 있습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는 날에도, 물가에 머문 영혼은 메마르지 않습니다. 반면 뿌리 없는 삶은 "바람에 나는 겨"(4절)와 같아서, 부는 바람마다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그런데 물가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5장에는 누구보다 오래, 누구보다 부지런히 그 물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경을 읽고 외우고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그들은 시냇가에 서서도 목말랐습니다. 반복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드러내십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42절).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44절). 그들의 반복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소중히 붙든 책이 도리어 그들을 고발하게 됩니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46절). 시편이 복 있는 사람을 두고 말씀을 "즐거워하여"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가의 반복을 생명으로 바꾸는 것은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말씀이 가리키는 그분께 나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좀 더 보고, 좀 더 일하고, 좀 더 쉬느라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은 늘 "조금만 나중에"로 밀려나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성경을 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느새 체크 표시 하나를 채우는 일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말씀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정작 주님께는 나아가지 않는 자세로 굳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몸의 자세가 무너지고 나서야 통증을 느끼듯, 영혼의 돌담도 무너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무너진 밭 앞에 멈추어 섰던 지혜자처럼 우리 영혼의 자세를 한 번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굽은 목을 바로 세우는 길이 하루 한 번의 큰 결심이 아니라 날마다 고개를 드는 작은 반복이듯, 영혼의 자세를 바로 세우는 길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다시 물가로 돌아가 앉는 것, 그리고 말씀을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주님께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열매가 더디게 느껴지는 날에도 잎사귀는 마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우리를 주님은 아십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이번 한 주, "조금만 나중에"라는 말을 내려놓고 오늘 물가에 다시 뿌리를 내리는 여러분, 시냇가를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시냇가에 심긴 나무로 살아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좀 더"를 고르며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만 나중에"로 미루어 온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조용히 굳어 버린 저희 영혼의 자세를 보게 하시고,
무너진 밭 앞에 멈추었던 지혜자처럼
그 앞에서 훈계를 받게 하옵소서.
물가에 머무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에도
철을 따라 열매 맺게 하실 주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말씀을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주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오늘도 주님 곁에 뿌리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