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10월 15일-시 96:1-9, 삿 17:1-6, 요삼 1:9-12
시 96:1-9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3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6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7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삿 17:1-6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요삼 1:9-12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은 이백으로 빚은 신

우리는 우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 옛날 이방 신전의 낯선 조각상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사사기에 나오는 한 가정의 이야기는 우상이 얼마나 경건한 언어 속에서 태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는 어머니의 은 천백을 몰래 가져갔다가, 어머니가 저주하는 말을 듣고 그 은을 돌려놓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축복하며 말합니다.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삿 17:3). 그리고 그 은으로 신상을 새기고 부어 만듭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께 드린다고 했지만, 정작 은장색의 손에서 나온 것은 한 신상이었습니다. 게다가 거룩히 드린다던 천백 가운데 실제로 건네진 것은 이백뿐이었습니다. 도둑질과 저주, 축복과 헌신이 한 집 안에서 뒤엉킨 이 장면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붙여 둔 무언가를 섬기고 있는가.

시편 96편은 이 혼란을 한 줄로 정리합니다.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 96:5). 우상과 하나님을 가르는 기준은 신상의 크기나 재료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지었는가에 있습니다. 우상은 사람의 손이 만든 신이고, 여호와는 하늘을 만드신 분입니다. 미가의 집에는 신당이 있었고, 에봇과 드라빔이 있었으며, 아들 하나를 세운 제사장까지 있었습니다(삿 17:5). 예배의 형식은 모두 갖추었지만, 그 모든 것을 기획하고 세운 이는 미가 자신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뿌리를 이렇게 진단합니다.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우상 숭배란 결국 내 소견이 신의 자리에 앉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신당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요한은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요삼 1:9)를 고발합니다. 그는 요한 일행을 맞아들이지 않고, 악한 말로 비방하며, 형제들을 맞아들이려는 이들까지 교회에서 내쫓았습니다(요삼 1:10). 그는 은으로 신상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을 공동체의 중심에 세워 두었습니다. 은으로 빚은 우상이 있다면, 명예와 주도권으로 빚은 우상도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 모든 것 앞에서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시 96:4)라고 노래합니다. 경외란 하나님을 내 손안에 두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그분의 손안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도 미가의 신당 같은 작은 방이 하나쯤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 두었지만, 사실은 내 계획을 승인해 주고 내 편만 들어 주는 신 말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편안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늘을 지으신 분이 아니라 내가 지은 분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편지를 받는 사랑하는 이에게 짧게 권면합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요삼 1:11). 그리고 뭇 사람과 진리에게서 증거를 받은 데메드리오를 가리킵니다(요삼 1:12). 우상을 버리는 일은 거창한 결단보다, 오늘 무엇을 본받으며 살 것인가를 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일터에서, 가정에서, 내 소견이 옳다는 확신이 강하게 올라올 때 잠시 멈추어 물어보십시오. 이 확신은 하늘을 지으신 분에게서 온 것인가, 아니면 내 손이 빚은 것인가. 하나님을 내 크기에 맞추지 않고,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내 소견을 섬겨 온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뜻을 승인받기 위해 주님을 찾았던 날들, 공동체 안에서 으뜸이 되고 싶어 했던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우리 손으로 빚은 신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주님만을 경외하게 하시고,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본받으며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0/15/2026 5:26: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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