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5:1-9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겔 18:19-24
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막 11:27-33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3)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주말 묵상
주먹이 아니라, 펼쳐진 손이었습니다
권위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움켜쥔 주먹을 떠올립니다. 힘, 지위, 가진 것 — 그것을 더 세게 움켜쥘수록 더 큰 권위를 가졌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예수님도 바로 그런 셈법 앞에 서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막 11:28). 정중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이미 예수님을 걸어 넘기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되물으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막 11:30).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막 11:31) — 하늘로부터라 답하면 요한을 믿지 않은 자신들의 불신앙이 드러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 답하면 무리가 두려웠습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막 11:33)고 말합니다. 그들의 손에는 이미 지위와 명분이라는 주먹이 쥐어져 있었고, 그 주먹을 놓치지 않으려는 계산이 그들의 대답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굳이 그 주먹을 마주 쥐려 하지 않으셨을까요? 에스겔은 그 답의 실마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할 권세를 쥐고 계시지만, 그 권세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하나님의 권위는 움켜쥔 주먹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살리기 위해 펼쳐진 손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서 계신 자리도 바로 여기였습니다. 침묵조차, 펼쳐진 손이 두려움 없이 서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도 바로 이 펼쳐진 손 앞에 자신을 맡깁니다.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시 25:6),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시 25:7). 그는 무언가를 움켜쥐고 하나님 앞에 서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 25:5)라고 고백합니다. 기다림은 빈손을 펴고 서는 자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면서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어야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만납니다. 힘을, 지위를, 옳음을 움켜쥐고서야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서야 할 자리는 다른 데 있습니다. 참된 권위는 우리가 움켜쥐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향해 펼쳐진 하나님의 사랑의 손을 받아들일 때 우리 손도 따라 펴지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주먹으로 자신을 지켰지만, 우리는 이미 펼쳐진 사랑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시고(겔 18:22), 우리가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겔 18:23).
이번 한 주, 무언가를 움켜쥐어야 안전할 것 같은 자리에 서 계신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펴십시오. 우리를 붙드시는 것은 주먹이 아니라 펼쳐진 사랑의 손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 25:8-9) 하신 그 손을 붙들고, 이번 한 주도 펼쳐진 손으로 살아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무언가를 움켜쥐려 했던 저희 손을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처럼 펼쳐진 손으로 서게 하시고, 그 사랑의 손에 힘입어 오늘을 살아가는 저희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